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저버린 할리우드, 1930년대 나치정권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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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mile 댓글 0건 조회 714회 작성일 14-10-3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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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정은 기본…영화사 대표, 유대인 부인과 이혼까지
할리우드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 미국 영화업계가 독일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이려고 나치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미국 영화잡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하버드대 연구원 벤 어원드가 저술해 오는 9월 출간 예정인 '협력(Collaboration) : 할리우드와 히틀러의 약속'을 발췌, 미국 영화업체들이 나치에 어느 정도까지 협조했는지 상세히 다뤘다.
보도에 따르면 나치와 할리우드의 공조가 시작된 것은 1930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작품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독일에서 개봉하면서다.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패전한 자국 군대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크게 반발했다.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파울 괴벨스도 독일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며 이 영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이 영화는 독일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유대인 출신인 칼 래믈레 유니버설 스튜디오 회장은 독일 시장을 놓칠 수 없다며 영화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수정본은 이듬해 독일에서 재상영 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 영화를 수정본으로 상영하라고 요구했고 영화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독일 외무부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협력은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자사 번영에 목적을 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사의 속내를 뻔히 들여다보고 있던 셈이다.
'협력'이라는 용어는 1930년대 나치와 할리우드와 거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됐다.
영화사 RKO와 20세기폭스 대표는 독일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 때마다 미국 내 독일 총영사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충성 맹세에 가까운 약속을 하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잡은 이후엔 영화 검열이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파라마운트사의 영화 '기브 어스 디스 나이트'(1936)의 경우 유대인이 작곡한 음악이 배경 곡으로 사용된 것이 문제가 됐다. 나치 정부는 이를 독일 작곡가의 음악으로 더빙하라고 요구했다.
검열이 심해지자 영화사들은 나치 정권과 가까워지려고 갖은 공을 들였다.
파라마운트는 1937년 독일지사 대표에 나치 당원을 앉혔고, MGM의 독일 대표 프리츠 스트렝홀트는 독일 선전부의 요구에 따라 유대인 부인과 이혼까지 감행했다.
이후 그의 부인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나치 선전 영상물 제작에 자신들이 제작한 영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협력을 이어왔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0년대 들어서야 반(反) 나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인 어원드가 2004년부터 미국과 독일 등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다. 미국에서 오는 9월 9일 출간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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