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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애 읽는 독립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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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LL 댓글 0건 조회 1,670회 작성일 09-07-2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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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기념일 퍼레이드

 
7월 4일은 미국 최대의 축제일인 ‘독립기념일’이다. 건국의 아버지 존 애덤스는 이 날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이 날은 위대한 기념축제이자 해방의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 이 날에는 화려한 행진, 각종 쇼, 게임, 스포츠, 축포, 종소리, 횃불과 조명으로 대륙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지금부터 영원토록 축하해야 할 것이다.”
◎ 화려하고 성대한 7월 4일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1776년 7월 4일 이후 미국에서 이 날은, 애국적인 연설이 넘치고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며 저녁에는 큰 도시나 작은 도시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성대한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열린다. 도심의 큰 공원이나 축구경기장, 강변이나 쇼핑몰 앞 넓은 뜰 앞에서는 일찍부터 야외 음악회와 갖가지 행사들이 펼쳐져 도시 전체가 축제와 파티 분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라스도 예외는 아니다. 달라스 페어파크에서는 무려 5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Fair Park Fourth’라는 이름의 대형 야외행사를 개최한다. 미국 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순위 Top 20 안에 드는 초대형 불꽃놀이는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환상적인 불꽃쇼의 배경음악이 될 달라스 윈드 심포니의 연주는 이날의 축제를 평생의 추억으로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게 한다.
매년 아이들과 함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조현식 씨(39)는 “저녁 9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불꽃놀이를 위해 낮 1시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미국인들을 보면 놀랍고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에게 독립기념일은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날인가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군요. 미국사람들 보면 이날 하루만큼은 정말 즐기잖아요. 옷이며, 모자며, 양말이며, 심지어는 식탁 위의 냅킨까지 미국 국기로 장식하면서 국경일을 맘껏 만끽하잖아요”라고 말하며 “집 앞에 태극기조차 걸어놓지 않는 한국의 광복절과 비교하면 이들의 문화가 조금은 부럽다”라고 털어놓는다.
조현식 씨처럼 흔히들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한국의 광복절과 비교한다. ‘독립운동’ ‘독립만세’ 등 ‘독립’이라는 언어에 본능처럼 빨려드는 한국인들이어서 그런지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어떤 동질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 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미국의 독립이 한국의 광복과 뚜렷한 차이를 갖는 건, 미국의 독립전쟁이 이민족의 침탈에 대한 투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목숨을 건 독립투쟁을 거쳐 쟁취한 한국의 광복절은 국토를 점령한 일본으로부터 내 나라 내 땅을 되찾은 것이지만, 미국의 독립은 전쟁의 당사자들 자체가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땅과 재산을 침탈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은 실제상의 약탈자였고, 본국과의 이해관계에 의한 알력 싸움의 성격이 크다.
실제로 독립전쟁 이후 유럽에 파견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벤자민 플랭클린도 애초부터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았고, 또 미국의 독립지사들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들간의 독립전쟁이, 강탈당했던 나라를 되찾는 다른 나라들과는 그 내용면에서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단 하나뿐인 미국의 독립역사,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독립전쟁의 서막 ‘보스턴 티 사건’
독립전쟁이 시작될 즈음인 1760년대, 아메리카 식민지의 총인구는 15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60년전인 1700년과 비교해볼 때 6배나 늘어난 숫자였다.
인구의 증가만큼이나 아메리카 식민지들은 경제력과 문화적 성취가 놀라우리만큼 증대했다. 거의 모든 식민지가 자치를 실시한 지 오래였을 정도였다.
아메리카 식민지들이 영국으로부터의 더 많은 자유와 자치를 원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아메리카에 대한 통제를 더 엄격하게 하길 원하는 영국과, 이미 오래전부터 일을 독립적으로 처리하는데 익숙해진 아메리카 식민지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워 알고 있다시피 미국의 독립전쟁은 보스턴 티 사건(Boston Tea Party)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표적인 저항인물이었던 존 핸쿡을 비롯한 미 식민지 주민들은 1765년 인지조례와 1767년 타운센드 조례로 미국 땅에서도 영국에 세금을 내게 하는 본국의 결정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1773년 영국 본국이 차(Tea)와 관련한 조례를 제정하여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독점으로 미국 전역에 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 미식민지 땅에서 영국 본국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인도회사의 차를 실은 배가 미국땅을 밟기란 쉽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뉴욕 등 미국 대부분의 항구에서 하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스턴은 달랐다. 영국 정부가 임명한 토머스 허친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동인도회사의 배는 영국 군함들의 호위 아래 하역계획을 수립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배에 실려 있던 차가 보스턴 항에 하역되기 전날인 1773년 12월 16일, 50여명의 보스턴 주민들은 원주 아메리카인인 인디언으로 위장한 후 동인도회사의 배를 습격, 차 15,000파운드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보스턴 티 사건’이다.
