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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자한 테이블 커트(Shah-Jahan Table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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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1,027회 작성일 11-01-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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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16일 크리스티즈는 "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테이블 커트 다이아몬드 "로 형용되는 다이아몬드를 제네바에서 경매에 부쳤다. 그것은 8각형의 형태를 가진 테이블 커트의 나석(裸石:Loose Stone)으로, 중량은 56.71 메트릭 캐럿이었고, 사이즈는 44.6×33×3.6m/m였다.

이 다이아몬드의 소유주는 이와같은 사이즈의 다이아몬드는 타베르니에가 1642년에 인도의 골콘다에서 보았던 "그레이트 테이블"이라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의 일부를 연마하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1960년대의 후반에 캐나다의 대표적인 보석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조사의 결과 "다랴이누르"와 "누르 울 아인"의 2개의 다이아몬드가 저 전설적인 "그레이트 테이블" 다이아몬드를 연마하여 제작된 것이 거의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테이블 커트의 다이아몬드는 모든 면에서 "그레이트·테이블"의 역사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그 나름대로의 자신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경매전에 이 다이아몬드의 소유주는 런던의 빅토리아·알바트 박물관장에게 이것을 보여주며, 자문을 구했는데, 그녀는 지질학회로 가지고 가서 좀더 세밀히 조사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하여, 동(同)학회의 죠빈즈와 하딩박사에 의해 조사되었다.

그 당시의 초점은 워싱턴의 프리아 갤러리에 있는 1605년부터 1627년까지가 제위(帝位)기간인 제4대 무갈황제인 자한길·샤의 초상화(肖像畵)였는데, 초상화에 서 자한길은 몇갠가의 평평한 테이블 커트 다이아몬드를 세트시킨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명확해진 것은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에 있는 1616/17이라는 연호(年 )가 붙은 자한길·샤의 3남으로 서자(庶子)였던 샤·자한을 그린 그림으로, 그 그림에는 큐션·셰이프의 에메랄드와 진주를 세트시킨 터번의 장식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고, 그 에메랄드 밑에 8각형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어 있었는데, 그 다이아몬드가 이 테이블 커트 다이아몬드와 매우 닮아 있고, 다이 아몬드의 외형과 치수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샤·자한이 1657년에 병에 걸리자, 4명의 자식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승리한 것은 3남인 아우랑제브로서 1658년에 스스로 황제라고 선언, 1666년 죽을때까지 부친을 아그라 요새에 위폐시켰다.

1665년 저 유명한 보석여행가인 타베르니에가 아우랑제브의 궁정에 초대되어 황제의 재보의 일부를 구경하였는데, 그중에는 "그레이트 무갈"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형태가 좋고 아주 투명한 페어 셰이프의 62.5라티(당시의 중량 단위)의 다이아몬드와 다른 3개의 테이블형태의 55-60라티의 다이아몬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중량 축소율을 따라 계산해 보면 이 3개의 다이아몬드의 중량은 42∼52 올드캐럿(49.5∼54.05 ct)이라고 산출되는데, 이 중량은 크리스티즈가 경매 카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샤·자한·테이블·커트 다이아몬드"와 중량의 유사성에서 우연이상의 것이 있다.

1851년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보석 대박람회가 개최된 기념할 만한 해이다. 그해 6월에 "대박람회"라는 표제(標題)로서 "The Times紙"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영국관의 호화롭고 값비싼 보식품이나 금은의 접시가 전시되어 있는 가운데,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작은 케이스가 있었다.

거기에는 세계 최대의 모든 유명한 다이아몬드가 수정으로 연마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모조품중 명확하게 "샤-자한 테이블 커트"도 있었고, 그것에 부가되어 있던 설명문에는 그것을 "러시아 財寶"라고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었다. 구석부분을 연마한 평평한 테이블 형태의 다이아몬드로 황제의 검(劍)의 무늬를 장식하고 있음, 68캐럿, 3만 6992파운드......

이 "러시안 테이블"의 존재에 대해서 "세계의 유명한 다이아몬드"의 저자인 에드윈 스트리터는 위대하고 유명한 다이아몬드가 어디에 있을까를 확인하는 것이 극히 어려운 것은 당연하며 그 재산적 가치를 평가하는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으로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 "러시안 테이블"은 역사책에도 여행기에도 실존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고, 또한 그것이 실존했던 것도 크기도 그려져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로서, 그것을 누가 보았는가는 알지못한다. 또한 이 다이아몬드의 내력에 대해서 단 한가지의 일화도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러시안 테이블"이 뛰어난 다이아몬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형태는 다이 아몬드의 커트로서는 제일 매력이 떨어지며, 중량은 68캐럿이다.

이 모조과 천연 다이아몬드에는 두가지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그것은 중량과 드릴홀(Drill hold)의 위치다. 이들의 구멍은 다이아몬드 한쪽의 끝부분에 뚫려있기 때문에 와이어나 코드와 같은 것을 연결하여 펜덴트로서 착용할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샤·자한 테이블 커트"가 현재의 소유자 일가의 것이 된 것은 1893년으로, 그의 부친이 파리 방문중에 매입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다이아몬드의 모조석이 1851년에 대박람회에 전시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그것보다 40년전에 그 다이아몬드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모조품에 첨부된 설명서에 그것이 러시아의 것이었다는 것은 정확할지도 모른다.

조빈스氏와 하딩 박사가 쓴 "샤·자한·테이블·커트"의 해설이 1948년의 "The Jourmal of Gemology"에 게재되었다.

두사람은 이 다아아몬드는 눈에 띄는 엷은 핑크색을 하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환경하에서 감정했다는 것은 아니나 등급을 결정한다면 "Fancy light pink"에 해당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드릴홀의 축각은 마모되어 버렸으나 다이아몬드의 거들에 따라 남아있는 흔적으로 부터 오래부터 드릴홀이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따라서 더욱 간격을 취해 구멍을 뚫을려고 하는 시도가 행해졌으나 다이아몬 드가 분리되어 실패하였다고 생각되어 진다.

그리고 이 다이아몬드는 눈에 띄는 인클루전은 없으나, 한쪽 구석부분 가까이에 미세한 균열이 있고, 그 균열부위에 철성분의 얼룩이 있으며, 몇개부분에 벽개의 흔적이 옅보이나, 이것은 8면체의 형태를 한 이 다이아몬드가 정확하게 연마되게 하기 위해 방향을 정하기 위해 충분히 주의해서 취급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1985년 5월 16일의 제네바 경매에서는 이 극히 흥미있고 독자성이 있는 다이아몬드는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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