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의 탄생> - 엘리자베스 애보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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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317회 작성일 10-08-11 10:44
본문
<독신의 탄생>이라. 제목 참 묘하다. 원래는 . Celibacy가 독신 또는 금욕이란 뜻이거니 ‘독신 또는 금욕의 역사’쯤 되리라. 언뜻 보아 좁고 갑갑한 주제를 가지고 이처럼 방대한 책을 만들다니 지은이나 읽는이나 피장파장이다. 자국 캐나다의 한 고아원에서 일어난 신부들의 어린이 성학대 사건과 금욕주의 남자가 아내와 외간남자의 동침을 묵인한다는 얘기가 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다. 6년에 걸친 연구 결과가 이 책일 터인데, 연구 중반 무렵 지은이는 독신(금욕)주의자가 되었다.
금욕(독신)은 가톨릭이나 절의 풍경쯤으로 생각하지만 지은이는 그것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리스에서 잉카 중국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널려 있음을 700쪽에 걸쳐 콩이야 팥이야 기술한다.
예컨대 고자. “황제의 첩을 임신시킬 가능성 없다는 이유로 지밀한 곳에서 황제를 보필했던 중국의 내시한테 잘린 성기는 가보였다. 그것 없이는 고위직에 오를 수 없었고 죽을 때도 성한 몸으로 내세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꼭 필요했다. 거세시술 경황 중에 그것을 챙기지 못했다면 나중에 수술비의 8배를 물고 찾아가야 했다. 내시 자리는 경쟁이 치열해 명나라 말기(1644년) 3000명 자리에 무려 2만명이 몰렸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뒷부분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회학 교과서 같은 전반부를 돌파해야 한다. 성마른 사람들은 뛰어넘어도 무방하지만 논쟁적인 고갱이를 지나쳤음은 알아두라.
우선 지은이의 여성주의적 시각. 남성의 금욕(독신)은 끊임없이 조롱하는 반면 여성의 그것은 희생과 고귀함으로 승화시킨다. 남성주의로 뒤발된 역사기술이었으니 그럴만하다.
▲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아테나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처녀성을 지녔다. 미모에다 지략이 출중한 그는 황금투구에 창과 방패를 휘두르며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터를 휘젓고 다녔다. 성격이 불같았지만 만능재주꾼으로 말길들이기, 배와 마차 만들기에 능했다. 사진은 클림트의 ‘팔라스 아테네’. 그리스의 한 의사는 ‘노처녀 히스테리는 성행위를 못해본 자궁의 반란’이라고 보고 처방전은 성교와 임신을 처방했다. 그 의사는 다름아닌 히포크라테스다! 19세기 미국의 남성순결운동은 별것 아닌 “정액 한방울은 혈액 네 방울에 해당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침밥으로 먹어봤음직한 콘플레이크는 평생 섹스를 혐오한 존 하비 켈로그(1852~1943)가 성욕을 줄이려 고안한 식품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는 정액을 배설하지 않으면 마음이 독해져 악착같이 싸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6주 전부터 금욕생활에 들어갔다. 인도의 간디는 성적 유혹에 맞서 자신의 절제심을 시험한다는 이유로 10대 소녀나 갓 결혼한 신부와 동침했다. 정액에 목숨건 팔푼이들 같으니라구.
그럼 여성들은? 잔다르크는 조국을 위해 처녀로서 남장을 하고 나섰다가 화형당했다. 아마존 여걸들은 활을 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한쪽 유방을 잘라냈다. 엘리자베스 1세(지은이의 나라가 속한 영 연방의 왕이었다)는 남자의 등에 업히지 않고 나랏일을 떠맡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초석을 놓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인류애라는 숭고한 대의명분을 위해 야전병원을 누볐다. 중세 수녀원에서의 방종이라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여성한테는 후광이 덧씌워져 있어 여성주의적 시각이 아니고는 좀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책 머리로 삼은 신화 속의 독신여신 아테나, 아르테미스, 헤스티아가 살아온 듯하다.