영국 본국 정부는 이 사건으로 격분했다. 이듬해인 1776년 ‘강제 제법’이라는 여러 법령을 연달아 만들어 보스턴 시민이 배상금을 내고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보스턴 항구를 봉쇄했고, 메사추세츠 식민지의 자치권을 정지시키는 한편 매사추세츠를 국왕의 직속으로 하고 때에 따라 매사추세츠 민가에 영국군대를 유숙시키기로 했다.
징벌적인 법제도로 식민지땅을 옭죄어오자 자신들의 자치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저항에 나서게 된다. 1774년 9월, 조지아를 제외한 13개 식민지 대표가 필라델피아에서 모였다. ‘제1차 대륙회의(The First Continental Congress)’이 그것이다.
 이 회의에서 식민지대표들은 본국과의 통상을 끊고 본국 상품을 배척하기로 결의하는 한편 영국군대가 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한 군사적 방어태세 수립에 의견을 모았다.
독립기념일에 읽는 ‘독립전쟁사’
그로부터 7개월 후인 1775년 4월. 보스턴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1천명이 토머스 게이지 장군의 지휘 하에 콩코드(Concord)로 향했다. 민병대의 탄약과 무기들이 들어있는 무기고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영국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두 명의 전령이 밤새 말을 달려 이러한 사실을 민병대에 알렸다.
다음날인 4월 19일, 영국군이 렉싱턴(Lexington)에 도착했을 때 영국군 앞에는 수십명의 민병대원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곧이어 총격전이 시작됐다. 이 전투로 민병대원 8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렉싱턴에서 식민지인들을 해산시키는데 성공한 영국군은 콩코드에서 다시 민병대와 충돌한다. 독립전쟁의 불씨에 불이 붙는 날이었다.
식민지 대표들이 6월에 다시 필라델피아에서 모였다. 두 번째로 열린 대륙회의에서 식민지 대표들은  ‘무력에 호소하는 이유와 필요의 선언’을 결의하여 영국 정부에 회답을 요구하였으나 국왕과 수상의 반대로 화해는 깨어지고 만다.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자 대륙회의는 버지니아 출신 조지 워싱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전쟁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대망의 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발표된다. 영국 본국과의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때까지 주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도 독립군측에 가담하고, 충성파는 절망하여 영국군의 보호를 구하고 혹은 영국, 캐나다로 도망하였다.
또 독립선언의 발표는 여러 나라의 자유 애호자의 환영을 받아 국제 정세를 변하게 하였다.
전쟁은 7년간 계속되었다. 전쟁의 전 기간동안 영국군이 우세해 보였으나 1777년 10월 사라토가 전투에서 미국은 영국의 대부대를 항복시켜 전세는 식민지군으로 기울게 된다.
1781년 요크타운에서 영국군을 포위한 식민지군은 10월 17일 드디어 항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전쟁에 지친 영국은 평화를 원하게 되었으며 1783년 성립된 파리조약에서 미국의 독립이 승인됐다. 세계 역사의 중심축이 되는 광대한 미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776년 전쟁 중에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일컫는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것이었다. 제퍼슨의 초안에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서명한 독립선언문은 ‘자유 쟁취’의 목적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
이 독립선언서가 무엇보다 미국인들에게 남다른 이유는 공식 문서에서 처음으로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이고, 이 문서의 발표를 기점으로 ‘독립전쟁’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6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에 낭독한 성명서를 보더라도 ‘독립선언서’와 ‘독립기념일’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사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776년 7월 4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은 인류 자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독립 선언문이 작성된 지 2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나라를 세운 시조들의 용기와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나라를 더 강국으로 만드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기리고자 한다. 오늘 우리의 독립을 경축하면서 우리 미국 국민들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확신에 차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미국내 한인들의 ‘독립기념일’은?
