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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 앤 줄리엣’을 통해 본 유럽 뮤지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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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1,628회 작성일 12-02-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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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로 대표되는 영어권 뮤지컬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프랑스
뮤지컬이 우리 공연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5년 첫 내한 공연에서 독특한 음악, 연출, 무대장치를 선보이며 2~30대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이 작품은 고가 티켓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화 충격을 주며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첨병으로 기능했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에도 두 번째 내한공연이 성황리에 이루어졌으며,
2007년 10월에는 최성희(바다), 윤형렬, 김법래, 서범석 등 실력파 배우들이 한국어로 부른
‘코리안 버전’이 만들어져 김해시, 고양시를 거쳐 다시 서울에 입성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까지도
성황리에 전국 투어를 벌이고 있는 프랑스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 공연 제작사인 NDPK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뮤지컬의 흥행
가능성을 파악한 다른 제작사들 역시 2006년 초부터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공연들을 대거 시장에
소개하게 되었고, 이른바 한국에 프랑스 뮤지컬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젖히게 된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이어 2006년 초부터 약 1년 동안 국내에는 ‘레딕스 십계’, ‘돈 주앙’, ‘로미오 앤
줄리엣’이 순차적으로 개막되는데, 이 기간 동안 프랑스 뮤지컬의 붐이 특별히 거셌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네 작품이 모두 현지의 다국적 배우/스태프들이 직접 내한해 벌인 오리지널 투어
공연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뮤지컬은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명품 공연’을 모토로
치열한 관객 동원 경쟁을 벌였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한국어 버전 공연 이후 우리 뮤지컬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 동력을 찾았다.
특히 2005년 이후 매해 뮤지컬 매출액이 연간 30% 이상의 고공 상승을 기록했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유럽 뮤지컬들의 약진 덕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다양하게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뮤지컬의 인기는 투어 공연뿐 아니라 라이선스(한국어
버전)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2006년에는 중극장 규모의 ‘챈스’(코엑스 아트홀), ‘벽을 뚫는 남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가 우리말로 초연되었다.
 
이들은 여타의 대극장 뮤지컬에서 고전을 각색하고 웅장한 무대 연출과 시적인 가사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현대사회를 직접적으로 풍자하는 뮤지컬 코미디물이며 음악 역시 록, 라틴, 카바레,
록 오페라, 발라드의 대중적인 멜로디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 관객들로 하여금 뮤지컬의 새로운
면모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챈스’는 거의 매해 재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벽을 뚫는 남자’ 역시
2007년 말 동숭아트센터에서 재공연을 가졌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이어 지난 2월에는 주지훈, 김다현 등이 출연 중인‘돈 주앙’의 한국어 공연이
성남 아트센터에서 개막했고 7월에는 충무아트홀로 입성할 예정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의
2007년에 이은 두 번째 역시 지난 1월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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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뮤지컬과 다른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
프랑스 뮤지컬들은 몇 가지 고유한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대부분 고전 명작으로부터의 적극적인 각색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약성서를 비롯해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등 대문호의 베스트셀러를 뮤지컬의 기본 뼈대로 삼고
이를 적절한 축약과 재편성을 통해 뮤지컬 무대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한다.

두 번째 특징은 노랫말이 가진 상징성이다.
프랑스 뮤지컬은 일상적인 대사 대신 노랫말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데 화자의 내면세계를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 은유적인 노랫말로 표현하는데 치중한다.
손에 잡힐 듯 치고 빠지는 유머를 선호하는 영어권 뮤지컬들과의 확실한 차별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세 번째 특징은 음악적으로 대중음악(샹송) 콘서트 콘셉트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이 유럽의 오페레타에서 출발하여 그동안 레뷔, 보더빌,
벌레스크, 민스트럴 등의 많은 진화단계를 거치며 드라마적 완성도와 대사의 비중이 높아져왔음에
비해 프랑스 뮤지컬은 그 발전 기간이 짧다보니 여전히 대사가 극도로 절제된 음악 중심의 오페레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조연 배우들은 노래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가수의 역할을
담당하고 앙상블의 역할은 전통/현대/아크로바틱을 각각 구사하는 댄서의 역할로 특화되어 있다.
 
