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 벨리코 터르노보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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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959회 작성일 12-06-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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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코 터르노보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으로, 이곳에선 유난히 뭔가를 끄적대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가 많다. 하지만 이내 자신에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신이 준 자연에 화답하는 인간의 선물, 중세의 라코브스키 거리로 들어서면 그 깨달음은 거의 절망 수준이 되어 버린다.
사기의 가동, 여긴 어디인가
“시내가 어디에요?”
이 짧은 단 문장에 대답해줄 이는 여기, 아무도 없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 소피아까지 13여 시간, 그리고 여기 벨리코 터르노보까지 3시간 달음을 한, 기름기가 파도를 치던 까만 눈동자의 애절한 한마디였음에도. 시퍼렇게 관광지라고 가이드북에서 소개했건만, 터미널에 상주하는 현지인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만국어로 동양인의 화를 슬슬 점화했다. 결국 사기꾼과 동일시하는 불가리아 택시를 탈 수밖에. 터미널에서 유턴해 빙 도는 특기를 뽐내던 택시가 중심지인 게르코 거리(Gurko st.)에 도착한 시간은 그로부터 1분, 기사는 5lv(약 4150원)를 내라고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하룻밤이 20lv(약 1만6600원)인 착한 물가로 따졌을 때 단연 속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적당히 속는 걸 반갑게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사기를 유연하게 품을 수 있던 건, 이미 택시의 작은 창문으로 재단된 벨리코 터르노보의 전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택시는 중세 돌바닥의 잔해에 입성한 신호로 비자발적 춤을 추게 하더니, 매끈한 얀타강의 협곡 위로 살찐 나무가 병풍을 이룬 가운데 층층이 집이 디저트로 올려진 천혜의 조망권을 내게 줬다. 사기로 인한 긴장은 단숨에 환희에 바통 터치하면서, “안녕!”을 외쳤다. “어서 와!”란 메아리는 거짓이었을까. 애꿎은 눈만 비벼댔다. 이곳 자체가 사기라 생각했다.
세파 따윈 관심 없어 보이는 지금의 벨리코 터르노보도 낙폭이 심한 곳이었다. 지난 14세기 말인 아센왕 시절 발칸반도의 왕으로 호의호식하기도 했으나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으로 일약 침몰한 뒤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겨우 터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겨진 이곳의 영광은 20세기에 들어서 터르노보란 이름에 ‘위대한’이란 뜻의 불가리아어 ‘벨리코’를 붙인 것과 중세의 영화를 함축 재생하는 라코브스키 거리(Rakovski st.)다.
라코브스키 거리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인 로센(Rossen)이 숙소를 찾지 못한 채 고아처럼 부유하던 날 보자마자 추천한 거리였다. 이곳은 한마디로 아티스트의 골목이다. 그런데 아기자기하다기보다 대범하고 완고하다. 고작 1km 남짓한, 20여 개의 작업실이자 숍이 주인인 이 길은 밤의 하이라이트로 통용되는 대표 볼거리인 차레베츠 요새까지 가는 돌길 위에서 영화의 옷자락을 훨훨 날리며 서 있다.
차레베츠 요새처럼 노쇠하지만 팔팔한 청춘인 이곳에 들어서면 장기 투숙할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한다. 나무 조각과 이콘화, 방직공, 주얼리 등의 숍과 아트 갤러리엔 장사꾼의 계략이나 서두름이 없다.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아티스트가 당신의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다.
못 잊어, 라코브스키 거리의 3인
본격적인 거리 구경은 흡사 게임을 연상시킨다. 한 집 건너, 한 집 제각기 재기를 뽐내는 이곳은 어느 한 곳을 건너뛰면 미션이 실패할 듯 게이머로 분한 여행자를 못살게 군다. 이 게임을 깨기 위해선 오롯이 그곳의 주인을 용접하는 게 필요했다. 자연의 천적은 늘 인간이었지만, 이 거리에서만큼은 자연의 벗이 바로 인간이다. 협곡이 쓸어간 자리처럼 굽이치는 골목의 숍은 결단코 흉물스럽거나 거추장스럽지 않다. 단순히 숍마다 무엇을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인이 어떤 스토리로 숍을 일궈나가는가가 중요해 보였다. 이는 이곳에 가야 하는 이유이자 이곳에 뭔가를 두고 온 듯한 여행병의 중요한 도화선이었다.
