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작가 하진의 이민자 이야기..소설 '자유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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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mile 댓글 0건 조회 945회 작성일 14-10-30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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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58)이 200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자유로운 삶'(원제: A Free Life)은 1980년대 중반 미국에 유학 온 중국인 난우의 이야기다.
유학 도중 톈안먼 사태를 목격한 난우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 핑핑을 미국으로 건너오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 타오타오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난우는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자유에 대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컸다.


난우는 정치학 대학원 과정을 그만둔다. 이제 혼자 벌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처지가 된 그에게 공부는 사치였다. 그는 "집안의 수레를 끄는 짐말"(1권 46쪽)처럼 야간 경비원으로, 버스 보이(설거지나 그릇 치우는 일을 하는 웨이터의 조수)로, 요리사로 밤낮없이 일한다.
시인이 되겠다는 오랜 꿈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시를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우는 아내 핑핑을 사랑하지 않았고 중국에 있는 옛 여자 친구 베이나를 못 잊고 있지만 한푼 한푼 돈을 모아 조그마한 식당을 열고 나자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 이혼을 고려할 겨를도 없다.
"베이나가 이따금 꿈에 나타났지만, 지난 2년 동안 그녀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는 않았다. 먹먹한 고통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지만 전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환상에 빠지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다. (…) 쓰는 것은 고사하고, 뭘 생각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2권 17쪽)
난우가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매일 십수 시간의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식만큼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민 1세대들과 마찬가지로 난우 역시 그의 모든 실존이 거기에 달려 있었다.
작가는 난우의 희생과 모험을 어떤 과장도 없이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에 실어 나른다. 전 2권에 합계 1천 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에는 하루 또 하루를 견뎌내는 난우의 분투가 마치 카메라로 찍어내듯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점은 난우가 미국에 이민 와서 12년 동안 겪었던 일들이 작가의 일생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이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미국에 유학 온 작가는 1989년 중국 정부가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에 눌러앉기로 했다.
이후 작가는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해 1999년 첫 장편 '기다림'으로 펜 포크너상과 전미도서상을 동시에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2004년 '전쟁쓰레기'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수상하지 않는 전통을 깨고 다시 펜 포크너상을 수상했다.
소설의 첫 장에서 작가는 '이 책 속의 삶을 살았던 리샤와 웬에게' 책을 바친다고 썼다. 리샤와 웬은 작가의 아내와 아들의 이름이다. 난우의 시인 친구인 딕 해리슨처럼 작가 역시 에모리대에서 거주 작가로 8년간 재직했다.
그러나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과 주인공 난우를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일부 독자들은 난우와 나를 동일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보아 자전적이 아니다. 만약 내가 난우라면, 훨씬 더 운이 좋은 난우"라고 썼다.
그럼에도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취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난우가 이민자로서 겪고 느끼는 고통과 고뇌와 몸부림은 이민 초기에 작가가 거쳐야 했던 것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미국에 오기 전까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도 몰랐던 작가가 중국어로 썼으면 훨씬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음에도 영어로 글을 쓰는 모험을 감행했듯이 난우 역시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창작을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시를 발표한다.
작가는 난우가 시인으로서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 장에 난우가 지은 시 20여편을 실었을 뿐이다.
사실 난우가 시인으로서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공은 대부분 운이 좌우할 뿐이다. 작가는 진정으로 인간을 숭고하게 만드는 것은 고통과 상실, 좌절, 우려, 두려움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소설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값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값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다."('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시공사. 1권(518쪽)·2권(499쪽). 각 권 1만4천800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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