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스터이자 동보서적이 내는 웹진 '책소식' 편집장인 박현주 씨가 우리 사회의 책과 출판 및 도서관 문화에 대한 소식과 의견을 들려주는 '박현주의 책과 세상'을 매주 목요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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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험한 세상을 건너게 해주는, 믿을 수 있는 다리가 아닐까. 본지 서상균 화백이 그린 북카툰의 한 장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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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베스트셀러는 잘 팔리는 책이라는 의미이지, '좋은 책'의 또 다른 동의어는 아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있다.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아보자. 미국의 미디어 연구가인 엘리스 페인 해케트는 "나는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출판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옛 복사본의 한 기사에서 처음 발견했다. 그 기사는 뉴욕의 어떤 책 판매인이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항구에 있는 가판대 상인에게 '여기서 가장 잘 팔리는 책(bestseller)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는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용어 베스트셀러는 점차 널리 사용되기 시작해 1895년 문학잡지 '북맨(The Bookman)'에 최초의 베스트셀러 목록이 실린 후, 미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이 매달 발표되었다.베스트셀러를 '다량의 판매부수를 기록한, 많이 팔린 책'이라 할 때, 우리나라에서 진짜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1980년대는 자동차운전면허문제집이, PC가 본격 보급되던 1990년대는 컴퓨터입문서가, 너도 나도 영어에 목숨을 걸고 사는 2000년대는 토익 학습서가 진정한 승리자다. 그 시대를 모두 통틀어 보면 역시 자동차운전면허문제집이 아닐까. 대형서점에서 필요에 의해 반드시 구입하는 독자층이 있는 이런 분야의 책들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시켜 발표하는 경우는 드물다.매월 그리고 매년 베스트셀러 목록이 발표되고, 그 목록은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베스트셀러를 신뢰하거나 혹은 불신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비판적 지지의 입장에 서거나 어쨌든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베스트셀러를 평가하고 있다.
오랫동안 책동네에서 일하면서 필자가 느낀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이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연말 두어 달 동안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출판사와 서점 관계자들을 정신없이 몰아치고 그 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책도 있었다. 지난 시대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당시에는 분명히 굉장한 화제를 모았으나 지금 와서 보면 도대체 그 책의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거나, 어떻게 이 책을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읽었을까 의아스러운 경우도 있다.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는 저자나 출판사보다 독자들과 우리 사회가 받는 혜택이 더 크다. 양서가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다른 출판사에서 더 좋은 책을 펴내고자 하는 경쟁의식이 생기게 되고 이는 출판문화 발전을 가져온다. 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관 정립에 기여하는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사형제도에 무관심한 독자들의 마음에 미친 영향이 그 예가 되지 않을까.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인 경우이든, 그렇지 않든 그 나름 의미가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합의를 거치지 않고서도 같이 선택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의미와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으로 별로 인정받지 못한 한 시인의 사랑 타령 시집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그 시집의 수준을 언급하기 전에 어렵기만 한 시집이 독자들을 밀어냈던 일을 먼저 짚어보자고 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는 것은 베스트셀러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본다는 의미다. 욕하면서도 그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통해 현대사회의 트렌드를 포착해내는 것처럼, 베스트셀러 역시 이 시대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동보서적 웹진 '책소식' 편집장·동의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