다음으로 지은이는 카톨릭의 독신에 대해 조롱섞인 시선을 보낸다. 수백년 전에 살았던 몇몇 가톨릭 독신자들의 사이의 불건강한 일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많이 존재했을 건강한 가톨릭 독신자들은 등장하지 않느다. 테레사 수녀, 캐서린 드렉셀 수녀,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 등은 어떤가. 또 마르틴 루터나 존 칼뱅 등 종교개혁가들이 여성을 유혹자, 남성보다 죄에 취약한 존재로 묘사한 것을 두고 그들이 여성을 혐오했다고 기술한다. 하지만 그들이 여성을 혐오했기 때문에 독신과 처녀성을 옹호했다는 주장은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 듯하다. 또 독신 여신 아테나, 아르테미스 헤스티야와 대척점에 있는 바람둥이신 제우스와 동정녀를 임신시킨 기독교의 신을 은근히 대비하고 교부들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벌인 노력도 우스꽝스럽게 기술한다.
지은이는 독신(금욕)을 영적으로 이로운 자발적인 독신과 비인간화를 부르는 비자발적 독신으로 구별한다. 강제된 독신으로 감옥, 제정 러시아의 여교사, 중국의 문화혁명 등을 예로 드는데 제정 러시아의 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면 퇴직을 당연시했던 우리나라의 우스꽝스런 관례를 떠올리게 한다. 힌두사회의 과부는 전생에 남편에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받은 징벌로 간주되어 따돌림을 받고 과부는 죽은 남편의 소유이므로 재가할 수 없다는 상황이나 간음 또는 혼전성교에 대한 벌로써 ‘명예살인’이 당연시되는 중동여성들의 곤경에 대한 기술 역시 남성중심 시각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지은이는 이 책이 현실을 묘사하고 분석한 책이지 금욕을 옹호하거나 비판한 책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금욕(독신)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독자라면 일독 후 금욕(독신)이 그럴싸하게 보일 터이고 남자 독자들은 선대 남자들을 빈축할 터이지만 에이즈의 창궐을 언급함에 이르러 금욕(독신)에 대해 시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celibacy가 금욕, 독신 등 분리되지 않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 양자가 명백히 구분되는 우리로서는 책이 좀 두서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주제의 모든 자료를 섭렵해 기술한 만큼 답답한 가운데 진도가 나가고 읽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금욕(독신)은 가톨릭이나 절의 풍경쯤으로 생각하지만 지은이는 그것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리스에서 잉카 중국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널려 있음을 700쪽에 걸쳐 콩이야 팥이야 기술한다.
예컨대 고자. “황제의 첩을 임신시킬 가능성 없다는 이유로 지밀한 곳에서 황제를 보필했던 중국의 내시한테 잘린 성기는 가보였다. 그것 없이는 고위직에 오를 수 없었고 죽을 때도 성한 몸으로 내세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꼭 필요했다. 거세시술 경황 중에 그것을 챙기지 못했다면 나중에 수술비의 8배를 물고 찾아가야 했다. 내시 자리는 경쟁이 치열해 명나라 말기(1644년) 3000명 자리에 무려 2만명이 몰렸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뒷부분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회학 교과서 같은 전반부를 돌파해야 한다. 성마른 사람들은 뛰어넘어도 무방하지만 논쟁적인 고갱이를 지나쳤음은 알아두라.
우선 지은이의 여성주의적 시각. 남성의 금욕(독신)은 끊임없이 조롱하는 반면 여성의 그것은 희생과 고귀함으로 승화시킨다. 남성주의로 뒤발된 역사기술이었으니 그럴만하다.
