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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쇼핑 못 해? 충격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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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778회 작성일 15-06-0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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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갖고 있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독특함입니다. 유별남 때문에 별 것 아닌 것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번에는 대형매장의 일요 영업 문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프랑스 법원이 최근 가정용품 전문매장의 일요 영업을 금지시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국내에서 "일요일에 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쟁이 거세게 붙었습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만, 외국 사례와 비교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프랑스 방송사의 미국 특파원도 보도에 참여했습니다. 카메라는 일주일 내내 그것도 24시간 영업하는 미국의 대형 매장을 보여줍니다. 리포트에 등장한 미국 소비자의 인터뷰는 더 생생합니다. "뭐라고요? 프랑스는 일요일에 쇼핑을 못한다고요? 충격적인데요!" 한국 소비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도 비슷한 대답을 얻었을 겁니다.




프랑스인들은 왜 이런 논쟁을 벌이는 걸까요? 프랑스에서는 '일요 근무'(Travail le dimanche)와 '주일 근무'(Travail dominical)이란 표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사회여서 그리스도가 부활한 일요일은 쉬면서 미사에 참여하고 건전하게 보내야 한다는 게 관습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법적으로도 1906년 일요 근무를 금지시켰습니다. 이를 두고 종교와 정치의 타협의 산물이라고도 해석하기도 합니다. 근대화된 프랑스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채택하는데, 일요일의 의미를 교회를 가야 하는 날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다같이 쉬는 날로 규정한 겁니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든 프랑스에서는 107년 전부터 일요일은 쉬는 날이었고, 자연스럽게 휴식과 가족을 의미하는 날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도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법은 일요 근무를 금지했지만, 서서히 예외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빵집, 꽃집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일요 영업을 허용했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특구'라고 해서 허용해 줬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형매장도 사업장 별로 개별 노동자들과 또는 개별 노조와 협약을 맺고 몇 년 전부터 슬금슬금 일요 영업을 해 왔습니다. 1년에 몇 차례라는 제한 속에 일요영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법적 기준인지 개별 사업장 내 합의인지 따지기도 복잡한 다양한 예외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일요영업을 하지 못하는 다른 회사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대형매장들을 고발했고, 법원은 '법대로' 하라며 일요 근무를 금지시킨 겁니다.

판결 이후 이해 당사자간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회사는 일요 매출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고 반발했고, 매장 직원들도 일요일에 일하면 수당을 50% 더 받는데 왜 일할 권리를 빼앗냐며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정부가 자신들의 처지를 알아야 한다며 총리실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요 근무를 하면 일자리가 늘어나 실업난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비자들도 쇼핑의 편리를 내세우며 일요 영업을 찬성했습니다. 상급 노조만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며 일요 휴무 원칙을 지지했습니다. 분위기상으로는 노조만 외톨이가 된 것 같습니다.

사회는 논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앞서 미국의 사례처럼 언론은 주변 유럽 나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1994년부터 일요 영업을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독일은 일요일은 휴무이며, 베를린에서 일요일에 여는 상점은 소수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오스트리아도 일요 근무를 금지한 국가였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는 어떤지 취재했더니 대형 쇼핑몰은 요즘 일요일에 열기는 하는데 정부는 그 효과를 살피고 있고 논쟁이 있는 사안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정답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선택지만 늘어난 셈입니다.

프랑스인 여론조사에서도 헷갈리는 민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응답자의 80%는 대형매장의 일요 영업을 찬성하지만, 56%는 자신의 일요 근무를 반대합니다. 남이 일하면 편리해 좋지만, 내가 일하기는 싫다는 뜻입니다. 상급노조인 노동총연맹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대형매장의 일요 영업을 허용하게 되면 다른 직업군도 일해야 한다. 매장 직원들의 아이를 돌볼 사람, 교통, 은행, 보안, 청소까지…결국 하나를 허용하면 사회 전체가 일하게 된다"며 일요 근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일요 근무라는 '과정'에서 얻는 편익이 아니라 '결과'로 주어질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며 사회 대토론을 제안했습니다. 정부도 11월까지 일요 근무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이제서야 '일요 근무' 할지 말지 논의하는 프랑스가 시대 흐름에 뒤져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이 있으면 당연히 일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논쟁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할지 말지 결정은 프랑스 사람들 몫입니다. 다만, 프랑스인들은 이 논쟁에서도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멈춰야 하는지, 계속 나아갈 수 있는지?" 토론해 보자는 겁니다. 즉, 매장 직원들이 일요일에 일해서 돈 벌 자유가 다른 사람이 일요일에 쉴 자유를 침해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겁니다. 개인의 선택보다는 사회가 부여한 '당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논쟁과 토론이 어려운 이유가 수많은 '당위'가 존재하고 있고 '당위'의 강력한 권위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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