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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녹색의 드레스덴 그린(DRESDEN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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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1,010회 작성일 11-01-2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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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다이아몬드는 매우 희귀하다. 이러한 점에서 대략 원석상태에서 100올드캐럿의 중량이었다고 생각되는 "드레스덴 그린"은 세계에서 유명한 보석중에서도 "유니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는 애플·그린 컬러를 하고 있고, 품질도 최고이다. 패싯을 58면 가지고 있으며 40.7메트릭 캐럿의 변형된 페어 셰이프인 "펜드로크"형으로 연마되어 있다.

길이 29mm, 폭 19.7m/m, 두께는 10.2m/m로 연마되어 있으며, 크라운 부위가 5.3m/m, 파빌리온 부위가 4.9m/m로 되어 있다.

다른 유명한 다이아몬드와 달리 "드레스덴 그린"의 역사는 비교적 파란이 적었던 것 같다. "드레스덴"이라는 이름은 이 다이아몬드가 200년이상이나 전시되어 있던 작센의 수도인 드레스덴 시 (市)에서 유래되고 있다.

1742년 작센의 프리드리히·아우구스트 Ⅱ세(1733∼1763)는 이 다이아몬드를 라이프치히 시장(市場)에서 네덜란드의 상인으로부터 20만달러에 구입하였다고 한다.

드레스덴을 지적· 예술적 활동의 중심지로서, 또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시킨 것은 그의 아버지로써 프리드리히·아우구스트 Ⅰ세(1694∼1733)이다.

아우구스트 Ⅰ세는 드레스덴에 있는 몇 개의 저명한 건물을 세운 인물로써, 당연한 일이나 이 건물에 진귀한 고가의 보물을 모아 숨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697년 폴란드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자신의 대관식을 위하여 새로운 즉위용 보식품 제작을 명령하였다.

그는 드레스덴 성에 만든 8개의 룸을 자신의 보석이나 보물, 귀중품을 넣기 위하여 특별히 비워 두웠고, 이들의 룸을 "그린 보트"라고 불렀다.

내장(內裝)은 파리의 디자이너들에게 일임하였고 바로크 양식의 건물의 최고 걸작중 하나가 될 정도의 것을 완성하여, 왕실보식품 컬렉션을 그중 8번째의 룸에 보관하였다.

"그린 보트"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Ⅱ세가 "드레스덴 그린"을 매입하였을 때 완성되어 있었다.

보석상(寶石商)인 "딘그린가"는 최초에 이 드레스덴·그린 다이아몬드를 "골든 프리스의 장식"으로 세트시켰다.

그러나 1746년 윈의 보석상인 파라드가 이것을 다시 만들어 드레스덴 그린을 빼내고 49.71메트릭 캐럿의 "드레스덴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세팅시켰다.

그리고 최후에 1768년 또다른 보석상인 디스바하라는 사람이 연마된 다이아몬드 2개를 몇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와 함께 드레스덴 그린을 모자의 장신구로 바꿔 제작하였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뛰어난 다이아몬드에는 흥미깊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인도 또는 동인도가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채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18세기 중반까지, 이와같은 뛰어난 보석에 대해서 유럽에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만일 이 다이아몬드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면 아마 훨씬 전시대에 보석을 매우 좋아한 유럽의 군주중 누군가가 그 존재를 소문을 들어 알고 탈취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17세기에 동양에서는 다이아몬드의 산출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고, 18세기초에는 그것은 이미 사향길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아마 이런 문제로의 답으로서 하나의 단서가 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Ⅱ세가 이 다이아몬드를 라이프치히의 시장에서 네덜란드의 상인에게서 매입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암스텔담은 그 100년전에 이미 다이아몬드의 연마센터로서 최전성기(最全盛期)에 있었고, 18세기 전반에는 그 중요성이 저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720년 브라질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됨에 의해 다시 다이아몬드 연마산업은 활발히 성행하게 되었다.

암스텔담은 결국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감지하게 되었고, 결과로서 리보·데·자네이로라는 네덜란드 영사(領事)는 브라질산 다이아몬드를 연마산업이 다시 상승 기류에 오르기 시작한 암스텔담으로 보내는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드레스덴·그린은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로 보내진 다이아몬드중 하나였다는 것이 명확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1742년 이전의 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땅속에서 채굴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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