첫 번째 주인공은 풍만한 여인에 중독됐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티스트 니나(nina)다. 한 팔에 도자기 그릇을 10여 개 드는 괴력을 보였던 그녀는 13~14세기 당시의 고기술로 도자기를 빚는 수공예자다. 아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 대를 잇게 할 니나는 이곳에서 빚고 굽고 만나고 웃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 벨리코 터르노보가 발칸반도의 왕이었던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당시 도자기의 모티브를 착안해 그녀의 손재주는 양초받이에, 접시에, 목걸이에 바이러스처럼 번져 나간다. 유난히 그녀의 자식 같은 작품에 새가 많은 이유도, 당시 국왕의 상징이 바로 새였기 때문이다. 옐로와 그린, 브라운 컬러의 드라마틱한 조우에 지름신이 강림한 나에게, 그녀는 곧 생일 파티를 간다는 말로 조급하게 만들었다. “장사에는 관심 없는 거예요?”란 질문 따윈 서울에 버려뒀어야 했다.
이어 말초적인 40대 어른과 20대의 두 여인이 살갑게 담배를 뻑뻑 피우는 풍경을 넘어 삼거리에서 루미아나(Rumiana)를 조우했다. 그녀는 입가의 미소로 짐짓 무뚝뚝하게 인사를 대신한 뒤 도통 손님에겐 관심이 없다. 87년 이래로 나무 조각에만 몸바친 그녀의 팔뚝은 불뚝 튀어나온 힘줄만으로 단단한 남자를 연상시켰다. 연신 깎고, 두드리고, 깎고 또 깎는 나날들. 하루에 고통을 잊은 채 그녀가 작업에 심취하는 것은 10시간~12시간, 그 이상인 날도 많다. 불쑥 그의 작업을 방해한 미안한 맘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작품 하나만큼은 꼭 사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세파를 깎아줄 것 같은 위안 때문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종이 달린 벽걸이 장식물을 어디에 걸어둘지, 선물할지 결정할 새 없이 구입 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로 했다.
길이 아닌 듯한 길에 들어서 만난 다미안 범발로브(Damian Bumbalov)가 세 번째 주인공이다. 상의를 탈의한 채 캔버스에 들어갈 요량으로 집중하던 그는 들어가도 되냐는 질문에 “come! Come!”하며 주섬주섬 셔츠를 챙겨 입었다. 이곳은 큐레이터인 다미안을 필두로 3명의 여학생 아티스트가 영감을 주고받는 작업실 겸 갤러리, 그리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커리큘럼이 진행 중인 오픈 스튜디오다. 주중 단위로 누구나 페인팅이나 누드화, 그래픽 등을 전문가로부터 지도받는 이곳은 방문 당시 인적이 없는 텅 빈 공간이었음에도 아드레날린이 콸콸 쏟아진다. 잘게 구획된 창문 앞으로 제멋대로 놓인 페인팅 통과 도구도 계산된 인테리어 그 이상. 초상화를 그리던 그는 의뢰받은 여인의 초상화를 물 한 번 획 한 번 춤추듯 그리고 있고, 그의 동서남북은 상주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도배해 있다. 전시된 작품의 주인과 공생하는 상황 때문인지, 그의 붓질만큼이나 마음은 춤을 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는 정중히 인사를 건네며 슬슬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벨리코 터르노보는, 특히 늦은 오후의 라코브스키 거리엔 조급함이 없다. 문화와 아트의 영광을 누렸던 옛 영화의 환생을 나지막이 꿈꿀 뿐이었다. 오전과 오후 시간대를 달리해 이 거리를 몇 번 활보했지만, 영 화장실을 잘못 다녀온 양 게임의 ‘미션 컴플리트’는 성사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어쩌나, 이곳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방법이 이 미물에겐 도저히 없다. 게임의 미션은 다시 와야 한다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 Veliko Turnovo’s Hot Place
종교화로 해석되는 이콘화를 그리는, 백발의 이코노그래퍼가 작업하는 곳. 그의 역사는 종교 작품이 갓 허락받기 시작한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함께 시작되었다. 5평 남짓 되는 공간은 안과 밖으로 그가 얼마나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는지, 편히 맘 둘 곳이 없이 빽빽한 작품 범람이다. 이콘화 외에 벨리코 터르노보를 묘사한 스케치는 그의 영민한 내공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Address: 15 Nikola Gabrovski Str. / Tel: 359.62.65.16.61
Address: 15 Nikola Gabrovski Str. / Tel: 359.62.65.16.61
파릇한 23세 때부터 이곳에 뼈를 묻은 니나의 작업 공간이자 판매 숍이다. 벽에 장식해도 좋을 법한 크기와 디자인 별 접시와 호리병 등의 리빙 제품부터 귀고리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까지 그녀의 손은 마를 날이 없다. 수치로 잴 수 없는 인간의 단 하나의 작품이기에, 벨리코 투르노보산 오리지널 작품이기에 불가리아 원조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겐 최상의 선물이 될 것.
