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를 찾아낸 것처럼 우연히 발견했던 도시 튀빙겐
페이지 정보
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2,116회 작성일 12-06-04 23:56
본문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장기간 여행은 현실이 된다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장기까지 갈 것도 없다. 3주, 아니 보름 이상 여행을 해 본 이들은 안다. 그건 여행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엄청난 비밀을. 매일 아침 눈을 반짝이며 지도를 펴보는 안일한 감상 따윈 절로 훌훌 날아간다. 오늘은 뭘 먹을지, 빨래는 또 해결해야 할지, 전화비는 또 얼마나 늘어날지, 하루하루가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으로 돌변한다. 기자에겐 독일이 그랬다. 때는 2006년 독일월드컵. 취재 때문에 남들은 평생 한번도 가기 힘들다는 독일 전역을 30여 일 동안 샅샅이 훑은 적이 있다. `복도 많다`며 시기 질투의 눈빛을 팍팍 날렸던 주변의 기자들이여. 일탈? 낭만? 운치? 천만에 말씀이다. 악몽 같은 한달로 똑똑히 기억한다.
악몽 같은 기억 외에도 약간의 전리품이 남아 있다. 무려 130만원이 조금 넘었던 전화비. A4 5장 이상 덕지덕지 붙여졌던 수십 수백장의 식당 영수증. 심지어 장애자 주차구역에서 견인까지 당해, 우리돈 25만원 짜리 비싼 딱지까지 뗐던 쾰른 라인에네르기스타디움의 입장권까지.
이쯤에서 고백성사 한가지. 당시 스위스 전에서 한국이 졌을 때, 16강 꿈이 물거품이 됐을 때, 하노버 스타디움 기자실에서 속으로 만세 삼창을 외쳤던 것, 사천만 붉은 악마들에게 두고두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옆에 앉았던 일본, 중국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 졌을 정도.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 인정한다. 순전히 현실이 된 여행 때문이었다고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그 독일에 대한 혹독했던 인상을 그나마 순하게 만들어 준 곳이 튀빙겐(tuebingen)이다. 마치, 접힌 책갈피 속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낸 것처럼 우연히 발견했던 도시 튀빙겐. 당시에는 그곳이 튀빙겐인지조차 몰랐던 곳. 독일까지 왔는데 `6대 가도`로 꼽힌다는 `판타스틱 가도` 만큼은 가봐야 겠다는 심술 아닌 심술이 나서 찾았던 그 루트의 중간 지점 중 하나가 튀빙겐이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을 얘기하면서 괴테 다음으로 꼽는 인물이 헤르만 헤세다. 헤세 하면 칼브라는 자그마한 도시를 떠올릴 것이고, 칼브 하면 곧 이어 `검은 숲`으로 알려진 슈바르츠발트를 연상하게 된다. 판타스틱 가도는 바로 이곳 슈바르츠발트의 온천 도시인 바덴바덴에서 칼브, 슈투트가르트, 튀빙겐을 거쳐 콘스탄츠까지 이어지는 300㎞가량의 루트다.

여행이란 게 그렇다. 화려하고 편한 기억이 남는 게 아니라, 뇌 속 기억이 가장 말랑말랑한 순간 그 부분을 파고 들었던 그 지역, 그 순간이 남는 것이다. 아마도 튀빙겐이 그랬을 것이다. 현실이 돼 버린 여행이 실로 버거운 무게로 다가왔을 테고, 그때 가장 약한 뇌의 한 부분을 파고들었을 게 틀림없다. 여전했다. 시청 앞 마르크트 광장에는 시장이 섰고, 그 옆엔 소품처럼 마을 사람들이 맥주를 연거푸 마셔대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가 점원으로 일했다는 서점도 여전했고, 골목골목 스며있는 생기도 여전했다.
누구나 첫 방문엔 놀라는 사실 한 가지. 인구 8만의 작은 도시. 이 중 40% 이상이 대학생인 신촌 같은 이 동네가 헤세와 함께 프리드리히 헤겔 같은 세계적인 철학자, 여기에 J.C. 프리드리히 횔데를린(J.C. Friedrich Hoelderlin), J. 루트비히 울란트(J. Ludwig Uhland)같은 시인들의 통찰과 감각을 키워낸 곳라는 걸. 중세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튀빙겐의 땅을 꾹꾹 밟고 10분만 돌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건 활력과 생기다. 사실 이 작은 도시에서 굳이 여행 포인트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역대 뷔르템베르크 공작들의 무덤이 있다는 후기고딕 양식의 상징 장크트게오르크 성당(Church of St. Georg)이나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전형이라는 호엔튀빙겐(Hohentuebingen)성도 휘 둘러보고 그 느낌을 가지면 끝이다. 오히려, 도심을 가르는 네카어강(江)을 따라 유유자적 뱃길로 이 곳을 휘 관조해 보는 코스가 매력적이다. 전통의 보트인 `슈토허칸(Stocherkahn)`을 타고 네카어강을 따라 시티투어를 한다니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6년 전엔 상상조차 못했던 코스다.
슈토허칸도 튀빙겐만큼이나 앙증맞다. 강은 결대로 흘러간다. 나무재질로 `L`자 형태로 기울어진 각자의 의자에 몸을 편안히 뉘인다. 속도는 한 여행작가의 책 제목처럼 `구름 그림자와 함께 딱 시속 4㎞`. 이 순간만큼은 도심 풍경도 이 속도, 시간도 세상도 이 속도로 흐른다. 21세기 기자가 이 속도로 보고 있는 이 풍경을, 헤세도, 헤겔도, 횔데를린도 울란트도 같은 슈토허칸에서 다 같이 경험했겠지. 강을 따라 가면 인생의 절반인 36년 이상을 광기 속에서 살다간 비운의 시인 횔데를린의 육신을 거두어 준 목수의 집이 보인다.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고, 그저 꿋꿋함과 우직함으로 세상을 돌파해 갔던 의지의 시인. 이 도시에서 나 이 도시에서 사라진 그의 묘비명에는 `운명(Das Schicksal)`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폭풍 중 가장 성스런 폭풍 가운데/ 나의 감옥의 벽 허물어지거라/ 하여, 보다 찬란하고 자유롭게/내 영혼 미지의 나라로 물결쳐 가라`
그래. 선택의 순간, 하필이면 소박한 튀빙겐이 미지의 나라처럼 물결쳐 떠올랐던 건, 아마도 운명이었겠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