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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미술가 강익중 갤러리 - 임진강에 '꿈의 다리' 를 놓는 것이 필생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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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MART 댓글 0건 조회 1,693회 작성일 14-09-29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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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미술가 강익중

임진강에 '꿈의 다리' 를 놓는 것이 필생의 소망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54)이 뉴욕에 사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던 차 두 차례 그의 주거이자 작업공간을 방문할수 있었다. 첫눈에 서민적이고 친화력이 돋보이는 그의 안내로 맨해튼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다운타운 센터스트릿 빌딩의 펜트하우스를 돌아봤다. 작가의 공간 치고는 넓고 화려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부인(이희옥·미국이름 마가렛)이 뉴욕에서 내로라하는 부동산 디벨로퍼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괜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한 층의 넓이가 2000스퀘어피트가 넘는 널찍한 패밀리 룸에는 달항아리 도자기와 그림을 비롯해 청화백자, 그의 기본 작품인 해피 월드, 광화문과 상하이 엑스포에 설치됐다 철수된 작품 등이 갤러리처럼 구도 있게 전시돼 있었다.

한쪽에 부인·아들(기호)·애견 허드슨이 함께 사는 리빙 쿼터가 있고 창너머로 아직 마무리가 덜된 정원과 농구장·놀이터도 보였다. 조명시설을 갖춘 공간엔 한국가든을 멋있게 조성하려는 계획도 있고, 명상이 잘 될 것 같은 다락방엔 조용한 티룸도 있었다. 같은 넓이의 아래층 전체는 작업 공간이다. 만난 사람=조종무 편집고문

지난 3월14일 맨해튼 84스트릿에서 열린 그의 솔로 콜렉션이 유수 미술관들의 관심 속에 출품작 거의가 매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콜렉션에서는 그의 달항아리 그림이 주류를 이뤘다. 약간 기운듯 채워지지 않은 달항아리의 묘미를 그는 화폭에서 살려내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번에 대영박물관에 소장됐다. 이를 계기로 미술 전문지 ‘아트 레이다’는 그의 미술세계 전체를 심도있게 다룬 특집을 실었다.

오랜만에 열린 개인전 이후로 요즘 그가 하고있는 작품활동은 크게 세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퀸즈뮤지엄(플러싱메도 코로나파크 소재) 외벽에 설치될 작품이 시작단계에 있으므로 내년 가을쯤 그랜드센트럴 파크웨이를 지나는 한인들은 누구나 주마간산처럼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 그림을 모아서 전세계 병원·고아원·학교·도서관 등에 기증하는 작업, 다음으로 그가 계속하고 있는 해피 월드는 3X3인치 크기의 작은 그림들을 계속 그리는 것. 자신을 지탱해주는 이 토막 그림은 캔버스 대신 나무를 전기톱으로 쿼터 인치 두께로 잘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영감이 떠오르면 아무데서나 작업을 한다.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젊은 나이에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는 무작정 외국생활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플랫 인스티튜트를 다녔다. 생활 방편으로 야채가게와 주말 벼룩시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시간을 활용하는 뜻에서 시작한 3인치 토막 그림이 히트를 치면서 그는 설치작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4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의 만남은 그의 미래에 디딤돌이 되어 준 계기가 됐다. “휘트니 뮤지엄이 마련한 백선생님과의 2인전이었는데요. 오프닝 며칠을 앞두고 그림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두고 준비회의를 하고 있을 때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던 백선생님으로부터 미술관으로 팩스가 왔어요.

단 두 줄의 문장이 담긴 간단한 내용이었는데 ‘I am very flexible. It is very important that Ik-Joong has better space. (나는 괜찮다. 강익중이 좋은 자리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춰 보내온 팩스를 관장이 직접 공개할 때 일동은 층격을 받았다. 세계적인 대가로부터 그런 내용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에게 신경을 써달라는 내용은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조국의 후배에게 듬뿍 심어준 백남준의 사랑으로 그는 미국 화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후로 있었던 중요한 전시회로 그는 몇가지를 꼽았다. 휘트니 뮤지엄 전시회에 이어 1997년 LA 현대미술관 전시회, 199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특별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의 루드윅 밀레니엄 전시회. 그외에 플러싱 메인스트릿 역에 대형 모자이크 ‘해피 월드’를 내걸어 한인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2008년에는 광화문의 달, 이듬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멀티플 다이얼로그’,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에 걸린 ‘내가 아는 것’, 구겐하임 뮤지엄 소장품‘1392개의 달항아리’등 역작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설치미술은 작가 한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과 공동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연결과 치유’의 효과도 중요하고,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질서를 터득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97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과제를 남겨준 계기였다. 상을 받고 나서 앞으로 미술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고뇌, 그리고 분단된 조국에 대한 작가로서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였다. 분단상황을 작가로서 어떻게 이을수 있을까 하는 명제로 그때부터 아이들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북한 어린이들 그림을 위해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다가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의 꿈은 임진강에 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생전에 할 일은 임진강에 남북의 어린이 그림을 모아 꿈의 다리, 평화의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의 노트에는 ‘꿈의 다리’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임진강 위에 다리가 놓여진다.

자식과 부모를 가른 한 많은 임진강 위에 꿈의 다리가 세워진다. 전세계에서 모인 백만 어린이들의 꿈이 담긴 그림이 강 위에 띄어진다. 작은 그림 하나 하나가 다리를 이루는 벽돌이 되고 칠천칠백만의 염원이 다리를 받드는 버팀목이 된다. 유리로 만들어지는 이 꿈의 다리는 세계 최초의 떠있는 미술관이 될 것이다.”

현재로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끈기 있게 펼치는 그의 소박한 꿈이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로서 그가 진정으로 그림을 좋아하게 된 시기는 실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에는 의무감에서 한 적도 있었지만 3~4년 전부터 오후 작품하면서 3시반쯤 되면 갑자기 내면에 희열이 올라와 터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치솟는 희열을 안고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이를 주체하는 비밀의 병기가 생겼다. 기쁨과 감사만 생각하면 된다. 길을 걸으며 숨을 들이쉴 때 ‘아 기쁘다’, 숨을 내쉴 때 ‘감사합니다’를 되뇌인다. 세상만사가 이 두 단어만 있으면 해결될 것 같다. 지혜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암호를 그가 찾아낸 셈이다.

출처: 뉴욕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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