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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 새로 의형제 맺듯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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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947회 작성일 11-03-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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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나오는 장남과 차남 사이 갈등,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느 집이나 겪는 거북한 문제다. 형제 갈등이 뿌리 깊은 집안의 아내들은 이번 설 명절의 가족 모임이 껄끄러울 것이다. 갈등 양상이 드라마처럼 겉으로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오히려 더 답답하다. 형제 사이의 갈등이 잠잠한 듯 보이는 이유는 남자들이 감정 표현이 서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또 있다. 한 번 붙으면 크게 붙을 것이기에 제대로 승부를 볼 게 아니면 거리를 두고 있어서 그런다. 사실 어른이 된 형제간 문제는 각자의 아내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적어도 정신과 상담이 업인 내 경우는 그렇다. 남자 형제들이 진료실을 찾기보다는 가운데에 낀 아내들 간의 갈등으로 번지며 우울증이 심해져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보고 내린 진단은 이렇다. 형제 사이 갈등의 핵심은 자존심이다. “내가 지금 몇 살인데 아직 아이 취급이야”라는 동생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형이라는 이유로 참았던 걸 다 얘기해야 해? 그냥 따지지 말고 따라라”는 형 사이의 갈등이다.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이 환경에 적응을 해나가면서 형성된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자식 관계 다음에 경험하는 환경이 바로 형제 사이의 서열이다.
프랭크 설로웨이라는 학자는 출생 순서와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를 역사적 인물의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형제는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데, 첫아이는 처음부터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 성취 지향적이고 야망이 크다. 이에 반해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 앞에 누군가가 있는 인생을 산다. 그래서 형과 다른 자기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동생도 고기를 좋아하면서 형이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자긴 생선이 좋다고 하고, 나중에는 정말 그게 좋아지는 식성의 변화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한편 형은 부모가 만들어놓은 환경에 적응하며 자란다. 대신 주어진 것을 지키는 보수적이고 책임감 있는 성격이 된다. 그에 반해 동생은 새로운 경험에 호의적이고, 모험을 하는 데 익숙하며 상대적으로 융통성 많은 사람으로 자란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얻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인지라 부딪치기보다 복종하는 듯 하며 실속을 찾는 경향이 있다. 설로웨이가 과학자들을 출생 순서에 따라 분석해보니, 상대성이론 같이 혁신적 이론에 지지를 표한 과학자 중 장남은 20~30%에 그쳤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만큼 형제는 마주 보며 어떻게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를 쓰고 서로 다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해가면서 어른이 되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가면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며 살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부모를 모시는 문제, 공동의 재산 같은 상호 관심사가 교차하는 영역에 맞닥뜨릴 때 갈등은 표면으로 다시 올라온다. 이미 머리가 클 대로 큰 두 어른이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협상하라고 하면 지혜롭게 할 사람들이 형제로 만났을 때에는 아예 처음부터 감정의 각부터 세우는 일이 허다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는 배우자들은 난처할 따름이다. 자기가 아는 남편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기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달걀프라이 한 입을 더 못 먹어 속상해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바람에 벌어지는 일이다. 더 이상은 질 수 없다는 경쟁심이 불타오르고, 자존심의 상처를 보상받고픈 욕망이 잊었던 기억의 심연에서부터 기어 올라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금의 현안을 놓고 얘기를 나누다가 감정이 고조되면 몇십 년 전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원래 네가(형이) 그랬어. 나이 먹어도 소용없구나”라는 식의 과거사 진실 규명 수준까지 가게 된다.
남매나 자매간 다툼에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지만 형제간의 갈등에 비하면 그 규모나 깊이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성이 다르다는 것, 승부에 목숨 거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 끼어 있다는 점이 완충 요인인 듯하다.
이런 문제로 몇 년째 세칭 ‘의절’이라는 것을 하고 왕래하지 않는 형제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형과 동생이 명절에 만난다면, 일단 코흘리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자. 그리고 지금 사회에서 살고 있는 성인 두 사람이 처음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눈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잘 몰랐던 형과 동생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경험으로 볼 때 중간 이상은 가는 괜찮은 협상 파트너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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