또한 반드시 프랑스 인력들만 모여서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돈 주앙’이나 ‘드라큘라’처럼 배우와
언어만 프렌치(French)일 뿐 다국적의 스태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창작을 하고 초연은 프렌치
권역인 캐나다 퀘벡 주에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네 번째는 해피엔딩을 가진 뮤지컬 코미디를 선호하는 영어권 뮤지컬과 비교해 프랑스 뮤지컬은
대부분 주인공들이 종국에는 죽는 비극이다.
반면 커튼콜 때는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마치 콘서트 무대처럼 무대 앞으로
다가가 배우들의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극중에서의 비극적인 결말로
인한 주인공들의 죽음이 마치 커튼콜을 통해 환생하는 듯한 연출을 즐겨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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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공연의 강렬한 임팩트
2년 만에 다시 열린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내한공연은 여전히 화려했다.
2001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래 누적관객 400만 명을 동원했고, 국내에서도 이미 소개된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더불어 일명 프랑스 3대 뮤지컬로 불리는 작품이다.

막이 오르면 반목하는 두 집안 캐플렛가와 몬테규가의 무리들이 각각 무대 양편에 무리지어 서서
섬광과 같은 짧고 강렬한 조명을 받으며 절도있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 집안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붉은색은 조명과 의상으로 일체감을 선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1막의 초반은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현란한 앙상블들의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부터 두 집안의 갈등과 반목을 상징하는 격한 안무로 서로의 몸을 강하게 밀착하여 상대를
공격하거나 바닥에 몸을 던지는 아크로바틱 안무가 중심이 된 오프닝 장면은 폭 24미터에 이르는
세종문화회관의 넓은 무대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앙상블의 힘은 1막 중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나는 가면무도회 장면과 2막
초반부의 두 집안의 무리들이 낮은 자세로 자웅을 겨루는 결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노래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댄서를 완벽하게 분리했던 ‘노트르담 드 파리’와 달리 이 작품은 주연
배우들도 앙상블 댄스에 합류하는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스타일에 가깝다.
작품 전체에 비장한 분위기가 흐르는 ‘노트르담 드 파리’와는 달리 이 작품은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젊은 배우들의 춤사위가 중심점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패기 덕분에 여타의 프랑스 뮤지컬들
중에서 가장 젊은 관객층이 많은 성공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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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공연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적인 개작(改作)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2007년 첫 번째 내한공연 당시에는 캐플렛 경과 유모의 비중이 커지면서 프랑스 초연에 비해 다소
코믹한 요소가 증가했었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곡이 추가되면서 다시금 진지한 방향으로 회귀했다.
극중 관념적인 캐릭터로는 유일한 ‘죽음’ 역의 댄서의 역할도 의상 색감의 변화로 여신의 이미지에서
현실속의 집시 여인과 같은 느낌으로 보다 인간화되었다.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보다 글로벌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로미오와 그 친구들로 이루어진 에너지 넘치는 주·조연급 배우들은 노래는 물론이고 앙상블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다른 여타의 프랑스 뮤지컬들에 비해 적은 곡수(36곡) 역시 이
작품이 상대적으로 대사의 비중이 높음을 증명한다.
특히 이 작품은 극적인 상황을 속도감 있게 축약해서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상징화된 의상의 컬러와 발코니까지 구체적으로 재현된 단일 세트, 화려한 조명, 아크로바틱이
가미된 격렬한 안무 등의 시각적인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기본 플롯은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반면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인 ‘의인화된 죽음’ 역은 투명인간 같은 관념적인 존재이지만 극 전반에
세밀하게 관여하며, 비극으로 치닫는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기도 한다.

2년 만에 다시 앙코르 내한공연을 가진 ‘로미오 앤 줄리엣’은 이번에도 로미오 역의 다미앙 사르그와
줄리엣 역의 조이 에스텔이 주연 롤을 맡고 있다. 프랑스 초연 때부터 줄곧 로미오를 맡아온 다미앙 사르그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팬클럽이 형성되어 있을 만큼 폭발적이다.
또한 지난 첫 내한공연 때 역시 줄리엣으로 무대에 선 조이 에스텔은 그 아름다운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에 빠진 안타까운 주인공의 역할을 해낸다. 벤볼리오, 머큐쇼, 티볼트 등 젊은 남자 배역을
맡은 배우들 역시 작품 내내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과 로미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감정선들이 살아있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비교하면
이 뮤지컬에서는 말 그대로 로미오와 줄리엣만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助演)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동안 수많은 연극, 발레, 오페라 등으로 다양하게 각색되어왔다.
어찌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식상한 스토리가 또 한번 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로 각색된 ‘로미오 앤 줄리엣’만이 가진 매력은 따로 있다.
바로 작사, 작곡을 맡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선사하는 노래들이다. 그의 곡들은 유려한
미사여구로 치장된 가사에 귀에 감기는 잔잔한 선율이 실려있다.
 
특히 ‘Les Rois du Monde’(세상의 모든 왕들)과 ‘Aimer’(사랑한다는 건)의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는 공연 후에도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2시간 45분간의 환상의 세계를 경험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서도 극중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뮤지컬이 줄 수 있는 짜릿한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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