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자전거 짐인가 힘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906회 작성일 10-10-26 00:09
본문
북경에 자전거가 많은 현상을 단순히 평지가 많기 때문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북경에 자전거가 많은 것은 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왕 샤오슈아이 감독의 영화 <북경자전거>는 '자전거가 중국인들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영화는 자전거가 하나의 '삶'이요 '자유'이며 '희망'이라고 말한다. 자전거는 고유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삶의 실제적 경험들을 매개하는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로 자리한다.
얼마 전 중국의 북경을 다녀왔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건물들의 풍광을 보았다.
국제주의 스타일의 그 건물들은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나의 무의식은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나 보았을 법한 풍광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적인 옷을 입고, 중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중국적인 집에서, 중국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중국을 경험하고자 했던 나의 기대란 사실 얼마나 짧은 생각인가? 전통의 기억들을 삭제하고 그 자리에 현대적인 빌딩들과 삶의 환경을 구축해 가는 모습은, 그리하여 세계의 시간에 자신들의 시간을 맞추려는 몸짓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보편적인 움직임인데 말이다.
● 굴곡 없이 펼쳐진 땅…자전거 타기 최적 조건 형성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시야에는 어느덧 북경시내 풍경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자전거들이었다. 역시 중국은, 아니 적어도 북경은 자전거의 도시였다. 그들은 일상의 다양한 국면에서 자전거와 함께 하고 있었다. 거리를 달리는 자전거들과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들의 수는 실로 엄청났다. 자전거 종류도 다양하여,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반적인 자전거는 물론이고 특별히 화물이나 사람들을 운반할 수 있게 디자인된 자전거도 있었다. 심지어 쓰레기를 담을 수 있게 디자인된 청소용 자전거나 고구마를 굽고 판매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자전거들이 삶의 맥락에서 고유의 필요에 따라 창조적으로 제작되고 변형되면서 존재하고 있는 모습은 자전거라는 하나의 대상이 그들의 삶 속에서 녹아 있다는 강한 인상을 갖게 하였다. 북경에서의 자전거는 이곳과 저곳을, 이 사람들과 저 사람들을, 이 상황과 저 상황을 실제적으로 매개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자전거들이 존재하고 또 사용될 수 있을까? 아마도 평지로 이루어진 고유의 물리적인 환경에서 그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경은 시내에서 언덕이나 산을 찾아보기 어려운 평지로 이루어진 도시다. 굴곡 없이 펼쳐진 땅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자전거가 자리하기 위한 최적의 물리적 조건을 형성한다. 사실 자전거는 사람의 움직임과 힘을 통해 움직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도로가 평평하다는 것은 그만큼 수월하게 그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우리의 서울은 크고 작은 언덕과 둔덕들로 이루어져 있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정책적 차원에서 이용을 권장하고 있음에도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언덕 앞에서 자전거는 이동을 도와주는 도구이기보다는 하나의 짐이 된다.
● 자전거는 삶이요, 자유며, 희망
그러나 북경에 자전거가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상을 단순히 평지가 많기 때문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현상에 대한 원인을 지나치게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찾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 방식의 한계는 평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중국처럼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북경에 자전거가 많은 것은 그곳 사람들에게 자전거가 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왕 샤오슈아이(王小帥) 감독의 2001년 작인 <북경자전거(Beijing Bicycle)>는 ‘자전거가 중국인들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단순한 교통수단이라는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영화는 자전거가 하나의 ‘삶’이요 ‘자유’이며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자전거는 고유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개별 삶의 실제적 경험들을 매개하는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로 자리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시골에서 상경한 구웨이가 배달원이라는 직업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회사는 구웨이에게 600위안짜리 자전거를 제공하는데,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수입의 일정액을 반납해 나가야 한다. 자전거를 소유하기 위해 구웨이는 열심히 일한다. 자전거 비용을 거의 지불했을 무렵 구웨이는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그것을 찾아 나선 구웨이는 지안이라는 또래 아이가 자신의 자전거를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지안 또한 동생의 학비를 훔쳐 구입한 그 자전거를 내어 줄 수는 없다. 하나의 자전거를 두고 두 욕망은 서로 충돌한다. 그러나 인연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만들어 내고 그들은 ‘교대로 타기’라는 나름의 공유 방법을 찾는다.
구웨이와 지안에게 자전거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구웨이에게 낯선 도시인 북경에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때문에 자전거를 포기한다는 것은 북경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자전거에 대한 그의 처절한 집착은 바로 삶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반면 지안에게 자전거는 희망이자 자유라는 의미를 지닌다. 어렵게 구한 자전거를 타고 두 손으로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지안의 모습에서 자전거가 그에게 갖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자전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자유와 희망에 대한 집착이다. 감독은 Production Note에서 ‘중국에서 자전거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고백한다. 그 특별한 의미란 하나의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삶과 희망, 그리고 자유를 상징하고 매개하는 도구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미는 독특한 중국적 삶의 배치가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적 삶의 공간에서 속도는 자유와 희망, 그리고 복된 삶의 상징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희망과 더 많은 자유, 그리고 행복한 삶을 상징한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배를 타는 것과 구별되는 지점, 고속철을 타는 것과 통일호 열차를 타는 것이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그러한 가치들이 분기하는 지점이다. 그렇게 속도는 더 많은 희망과 자유와 복된 삶을 속삭인다.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가장 작은 속삭임, 그것이 바로 북경의 자전거가 갖는 의미일 것이다. 직접 걷거나 뛰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꿈의 존재를, 그리고 꿈의 실현 가능성을 현실에서 믿게 한다. 자전거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꿈꾸는 자유와 희망이 실제로 실현 가능한 것이 되는 첫 지점이다. 비현실적인 희망이 아닌 실현 가능한 희망을 자전거는 현실에서 말하는 것이다.
● 자전거를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들
하나의 사물이 어떠한 이야기들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가는 그 대상이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경험하고 있는 대상과 그 대상이 사회 속에서 만들어내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현상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전거와의 관계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가?
‘환경’! 그것은 우리가 자전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자전거는 그것을 이용하는 이의 신체적 힘을 통해 움직이기 때문에 화석연료의 소모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먼지나 일산화탄소와 같은 환경오염 물질들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가장 큰 도시문제 중 하나인 교통혼잡을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이러한 장점은 우리가 자전거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것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개념이다. 또한 우리의 경우 자전거는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움직임을 노동으로 이해하고 고통으로 부정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리모콘이나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온갖 자동기계들과 체계들을 만들어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편리의 결과로 얻은 살을 빼기 위해, 혹은 그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질병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고스럽게 땀을 흘린다. 자전거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야기된다. 건강을 도와 주는 운동기구로 말이다. 헬스클럽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바퀴 없는 자전거는 운동기구로 변해 버린 자전거의 한 모습이다. 그 자전거는 노동 없이 노동의 부산물인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만을 탐한다. 자전거는 또한 ‘낭만’과 관계한다. 영화 속에서, 혹은 TV드라마에서 청춘남녀의 정다운 만남의 시작점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깊어 가는 지점에는 으레 자전거가 등장한다. 사랑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물인 샘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교통수단’보다는 ‘환경’이나 ‘건강’, 그리고 ‘낭만’과 같은 이야기와 더불어, 그러한 배치 속에서 자전거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자전거가 가지는 실제적 의미와 경험들을 구성한다. 자전거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사회, 문화, 경제적 삶의 배치들이 변화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변화는 자전거라는 사물과 그것과 관계하는 구체적 방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북경에서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