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다이아몬드의 대명사 - "플로렌틴(Florentine)" > 보석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보석


 

황색 다이아몬드의 대명사 - "플로렌틴(Florentine)"

페이지 정보

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1,098회 작성일 11-01-29 08:02

본문

florentinediamond.jpg
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플로렌틴 다이아몬드는 137. 27 캐럿의 엷은 녹색감을 띈 황색의 인도산 다이아몬드로서, 외형은 불규칙한 9각형으로 126개의 패싯을 가진 더블로즈(Double Rose) 커트로 연마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명가(名家)인 메디치 집안의 소유였다.

이 다이아몬드의 전설에 대해서는 14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당시의 영웅이였던 프랑스의 블고뉴 공(公)의 샤르르(1433∼1477)가 전투에서 쓰러졌을 때 이 보석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보병이 블고뉴 공(公)의 몸에서 이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여 가지고 도망갔으나, 그 사병은 이것을 유리 구슬로 오인하여 헐값에 팔아 버렸다.

그 후에도 몇번이나 약소한 금액으로 여러 사람들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로마 교황인 유리우스 2세도 이 다이아몬드의 주인의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보석 전문가이자 여행광이었던 타베르니에가 1657년에 이탈리아의 토스카나(타스카니) 대공(大公)국의 보물 중에서 이 보석을 발견하면서부터 확실한 역사가 판명되었다.

메디치 집안이 붕괴 되었음을 당시 로토링겐의 프란츠·슈테판(나중에 토스카나의 대공이 됨)의 결혼에 즈음하여 그의 황후인 마리아·테레지아를 위하여 오스트리아의 윈에 보내져 하프스부르크의 왕관에 세팅되었다.

그 후에 왕실용 보석으로서 브로치에 세트되어 약 75만 달러(약 9억 3750만원)로 평가 되었다.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조사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제일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이 다이아몬드가 남아메리카에서 소실되어, 1920년대에 미국으로 보내져 재연마되어 팔려버렸다는 것으로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이 다이아몬드는 "플로렌틴"의 이름 이외에도 "타스칸", "그랜드 듀크 오브 타스카니", "오스트리언 옐로"등 수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 1983년 11월 크리스티즈는 남아프리카에서 채굴된 것으로 판단되는 2개의 극히 아름다운 황색 다이아몬드를 제네바에서의 경매에 부쳤다.

그 중 하나는 139.42캐럿의 쿠션 형태로 연마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장방형의 쿠션커트로서 132.42캐럿의 다이아몬드였다.

그 경매에서 큰 쪽인 139.38캐럿의 마잘(Mahjal)이라 불리우는 이 다이아몬드는 132만 스위스 프랑(약 12억원)에 최종 낙찰되었다.

이 다이아몬드는 인도 판자브지방의 작은 군주국인 가프르사라의 "마하라자"라는 인물의 터번을 장식하는 보석이었다고 전해진다.

카프르사라의 마하라자(1872∼1942)는 실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서, 한 개인으로서 외국 방문시 15발의 축포를 받을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인적 취미로서 수많은 종류의 시계를 모으는 수집가였는데, 그러한 시계의 나사만을 감기위해 하인을 고용하는 정도였다.

그는 또 프랑스의 극성스런 열애자로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자신의 궁전을 건축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마잘(Mahjal)이란 다이아몬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다이아몬드의 역사에 대해 전해오는 것도 없고, 어는 문헌에도 자세히 기술된 것이 없이 1983년 크리스티즈 경매에 붙여져 낙찰된 것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