Address: 21, G.S.Rakovski Str. Pottery Workshop / Tel: 062. 62.41.64 / E-mail: NINA_ceramik@abv.bg
Address: 21, G.S.Rakovski Str. Pottery Workshop / Tel: 062. 62.41.64 / E-mail: NINA_ceramik@abv.bg
케이티(keti)의 데시벨 높은 웃음이 잊히지 않는다. 루마니아 태생의 그녀는 이곳에서 파는 기념품 이상으로 화색과 화술을 판다. 전 세계의 90% 이상의 장미 오일을 파는 장미 산지답게 장미 향수부터 불가리아 전통 의상, 액운을 막는 전설의 키켑(kykep)과 쿠케르(kouker) 인형 등 불가리아 현지의 오리지널 제품만 판다. 무엇보다 그녀의 행복을 슬쩍 훔쳐가는 게 이곳의 특장점이다.
Address: 11 Rakovski str. / Tel: 359.62.635821
Address: 11 Rakovski str. / Tel: 359.62.635821
365일 비상하는 청춘의 활력이 이곳에 있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이곳은 작업실이자 갤러리였다가 강의실로 변모하는가 하면 축제의 도가니로 들썩이는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큐레이터 다미안의 이상은 이곳이 좀 더 많은 이들과 아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 스트레스를 해방시키는 창구로 자리매김하자는 것. 이끼 낄 새 없이 특별 전시가 수시로 바뀐다.
Address: Veliko Tarnovo, Square ‘Samovodska street’
Tel: 0888. 588. 082 / E-mail: galeria_atelie@abv.bg
Address: Veliko Tarnovo, Square ‘Samovodska street’
Tel: 0888. 588. 082 / E-mail: galeria_atelie@abv.bg
들어서자마자 산림욕을 하듯 은은한 나무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게 된다. 루미아나의 근육이 연신 씰룩대는 시각과 쓱쓱 나무를 긁는 청각의 혼재 가운데 고요하게 그녀의 작품은 펼침면으로 되어 있다. 루미아나의 손재주는 도마와 같은 리빙 제품부터 벽걸이용 시계 등의 장식품까지 나무의 한계를 쓱쓱 지워버린다. 왠지 오감을 자극받은 기분 좋은 나들이가 될 것.
Address: 16 Georgi Mamarchev Str.
Tel: 0898. 34.44.41 / E-mail: rumiana_woodcarver@abv.bg
Address: 16 Georgi Mamarchev Str.
Tel: 0898. 34.44.41 / E-mail: rumiana_woodcarver@abv.bg
동유럽의 밤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은 이유는 불야성을 이루는 네자비시모스트 거리의 두어 개의 레스토랑 덕분이다. 그 중 에고는 50여 명의 셰프가 대기 중인지, 불가리아부터 중국 음식까지 메뉴의 다양함이 지구 한 바퀴를 거뜬히 돈다. 간단한 파스타와 피자, 샐러드의 적당한 만족감은 다녀간 이들의 일관된 평가다. 중세에서 벗어나 현대의 불가리아를 처음 맞이한 기분.
Address: 17 Nezavisimost St. / Tel: 359.888.321.645
Address: 17 Nezavisimost St. / Tel: 359.888.32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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