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뛰어난 풍광으로 여행자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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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820회 작성일 12-06-0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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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쓰는 시칠리아 파스타는 다소 자극적이라 우리 입맛과 은근히 잘 맞다.
시칠리아는 뛰어난 풍광으로 여행자를 사로잡았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교회 건물과 고풍스러운 거리들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물씬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음식도 맛있었다. 유럽의 어느 곳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였다.
또 하나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행복했던 건 파스타 때문이었다. 팔레르모와 카타니아, 아그리젠토, 라구사, 모디카, 트파라니 등등 한달 가까이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수많은 파스타를 맛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던 맛이었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히말라야 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 유목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는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식문화로 발달한다. 그리고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국수를 가져가는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동안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시칠리아의 파스타가 매우 다양하며 맛이 자극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칠리아인들은 스파게티 같은 가는 면 요리는 물론, 독특한 모양의 짧은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시칠리아는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가 귀했다. 그래서 파스타에도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썼다. 맛도 맵고 짜고 다소 자극적이다. 은근히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시칠리아에는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Sarde)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가지와 리코타치즈-열량이 낮은 치즈-로 만든 서민적인 파스타인 노르마(Norma)파스타도 유명하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현지의 요리사에게서 ‘벨라지오 술 민치오’라는 마을에 대해 들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인데, 그 마을의 별명이 ‘카피톨로 디 파스타’(capitolo di pasta)라고 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파스타의 수도’. 작은 마을은 파스타 장인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베로나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고 말았다.
마을은 작았다. 마을 가운데 광장과 시청이 있고 방사형으로 작은 골목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골목마다 파스타 냄새로 가득했고 파스타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파스티피치오(pastificio) 가게들이 즐비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시칠리아와 벨라지오 술 민치오에서 파스타를 먹으면서 지금까지 파스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갈치조림 수준으로 생크림을 ‘넉넉하게’(?) 붓고, 베이컨을 잔뜩 넣어 만드는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생크림이 들어간 한국식 카르보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거치면서 재료와 조리법이 바뀐 것이라고 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맛본 카로보나라는 단순했다. 생크림은 아예 없고 대신 달걀노른자가 들어갔다. 소스는 면에 아주 살짝 묻어있었다. 버터와 후추, 소금 만으로 만든 카르보나라는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다. 그러면서도 묵직한 맛을 전해주었다.
아참,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팔레르모나 아그리젠트, 라구사, 타오르미나 등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시칠리아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이들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들 도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한 주방장은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시칠리아와 베로나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쪽에 떠 있는 삼각형 모양의 섬으로 지중해에 위치한 섬 가운데 가장 크다. 제주도의 13배 정도 되는 크기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트리나크리아로 불렸다.
시칠리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피아다. 이는 아마도 이는 영화 <대부> 때문이리라. 시칠리아 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피신해 모진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의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시칠리아의 주도는 팔레르모다. 팔레르모의 볼거리는 대부분 중앙역 근처에 몰려 있었는데 한나절 쯤 팔레르모를 돌아보고 나자 괴테가 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는지 머리가 끄덕여진다. 팔레르모 외에도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아그리젠토, 휴양지로 잘 알려진 아그리젠토 등이 유명하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베로나(Verona)는 중세 영주들이 만든 로마 시대의 유적들과 분홍빛이 도는 석회암인 로쏘(Rosso)로 만든 건물들이 동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베로나가 한층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펠로(Capello)거리에는 ‘줄리엣의 집’이 있는데, 15세기 풍의 이탈리아 귀족의 저택을 재현해놓았다. 뜰에는 로미오가 세레나데를 불렀을 법한 테라스도 그럴듯하게 만들어져 있고 자그마한 마당에는 줄리엣의 동상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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