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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도 인천에서 단소를 만드는 장인 김환중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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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36회 작성일 10-10-09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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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이며 독특한소리의 단소
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구성진 恨의 소리가, 때로는 좋다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는 소리가 단소가락에는 배어 있다.
우리 민족 정서를 모두 소리로 자아내는 그런 악기인 셈이다.
그것은 대금소리와는 또 다르다.
대금이 사내다운 음을 내는 악기라면, 단소는 여성스런 맛이 난다고 이른다.

한자 남짓한 대나무피리, 단소의 소리는 예전에 일정하지 않았다.
지방마다 서로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를 향제(鄕制)단소라 하였고, 국악인 김기수선생이 60년대 여러 지방의 단소소리를 악보로 채록하여 경제(京制)단소로 전국의 단소소리 통일음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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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과 땀으로 빚어낸 김환중 선생의 작품들

●아직은 낯설은 우리의 음악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의 전통음악은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학교교육 현장에서, 매스컴을 통하여 위상정립을 위한 노력이 나타났다.
국악의 음악적 가치를 인정하고자 하 는 이러한 조류에도 불구하고 전통음악은 몇몇 관심을 가진 사람 외에 일반인들에게는 늘 생소하다.
그래서 국악은 별 감동이 없는 단지 옛날 우리 조상의 음악정도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오로지 서구문화 지향적인 소위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우리 문화 단절현상의 대표적인 경우를 보여준다.

●전통의 맥을 잇는 장인
지난 세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전통문화의 소멸과정은 단소장 김환중(金晥中;인천시 지정 무형문화재 2호, 57)선생의 어릴적 기억에도 생생하다.
고향(충남 서천)에서 단소를 잘 불었고 또한 단소제작의 기예를 익혀 오셨던 선친 용자 신자(容信, 90년 작고)어른은 단소를 잘 만든다는 이유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김선생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당연했다.
전통 음악에 대한 평가가 그러했던 시절이 었다.
그래서 선생도 선친 곁에서 거들던 단소제작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오히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단소만드는 일로 생계유지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가계로 이어지는 단소만들기
김선생이 단소제작 기예를 부친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전수 받은 것은 30대 중반부터 였고, 40을 넘기고 나서 단소 소리도 익히고 단소의 멋에 심취하게 되었다.
우리 소리에 귀가 열리게 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라디오의 국악방송 또는 국악연주테이프를 늘 함께하고 있으며 소리의 본질을 찾고자 연구 중이다.

단순한 단소제작 이상의 무엇을 추구하는 선생의 태도에서 우리 전통의 맥이 계승되는 한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선친이 서천에서 인천으로 옮겨 단소 제작을 하신 이후 1985년에 무형문화재(인천시)로, 동시에 선생은 기능전수후보자로 지정되었다.
선친이 타계하신 이후 그 일은 이제 선생의 독자적인 업이 되었고, 꿈이라면 아들에게도 이 업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학 다니다 군에 간 아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단소는 전북에서 경남에 이르는 해안의 산등성이나 집울타리에서 자생하는 오죽(烏竹)으로 만든다.
새까만 오죽의 숫대와 암대 중에서 암대로 만든 단소를 그중 최고로 친다.
대개 마디가 4개 이상이 있는 대나무를 쓰고, 마디가 5개 이상이면 고급품에 속하게 된다.
단소재료인 오죽은 선생이 직접 캐오는데, 4~5년생 오죽의 밑뿌리에서부터 약 1m정도 되게 잘라 온다.
3년이상 자라지 않은 대나무는 물러서 단소재료로 적절치가 않다.

혼신의 노력 끝에 완성한 단소를 시험하고 있는 김환중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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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자르는 시기는 이른 봄이 좋다.
겨우내 추위를 견뎌내어 견고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 죽제품 제작이 거의 소멸되자 요즘 대밭이 거의 황폐화되어 재료수급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자라온 대나무는 다음과 같은 공정을 거쳐 하나의 단소로 완성된다.
①소금물에 끓이기 : 잘라온 대나무는 계란이 뜰 정도의 소금물에 10시간 정도 끓인다.
②건조작업 : 소금물에 쩌낸 대나무는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서너달동안 말린다.
③대나무 바로잡기 : 대나무가 곧다고하지만 오죽의 경우 바르게 된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불에 구워서 바로 펴는 작업을 통해서 일직선으로 만든다.
예전에는 숯불에 구웠으나 지금은 부찌램프라는 것을 사용하고, 펴는 작업을 용이하게 만든 틀에 불에 구은 대를 고정시켜 펴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대나무가 터지거나 부러지거나 하여 대나무의 손실이 가장 많이 나는 작업이다.
바르게 편 대나무는 다시 3일 정도 말린 후, 작업하기 알맞는 좋은 길이로 자르는데 이때 단소크기보다 약간 길게 약 50cm 정도 길이로 자른다.
⑤내공작업 : 대나무 안에 구멍을 뚫는다.
대나무 속의 구멍을 '내공’이라고 하고 이 구멍의 크기는 바로 소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⑥지공작업 : 내공을 뚫은 대나무를 다시 45cm정도로 자른 다음 손가락으로 잡고 음정을 조율하는 구멍인 '지공'을 뚫는다. 이 때 지공의 배열을 고르게 하기 위해 먹줄을 놓은 후 송곳으로 뚫게 된다.
지공은 단소의 윗부분에 네 개, 아래에 하나 모두 다섯 개다.
내공과 마찬가지로 지공뚫기도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음정과 연관되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⑦취구작업 : 지공작업이 끝나면 대나무를 다시 42cm 정도로 자른 후, 단소를 입에 대고 부는 부분인 '취구'를 반달 모양으로 파낸다.
취구는 음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세심한 정성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⑧표면다듬기 : 이상의 작업이 끝나면 대나무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사포와 헝겊으로써 수없이 갈고 닦아낸다.
⑨줄감기 : 다듬기가 끝나면 대부분 마디사이가 되는 지공의 사이에 명주실로 1cm 정도 감는다.
이는 대나무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단소를 지속적으로 불게 되면 안쪽 입김에 의한 습기가 차게 되고 이것이 건조한 대나무를 갈라지게 하거나 터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좋은 장식효과도 내기 때문이다.

단소제작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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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과 철학으로 빚어내는 작품
이러한 여러 공정을 거쳐서 완성되는 단소는 그 자체가 장인의 작품이다.
그러나 김선생은 좋은 악기는 이미 50%완성되어 있다고 하신다.
그만큼 대나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잘생긴 대나무’에 공과 정성이 가야만 명기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장인의 정신이 여기에 있을 때 그것은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사실 단소의 경우 상품화할 만큼 제작도 불가능하지만, 수요도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무형문화재 협회에서 주최하는 전시회를 통해서 판매하는 정도이다.
여기에 단소제작을 생업 기반으로 못삼는 이유가 있다.
이 점은 우리가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을 말할 때 무엇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구호로서 가치만 가질 뿐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못하지 때문이다.
선생은 단소하나를 10만원 정도에 팔지만 그때의 마음은 딸 시집보내는 심정이다.
‘만드는 공이 얼마기에’, 그리고‘맘에 차지 않으면 태워버리고’남은 것이 선생이 만드신 단소이기에 함부로 아무에게나 팔지도 않는다.
불 줄 모르는 사람이 사러 오면 우선 삼천원 짜리 플라스틱 제품을 권한다.
소리를 아는 사람만이 단소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선생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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