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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음을 빚어내다.-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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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2,081회 작성일 11-10-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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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요? 고려 하면 청자이고 조선 하면 백자이듯이 백자는 마치 조선의 그릇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릇들과 관련해서 흔히 갖게 되는 오해 중 하나는 청자가 미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백자보다 우수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청자가 워낙 아름다운 그릇이다 보니 그런 선입견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미학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백자가 청자보다 앞선 그릇이랍니다. 조선이 백자를 주요 그릇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백자가 청자보다 더 우수한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청화백자. 코발트로 표면에 파랗게 문양을 그려넣는다. <출처: Claire Houck at en.wikipedia.org>
 
 
조선의 미학과 세계관을 형상화한 백자
청자와 백자 사이의 차이는 우선 흙에 있습니다. 청자나 백자나 고령토라 불리는 백토 혹은 자토(瓷土)로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백자 흙은 청자 흙보다 순도가 더 높은 흙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굽는 온도도 백자가 청자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유약도 백자 것이 더 낫습니다. 청자를 보면 유약을 칠한 그릇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백자에는 이런 균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유약에 잡물이 제거되어 있어 균열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백자가 단지 청자보다 앞선 그릇이었기 때문에 조선조 때 유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념적으로도 조선과 어울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중국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당시 중국(명)은 송 대에 일어난 성리학이 국시(國是)가 되면서 유학이 부흥하게 됩니다. 성리학에서는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내적인 청결을 중시하고 질박하고 검소한 삶을 더 칩니다. 그래서 조선의 유물 중에는 화려한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백자는 딱 맞아떨어집니다. 백자에는 단순, 소박, 생략감이 있고 더 나아가서 여유와 익살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대부가 지향하는 청렴과 순백함을 반영
 
 
백자가 조선에서 유행하기 전에는 분청사기가 유행했습니다. 분청자란 청자에 하얀 분을 칠한 그릇입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양질의 백자가 조선의 왕실에 전해지자 서서히 백자가 호응을 얻기 시작합니다. 분청자는 조선의 귀족들이 보기에 너무 투박하고 자유분방했을 겁니다. 그래서 양반들은 백자에 끌리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는 흰옷을 입는 풍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풍습도 성리학과 이념이 부합되는 면이 있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사대부가 지향하는 청순함과 결백함 등이 백자나 흰옷에 반영되어 이런 것들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정부는 백자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게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백자 흙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불을 엄청 때야 하니 주위에 나무들도 많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운송이 편해야 합니다. 그릇은 아무래도 깨지기 쉽기 때문에 배로 운반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런 조건을 다 갖춘 곳이 나타났으니, 그곳이 바로 경기도 광주입니다. 지금도 광주에는 분원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왕의 음식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分院)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지역의 이름도 분원리가 된 것이지요. 이곳에서 나는 흙은 최상은 아니더라도 꽤 좋은 편이었고 나무도 울창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강과 가까워서 한양으로 운송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죠. 인근에만 300개가 넘는 가마터 유적이 있다고 하니 아주 활발한 작업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시려면 그곳에 세워져 있는 ‘분원백자자료관’에 가보면 됩니다. 중부고속도로에서 천진암 나들목으로 빠져 약 20분 정도 가면 나옵니다. 이곳에는 특히 자료관 안에 백자 파편을 있는 그대로 발 밑에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백자의 종류
 
 
 
 
백자는 크게 순백자, 청화백자, 상감백자, 진사백자, 철회백자 등으로 나누는데 좀 복잡하지요? 도자기 같은 전통 예술품들은 한자 용어가 많아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순백자는 도자기에 아무 문양도 그리지 않은 ‘민’ 백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청화는 코발트로 파랗게 문양을 그린 것이고, 상감은 청자와 같은 방식으로 백자 표면에 상감기법을 쓴 것이겠죠. 철회는 철분안료를 써서 다갈색이나 흑갈색 계통의 문양이 보이고 진사는 말 그대로 빨간 진사를 써서 도자기 표면의 그림이 붉게 나타나는 그릇을 말합니다. 이 중에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순백자입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장식하지 않은 그릇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조선 백자의 하얀 빛깔은 똑같은 색을 띠는 경우가 하나도 없다 합니다. 크게 보면 우유 빛인 유백(乳白)에서 눈처럼 하얀 설백으로, 또 회색 빛인 회백으로 그리고 푸른 하얀 빛인 청백으로 점차로 바뀌어 갔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에서 같은 색깔은 없다는 겁니다. 이게 기술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쉽게 알 수 없을 듯합니다. 이런 순백자 가운데 조선을 대표하는 백자는 일명 ‘달항아리’라 불리는 그릇입니다. 이 그릇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고 최순우 선생이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함을 지녔다’고 칭송했던 그릇입니다. 이 그릇은 극히 정갈한 형태와 흰색이라는 단순한 색으로 되어 있는데, 보고 있으면 그냥 좋은 그릇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으니 도대체 그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 그릇의 미학은 극히 소박한 가운데 여백이 있어 여유롭고 또 비대칭적인 모습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없는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달항아리 백자. 정갈하지만 친근한 형태로 조선을 대표하는 순백자이다. <출처: hojusaram at en.wikipedia.org>
 
 
 
 
 
비대칭 형태에 녹아있는 멋과 여유
 
그러나 한국인들이 대칭적인 백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그릇을 완벽하게 대칭으로 만드는 일은 기술이 뛰어난 장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그릇이 보여주는 완벽한 대칭을 좋아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의 그릇을 보십시오. 같은 그릇에 투박한 선을 그려놓았지요? 이 선은 바로 이 그릇에 달려 있던 끈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의 모습이 아주 절묘합니다. 자유분방하게 내려오다가 마지막에 한번 꼬았습니다. 이 선은 대충 그린 것 같지만 흉내 내기 어려운 선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유분방한 선을 그림으로써 완전대칭에 파격을 가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 옆의 사진은 더 웃깁니다. 이 그릇은 민화를 볼 때 잠깐 언급했습니다. 일명 바보호랑이 백자라 했죠? 조금 전에 본 달항아리 모양 그릇 위에 아주 다정한 우리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그렸습니다. 그릇의 모양도 비대칭인데 문양까지 익살스러우니 이것이야말로 한국미의 전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최상의 백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당시에 중국과 한국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그릇이었죠. 그런데 조선말로 오면 백자 기술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나라가 시들해지니 산업 기술도 같이 하락세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도자학계에서는 조선의 백자가 얼마나 뛰어난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후손들이 아직 그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까요?
 
 
비대칭과 자유분방한 멋을 잘 보여주는 백자(왼쪽)과 해학과 익살을 보여주는 백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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