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다이아몬드 - 야콥(Jac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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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1,621회 작성일 11-01-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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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으로 457.5 올드 캐럿(현재의 469.6캐럿)이었던 이 다이아몬드의 발견에는 처음부터 미신적인 요소가 있었다.
"임페리얼(Imperial)" 또는 "그레이트· 화이트(Great White)" 라고도 불리우는 이 다이아몬드는 1896년 까지는 남아프리카에서 채취된 8면체의 결정형을 한 다이아몬드 중에서는 최대의 크기였으나, 같은 해에 드비어스 광산에서 503.25 올드 캐럿(현재의 516.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됨으로서 그 기록은 깨어져 버렸다.
이 다이아몬드의 출처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으나, 남아프리카의 야거스폰테인 광산에서 발견된 최고 품질과 유사한 블루 화이트(blue-white)계열이라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게 전해지고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1884년 6월인가 7월에 남아프리카의 킴벌리에 있는 센트럴 마이닝 회사의 감사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설(說)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당시 서(西)그리카 랜드의 엄한 다이아몬드 거래법에 의하면 200파운드(약50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했고, 또 500파운드(약112만원)의 보증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거래 자체를 할 수 없으며, 모든 거래는 매주 정부 관계자의 확인과 함께 특별 장부에 기록을 하도록 했다.
하여간 최초의 소유자로부터 이 원석을 취득한 시점의 가격은 300파운드(약674만원)였으나, 이 원석은 결국 라이센스를 갖지 아니한 어느 바이어에 의해 케이프 타운으로 옮겨져 19,000파운드(약4267만원)에 거래되었고, 런던의 최대 다이아몬드 시장인 해튼 가든에서 자그만치 45,000파운드(약1억)가격에 비밀리에 운반되어 거래되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래가 이루어진 후 이 다이아몬드는 연마를 위해 암스텔담으로 옮겨져 잭 메츠 회사에 의뢰되었다.
연마시 먼저 원석의 일부분이 클리빙(벽개작업)되어 그 조각은 19올드캐럿(현재의 19.5캐럿)의 브릴리언트로 연마되어 최종적으로 포르투갈 왕에게 팔렸고, 확실한 소재는 알수 없으나 리스본에 있는 아주다 궁전에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빅토리아의 최대 부분의 연마는 네덜란드 여왕이 보는 가운데 1887년 4월 9일에 시작되어 작업은 약1년 걸렸으나, 이 기간도 여러 예비공정을 전부 생략하고 스카이프(Scaife)만을 사용하여 연마한 시간이라고 한다.
완성된 다이아몬드는 58면의 패싯을 가진 약간 오벌형의 브릴리언트 커트로 길이 39.5 m/m, 폭30m/m, 두께23m/m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한 그 유명한 티파니(Tiffany) 커트(Cut)를 지휘한 우수한 보석학자인 쿤츠(Kunts)는 빅토리아의 형상은 전체적으로 균일한 것이 아니라, 연마시의 보석의 중량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극단적으로 평탄한 원석인 채로 미연마된 면의 거들의 한편쪽에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최종적인 중량은 184.5 메트릭 캐럿이었다. 이 다이아몬드는 하이데라버드의 니잠(Nizam)이 구입하였으나 그때부터 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미스테리의 제 2장이 시작하게 된다.
1947년에 영국이 인도로부터 철수하여 인도 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었을 때 빅토리아 다이아몬드를 매입한 니잠의 아들로서 하이데라버드 시대의 통치자였던 니잠은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립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결국 교섭 결렬이 된 후 결과적으로 인도군이 무력개입했기 때문에 하이데라버드는 1950년 1월 연방을 구성하는 하나의 나라로서 인도에 가맹하였고 그후 하이데라버드는 인접한 3개의 주로 분할되어 있었다.
니잠은 당시 1300만 파운드(약292억원)에서 1500만 파운드(약337억원)로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보석 컬렉션을 두그룹으로 분할하여 신탁재산으로 하였다.
하나는 40개정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재산관리인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 하나는 보다 큰 것들의 컬렉션으로 니잠 자신의 말에 의하면 자기 가족에 불의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팔지 않을 보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빅토리아"에 대해서는 어느 것도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야콥(Jacob)이라 불리우는 다이아몬드는 제 2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야콥(Jacob) 다이아몬드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이 야콥은 오랜기간동안 하이데라버드의 니잠의 "빅토리아 다이아몬드"와 동일한 다이아몬드로 취급되어 왔었다.
1951년에 28만달러(약 3억 6400만원)에 인도의 은행으로부터 경매에 붙여졌고 어느 미국인 업자는 당시 "블루가 아니라 화이트"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그가 본 중에서는 최상의 광채를 나타냈던 다이아몬드보다는 떨어진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며 그 중량은 100 - 150캐럿, 또는 184.5캐럿이라고 전해진다.
최후의 숫자인 184.5캐럿은 빅토리아의 중량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이 야콥 다이아몬드는 "빅토리아 다이아몬드"를 누군가 중간에 이름만 바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 1977년에 니잠이 사망했을 때 그의 보석류가 다시 뉴스 거리가 되었다.
재산 관리인들이 그의 소유 보석을 경매에 붙였고 그 경매에 세계의 백만장자들이 모여 들었었다. 그러나 이 경매는 국민의 절대적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었고 많은 인도인들은 니잠의 보석류는 영국 왕실의 보식품이나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보식품 컬렉션과 같이 인도의 국가적 재산이기 때문에 인도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경매는 진정되었고 매각의 이야기는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아쉽게도 현재 이 빅토리아 다이아몬드의 소유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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