▲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아테나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처녀성을 지녔다. 미모에다 지략이 출중한 그는 황금투구에 창과 방패를 휘두르며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터를 휘젓고 다녔다. 성격이 불같았지만 만능재주꾼으로 말길들이기, 배와 마차 만들기에 능했다. 사진은 클림트의 ‘팔라스 아테네’. 그리스의 한 의사는 ‘노처녀 히스테리는 성행위를 못해본 자궁의 반란’이라고 보고 처방전은 성교와 임신을 처방했다. 그 의사는 다름아닌 히포크라테스다! 19세기 미국의 남성순결운동은 별것 아닌 “정액 한방울은 혈액 네 방울에 해당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침밥으로 먹어봤음직한 콘플레이크는 평생 섹스를 혐오한 존 하비 켈로그(1852~1943)가 성욕을 줄이려 고안한 식품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는 정액을 배설하지 않으면 마음이 독해져 악착같이 싸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6주 전부터 금욕생활에 들어갔다. 인도의 간디는 성적 유혹에 맞서 자신의 절제심을 시험한다는 이유로 10대 소녀나 갓 결혼한 신부와 동침했다. 정액에 목숨건 팔푼이들 같으니라구.
그럼 여성들은? 잔다르크는 조국을 위해 처녀로서 남장을 하고 나섰다가 화형당했다. 아마존 여걸들은 활을 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한쪽 유방을 잘라냈다. 엘리자베스 1세(지은이의 나라가 속한 영 연방의 왕이었다)는 남자의 등에 업히지 않고 나랏일을 떠맡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초석을 놓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인류애라는 숭고한 대의명분을 위해 야전병원을 누볐다. 중세 수녀원에서의 방종이라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여성한테는 후광이 덧씌워져 있어 여성주의적 시각이 아니고는 좀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책 머리로 삼은 신화 속의 독신여신 아테나, 아르테미스, 헤스티아가 살아온 듯하다.
다음으로 지은이는 카톨릭의 독신에 대해 조롱섞인 시선을 보낸다. 수백년 전에 살았던 몇몇 가톨릭 독신자들의 사이의 불건강한 일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많이 존재했을 건강한 가톨릭 독신자들은 등장하지 않느다. 테레사 수녀, 캐서린 드렉셀 수녀,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 등은 어떤가. 또 마르틴 루터나 존 칼뱅 등 종교개혁가들이 여성을 유혹자, 남성보다 죄에 취약한 존재로 묘사한 것을 두고 그들이 여성을 혐오했다고 기술한다. 하지만 그들이 여성을 혐오했기 때문에 독신과 처녀성을 옹호했다는 주장은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 듯하다. 또 독신 여신 아테나, 아르테미스 헤스티야와 대척점에 있는 바람둥이신 제우스와 동정녀를 임신시킨 기독교의 신을 은근히 대비하고 교부들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벌인 노력도 우스꽝스럽게 기술한다.
지은이는 독신(금욕)을 영적으로 이로운 자발적인 독신과 비인간화를 부르는 비자발적 독신으로 구별한다. 강제된 독신으로 감옥, 제정 러시아의 여교사, 중국의 문화혁명 등을 예로 드는데 제정 러시아의 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면 퇴직을 당연시했던 우리나라의 우스꽝스런 관례를 떠올리게 한다. 힌두사회의 과부는 전생에 남편에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받은 징벌로 간주되어 따돌림을 받고 과부는 죽은 남편의 소유이므로 재가할 수 없다는 상황이나 간음 또는 혼전성교에 대한 벌로써 ‘명예살인’이 당연시되는 중동여성들의 곤경에 대한 기술 역시 남성중심 시각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지은이는 이 책이 현실을 묘사하고 분석한 책이지 금욕을 옹호하거나 비판한 책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금욕(독신)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독자라면 일독 후 금욕(독신)이 그럴싸하게 보일 터이고 남자 독자들은 선대 남자들을 빈축할 터이지만 에이즈의 창궐을 언급함에 이르러 금욕(독신)에 대해 시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celibacy가 금욕, 독신 등 분리되지 않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 양자가 명백히 구분되는 우리로서는 책이 좀 두서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주제의 모든 자료를 섭렵해 기술한 만큼 답답한 가운데 진도가 나가고 읽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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