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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구시가, 그 뒷골목을 걸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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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784회 작성일 12-06-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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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도시. 120만 인구에 해마다 1억 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 눈길 닿는 어느 곳이라도 동화 속 주인공과 마주칠 것만 같은 프라하의 구시가, 그 뒷골목을 걸어보았다.
베를린에서 기차로 네 시간 반. 한겨울의 프라하는 오후 4시를 막 넘겼음에도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유럽 어느 도시에나 있는 중앙역에 내린 후, 예약한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을 때는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때이른 일몰은 오랜 여행자에게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어둡고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세상의 모든 우울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런던의 어둡고 습한 거리를 걷다가, 왜 영국인들이 총을 들고 전세계를 향해 뛰어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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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프라하의 중심지, 바츨라프 광장 근처에 있었다. 체코의 연금 생활자들이 사는 원룸형 아파트였는데, 집주인은 시골 어디로 떠나고, 이런 집 수십 곳을 관리한다는 매니저가 커다란 열쇠꾸러미로 문을 따 주었다. 호텔보다 싸고 게스트하우스보다 편한 곳. 아담한 원룸 한켠에는 자그마한 냉장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부터 매일같이 맛있는 체코 맥주를 그득그득 담아 야금야금 먹어주리라. 냉장고 문을 열고 잠시 인사를 건넨 후, 프라하의 구시가 골목을 걷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바츨라프 광장은 옛날 세종로를 닮았다. 그 옛날 중앙청을 닮은 국립박물관 앞으로 거대한 도로 가운데 길다란 광장이 이어져 있다. 사방에는 호텔과 쇼핑센터, 나이트클럽 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물을 사기 위해 잠시 들른 마트는 작은 이마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긴, 프라하에 자본주의의 봄이 온 지도 이미 수십 년이 흘렀으니… 그런데 그 수십 년의 시간, 아니 수백 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 여기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광장을 나와 10분쯤 걸었을까.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바로크와 고딕 양식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또 다른 광장이 나타났다. 여기가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이구나. 사진으로 낯이 익은 뾰족한 첨탑이 눈길을 끈다. 저게 틴 성당이군. 뾰족한 쌍둥이 첨탑이 프라하의 상징이 된 곳. 중세 성처럼 뾰족뾰족한 첨탑의 끝마다 불이 들어오니,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그리고 불 밝힌 첨탑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여행자를 동화 속 환상의 세계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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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 사이에 빛나는 성모 마리아상은 진짜 황금으로 만들었다, 는 이야기를 가이드북에서 읽었다. 가난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한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한쪽 금 신발을 벗어주었다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 성모 마리아상처럼. 가만, 광장 주변을 둘러보니 금빛으로 빛나는 것은 성모 마리아상만이 아니다. 하얀 대리석 건물들은 저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옛 시청사 건물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천문시계가 눈길을 끌었다. 시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윗부분은 황도 12궁을 상징하는 크고 작은 금빛 원들이 교차하는 시계가, 아래에는 12사도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원판이 자리 잡았다. 매시 정각이 되면 천문시계 윗부분에 있는 작은 창문이 열리고 12사도의 인형이 번갈아 나온다고 한다. 마침 정각이 되려면 몇 분 남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니 정말 음악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고 12사도의 인형들이 번갈아 등장했다. 12시 종이 치면 왕자로 변신하는 호두까지 인형처럼. 1분 남짓의 퍼포먼스지만 모여든 관광객들의 환호성을 끌어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천문시계의 퍼포먼스까지 보고 나서 발걸음을 카를교 쪽으로 옮겼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프라하 구시가 뒷골목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좁은 골목에서 먼저 여행자를 맞아주는 것은 자그마한 가게의 쇼윈도, 그 속에서 빛나는 유리와 크리스털이었다. 체코의 크리스털이 국제적인 명성을 갖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기부터라고 한다, 는 사실 또한 가이드북에서 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 훌륭한 크리스털 원석이 많고 가공기술 또한 뛰어나다는 것. 체코의 크리스털이 스위스의 스와로브스키와 더불어 세계 수정계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는 사실 또한 가이드북은 꼼꼼히 적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화려한 색상의 체코 크리스털을 몇 곳 보고 나니, 눈에 익은 순백의 수정 – 스와로브스키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적들 한가운데 혈혈단신 뛰어든 수정전사라. 이 또한 동화 속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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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인형들이었다. 나무를 깎아 화려하게 색칠한 작은 인형들도 예쁘지만 제법 크게 만든 헝겁인형들이 정말 동화 속 인물들처럼 보였다. 이들의 팔과 다리에는 주렁주렁 줄이 매달려 있다. 그렇다. 프라하에서 골목 기행 말고 꼭 해봐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형극 관람이다. 그중에서도 ‘돈 지오바니’(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인형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마침 구시가 뒷골목에는 돈 지오바니를 공연하는 인형극장이 있었고, 마치 숙제 하는 기분으로 들어가 공연을 봤다. 한 시간 남짓의 공연은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인형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게 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거지?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진짜 세계적인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국립 인형극단이 공연하는 돈 지오바니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약식 공연에 불과했던 거다.)
인형극장에서 나오니 어느새 카를교다.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잇는 다리. 500m 남짓의 돌다리 양쪽 난간에는 30개의 성상들이 저마다 독특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진품을 국립박물관에 있고 이것들은 모조품이라지만, 신성한 기운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신성한 다리를 건너면, 정말로 동화 속 세상이 시작되리라. 하지만 한겨울 프라하성은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아쉽지만 옛날 옛날, 어느 아름다운 성에서 벌어지는 환상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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