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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문을 알고싶으면 산 로렌초 광장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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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1,393회 작성일 14-02-1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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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로렌초 광장은 성당을 방문하고 야외시장을 둘러보려는 관광액들이 넘치는 곳이다. 하지만 8월이면 시민들은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나고, 특히 8월 15일 성모마리아의 승천을 기리는 성모승천대축일 기간에는 나라 전체가 거의 문을 닫는다. 결국 이 기간에 피렌체는 상점도, 레스토랑도, 숙박업소도 문을 닫은 채 여름휴가를 맞은 관광객만 넘치는 불편한 도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피라고스토'라 부르는 8월 휴가를 즐긴다. 거의 로마시대부터 계속된 전통으라고 하는데, 8월이 되면 이들은 도시를 장악한 뜨거운 열기와 관광갣을을 피해 멀리 떠나는 것이다. 피렌체 역시 8월에는 숨막히는 더위와 열정적인 여행자들로 뒤범벅이 되고만다.


이 계절 중 8월 10일은 산 로렌초성당 수호성인의 축일로 산 조반니 광장에서부터 산로렌초광장으로 전통의상행렬이 줄을 잇는다.
산 로렌초는 3세기 기독교 순교자이다. 그는 로마 황제에게 무례하게 대한 죄로 당시 흔한 처형방법이었던 참수형이 아니라 뜨거운 철망 위에서 구워지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산 로렌초는 얄궂은 유머감각을 발휘해 한쪽이 구워졌으니 뒤집어야 한다고 했단다.. 살아생전 교회 공문서 보관인이자 사서였던 산 로렌초는 순교 이후 도서관과 사서들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광장 주변에는 메디치 가문을 생각나게 하는 기념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곳 광장을 바라보는 최초의 성당이 세워진 것은 메디치가문이 소리없이 피렌체 지배를 준비하기 시작한 때부터도 거의 천년전 일이다. 훗날 크게 두 가지로 뻗어나온 메디치가문의 원조격인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14세기에 이 근방의 땅을 사들였다. 15세기에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산 로렌초 성당은 자연히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기 시작한다. 메디치가문이 지역과의 유대를 공고히하면서 산 로렌초 성당을 확장하고 장식하는 데 많은 투자를 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수백년 동안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여러차례 주거지를 옮겼지만, 가문의 힘과 자본, 유골의 집결지라는 산 로렌처 성당의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은 여러세대에 걸쳐 최고의 건축가와 미술가들을 후원하며 작업을 의뢰했고, 가문의 묘지도 점점 화려하게 만들었다.


산 로렌초 광장과 굽이굽이 늘어선 시장 노점들이 성당 복합단지의 삼면을 물결치듯 에워싸고 있다. 산 로렌초 광장은 후대 메디치가문의 거처였던 시뇨리아 광장, 피티광장 같은 사각형 광장과는 전혀 다르다. 면적도 상대적으로 좁다. 지난 세기까지는 건물들이 성당의 대부분을 에워싼 상태였고, 거친 파사드만이 건물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 동북쪽 모퉁이에 메디치가문의 초기 저택이었던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가 있고,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광장 모퉁이에는 조반니 델레 반데 네로의 석상이 있다.

이밖에도 의류, 골동품, 가죽가방, 재킷, 액세서리 등을 파는 시장이 성당을 빙 둘러싸고 인근 거리까지 퍼져있다. 피렌체 최대의 가죽제품 집결지이기도 한 이곳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짝퉁"시계를 사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불법 행상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붙잡히면 어느쪽이든 벌금을 물게되지만 사는쪽이나 파는 쪽이나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노점으로 뒤덮인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두세 블록쯤 가면 메르카토 첸트랄레라는 식료품 시장이 나온다. 해석하면 '중앙 시장'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보기만해도 즐거운 요리재료와 함께 감각적인 자극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광장에서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를 끼고 북쪽으로 난 지노리 거리도 색다를 쇼핑경험을 안겨준다. 넓지않은 길에 고운 직물, 액세서리, 문구류, 손으로만든 책 등을 파는 독특한 상점들이 늘어서있기 때문이다. 지노리 거리를 따라 걸으면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한적한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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