이러한 ‘특별함’의 원인이, 독립의 환희를 아직까지 간직할 정도의 짧은 역사 탓인지, 세계 최강국 미국의 ‘독립’이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나른하고 무더운 여름 속 황금같은 휴가기간이어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이 특별한 ‘그 무엇’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학 초기에 교수님께서 독립기념일에 초대를 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집 안은 쇼파 쿠션, 식탁 테이블보 등 성조기 모양으로 가득 했었구요, 하루 종일 바베큐 굽고, 맥주 마시면서 정말 흥에 겨워 하더라구요. 당시에는 많이 낯설어했었지만 한편으로론 나라의 생일을 자신의 생일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부럽더라구요.”(송민혁·32)
미국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변하는 독립기념일을 한인들은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미국인 뿐만 아니라 한인타운 주변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인 또한 독립기념일 축제의 최고행사로 ‘불꽃놀이’를 꼽는다. 독립기념일 1주년인 1777년부터 시작된 불꽃놀이는 이제 독립기념일 축제의 중심행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불꽃놀이는 도시마다 나름대로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이중 보스턴 찰스 강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는 평생에 한번쯤은 꼭 봐야 할 불꽃놀이라고 할 만큼 미 전역에서 유명하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기도 하는 찰스강변의 불꽃놀이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연주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와 독립기념일 이벤트도 미국 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다.
미국내 최고 유명인들의 공연과 다채로운 프로그램 끝에 여름하늘을 뒤덮는 국회의사당의 불꽃놀이는 미국 정치의 중심가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답게 웅장하고 화려해 해마다 전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의 발길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독립기념일에 한인들이 떠올리는 단어로 ‘불꽃놀이’와 접전을 벌이는 것은 ‘여행’과 ‘쇼핑’이다. 게다가 올해처럼 독립기념일이 금요일이면 짧게는 2~3일, 여름휴가까지 붙여서 쉬면 길게는 2주일까지 쉴 수 있는 ‘최고의 여행기회’가 된다.
“함께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가족들이랑 하루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클라호마에 있는 폭포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물놀이도 하고 올 계획입니다.”(한미영·34)
“어딘가 가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정확한 행선지는 정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여행은 꼭 갈 꺼예요.”(임지민·29)
“기름값도 비싸고 비행기값도 비싸서 멀리 갈 생각은 아예 하지를 못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 삼아 코퍼스 크리스티로 다녀올 생각입니다.”(차은희·41)
독립기념일 연휴를 이용한 여행계획은 미국인들 또한 다르지않다. 미 자동차협회(AAA)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4,045만명이 독립기념일 연휴동안에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007년에 비해 1.3%밖에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의 41%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여행경비를, 26%는 더 사용할 계획이라고 조사됐다.
‘쇼핑 찬스’ 또한 ‘여행 찬스’에 못지 않다. 최고 70% 이상까지 세일을 하는 여름 대박시즌인 독립기념일에는 정가를 주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
‘독립기념일 특수’를 기대하고 파격적인 세일을 실시하는 마켓들이 눈독을 들이는 소비자층은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연휴를 즐기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족. 올해는 특히 스테이케이션을 선택한 사람이 많다.
“요즘 같은 때 가만히 있는 게 돈 버는 거 아닌가요? 미국 처음 왔을 때는 이른 오후부터 오케스트라 연주와 퍼레이드 하는 곳을 찾아 구경하기도 했었는데, 그것도 처음 몇번 뿐이더라구요. 해마다 뭐 비슷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어차피 남의 나라잔치를 구경하는 일이니까 그리 흥겨울 것도 없구요”라고 말하는 양민혁(38) 씨도 그런 케이스다.
“올해는 아이들과 동네 수영장에서 같이 놀아주고 여행갈 돈으로 와이프하고 애들한테 좋은 선물 사주며 점수나 딸 생각입니다. 남의 나라 잔치 속에서 내 실속은 챙겨야죠.”
성조기로 가득한 가장 미국적인 국경일 연휴를 보내며 달라스 한인들은 그들의 문화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 안에 들어가 즐기기도 하는가 하면, 불꽃놀이와 여행, 쇼핑과 가족간의 시간 등 주어진 즐거움을 만끽하며 각자 나름의 ‘실속’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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