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한다는 건 마음을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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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erbena 댓글 0건 조회 1,903회 작성일 11-03-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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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잔은 입술과 목을 적셔주고,
둘째 잔은 고민을 씻어주고,
셋째 잔은 무뎌진 붓끝이 풀리게 하고,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을 솟아나게 하고,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맑게 하고,
여섯째 잔은 신선의 영과 통하게 하고,
일곱째 잔은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크고 작은 차인들의 모임이 수천 곳에 이르고, 차도茶道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차는 이제 하나의 문화 코드다.
이 디지털 시대에 차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가을 초입에 찾은 두륜산은 이제 서서히 생장판을 닫고 물을 내릴 준비를 하는 듯하다. 대흥사 일주문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제멋대로 아무 곳에나 둥지를 틀지 않는다는 배롱나무만이 붉은 꽃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을 초입에 찾은 두륜산은 이제 서서히 생장판을 닫고 물을 내릴 준비를 하는 듯하다. 대흥사 일주문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제멋대로 아무 곳에나 둥지를 틀지 않는다는 배롱나무만이 붉은 꽃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용한 산사의 앞마당이나 이름난 정자의 뒤뜰 같은 길한 곳에 한번 뿌리를 내리면 석 달 열흘 동안 꽃이 핀다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나무다. 곧이어 자우홍련사 누각 뒤로 소박하면서도 반듯한 암자가 보인다. 기와가 아닌 볏짚을 이고 있는 암자 일지암一枝庵. 조선시대 말 초의草衣선사가 직접 짓고 40여 년 동안 머물렀던 차茶의 성지聖地다.
초의는 다산 정약용의 제자가 되어 시를 익히고, 추사 김정희와 다우茶友가 되어 명맥이 끊겨가던 우리 차를 중흥시켰던 인물로 ‘다성茶聖’으로 불린다. 초의선사가 차를 달여 부처님 전에 올리면서 존재의 근원을 사유했던 일지암에는 이제 여연스님이 남아 차인의 삶을 엮어가고 있다.
여연스님이 기거하는 자우홍련사 대청마루와 손님이 머무는 별채에는 늘 정갈하게 다구가 준비되어 있다. 멀리서 온 객을 맞으며 스님이 방 한편에 놓인 작은 항아리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전기주전자에 붓고 버튼을 누르니, 잠시 후 펄펄 물 끓는 소리가 난다.
여연스님이 기거하는 자우홍련사 대청마루와 손님이 머무는 별채에는 늘 정갈하게 다구가 준비되어 있다. 멀리서 온 객을 맞으며 스님이 방 한편에 놓인 작은 항아리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전기주전자에 붓고 버튼을 누르니, 잠시 후 펄펄 물 끓는 소리가 난다.
그러고는 자신은 바깥으로 물러나고 객을 찻상 가운데자리에 앉히며 대뜸 “차 한잔 해야지? 거기 차 좀 넣고 만들어봐요” 하신다.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차의 고수에게 한 수 배우러 왔다가 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못한 채 벼락같은 시험을 먼저 치르게 생겼으니 말이다.
“네? 제가요?”라는 반문에 “그래. 편하게 한번 해봐요”라 하신다. 언젠가 차 애호가와 차를 마시던 기억을 더듬거리며,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주워들었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긴장된 손길로 차 끓이기를 시작했다. 먼저 주전자의 물을 물식힘그릇인 숙우에 부어 식혔다. 차시로 찻잎을 떠서 다관(주전자 모양의 차우림그릇)에 담고 식힌 물을 부었다.
몇 분 후 우려낸 차를 다시 숙우에 옮겨 담고, 숙우에 담긴 차를 각 찻잔에 채워 함께한 사람들에게 맛보게 했다. 과정마다 적절한 양이며, 시간, 도구들을 스님께 재차 확인하면서 차를 우려냈다. 차를 함께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오갔다.
“차는 이런 거야. 거기 그렇게 앉아 있으니 꼭 차인 같네” 하며 웃으신다. 내게도 차가 한뼘쯤 가까워진 듯하다.
차가 아름다운 이유 여연스님과 차의 인연은 35년이 가까워진다. 초의선사와 차가 마치 ‘벼락 치듯’ 다가왔다고 회상한다. 차생활의 첫경험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차가 아름다운 이유 여연스님과 차의 인연은 35년이 가까워진다. 초의선사와 차가 마치 ‘벼락 치듯’ 다가왔다고 회상한다. 차생활의 첫경험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행자 시절, 절 살림살이의 총책임을 맡은 원주스님이 초겨울 추위에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렸다. 산중에서 약을 사러 나갈 수도 없어 걱정하고 있던 그에게 한 채공보살이 귀띔하기를 “여름 공부철에 보니까 스님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찬장에 있는 무슨 풀을 달여 마셔 몸이 낫는 것을 봤다”는 거였다.
그는 칭찬받을 양으로 통에 들어 있던 풀잎을 약탕기에 다 쏟아넣고 정성껏 달여 원주스님께 갖다드렸는데, 오히려 호통을 치시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 풀잎은 다름 아닌 원주스님이 큰스님 드리려고 귀하게 아껴 깊숙이 보관해온 작설차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끄러움과 민망함 속에 시작된 차와의 인연은 또 한번의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새해 첫날 해인사에서 수좌스님께 세배 드리고 얻어 마신 차에 대한 기억이다. 그 겨울에 맛보았던 차의 맛과 향은 그 생애 최고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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