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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발레시대 - 발레, 러시아에서 날개를 달다.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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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698회 작성일 11-10-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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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위대한 무용이론가 노베르는 '발레 닥시옹'을 창조하여 무언극 발레 형식을 확립시킨다. 18세기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은 여성무용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을 중심으로 발레는 극장 예술로서 화려한 꽃을 피운다.
 
발레, 러시아에서 날개를 달다. 훨훨~~
 
루이 14세 이후 발레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이는 장 조르주 노베르이다. 그는 발레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이론가였다. 1717년 영국사람 존 위버가 '마르스와 비너스'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발레가 연극이나 오페라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최초의 '무언극 발레'가 탄생되었는데 노베르는 이 무언극 발레라는 형식을 이론화시킨 사람이다.

그는 '순전히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공허한 춤 대신에 표현적인 춤을 통해 춤의 연기적인 면이 발전해야한다'고 했는데 이를 사람들은 '발레 닥시옹 Ballet d'Action'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한동안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1760년 노베르가 '무용과 발레에 대한 편지'에서 공식적으로 문건화시킴으로써 인정받아 이때부터 비로소 발레가 독립된 예술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한편 18세기말에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그동안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산업 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이 현실세계에 지치게되자 마음만이라도 환상의 세계로 도망치고싶은 욕구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가 <호프만의 뱃노래>나 <호두까기인형>의 작가로 알고 있는 호프만도 이때 환상적인 내용의 동화를 발표했다.

발레에도 낭만주의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이 홈 라이브러리 중 '사조별로 알아본 발레역사-낭만주의 발레'를 참조하면 된다. 이 낭만주의 운동은 왕실의 후원보다는 프랑스 혁명이나 산업 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 지도층으로 떠오른 신흥 중산층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프랑스가 '노베르의 개혁'이나 '낭만주의 발레의 탄생'을 통해 발레가 독자적인 예술로 만들어지기까지 기틀을 잡은 나라라면, 러시아는 '낭만발레'의 형식과 '고전발레'의 형식을 확립하여 발레를 극장예술로 꽃피운 나라이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지젤> <코펠리아> <백조의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인형>등 주옥 같은 발레작품이 만들어진 곳은 바로 러시아이다.

러시아에서 발레가 처음 공연된 것은 1673년(17세기)에 독일의 한 무용단이 알렉세이 마카일로비치 황제의 왕궁에서 가진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 공연은 황제를 크게 기쁘게 할 만큼 대성공이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왕실에서는 유럽으로부터 발레 무용단을 많이 초청하면서 발레를 후원하기 시작한다.

1734년에 안나 여제는 귀족들에게 군사 교육의 일환으로 프랑스 안무가를 초청해서 무용을 가르치게까지 했다. 아무튼 러시아 황제들의 발레 사랑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는데 1776년 모스크바에 볼쇼이극장이 세워지고 1783년에는 상트 피체르부르크에 마린스키극장이 세워지면서 러시아의 발레는 그야말로 양 날개를 달게 된다.

황제가 살고 있는 상트 피체르부르크의 황실발레단과 발레학교가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발전하고, 무용수들이 은퇴하면 국가로부터 연금도 받게 되자 러시아에서 '발레를 하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존경을 받게 된다. 발레 관람은 황실, 귀족, 외교관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흥이 되었고 극장의 오케스트라석에 앉을 권리는 가문 대대로 물려받았다. 일반 관객도 발레를 볼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자리는 언제나 꼭대기층 구석진 곳이었다.

1850년 이후 유럽에서 발레에 대한 관심이 한풀 꺾이게 되자 유럽의 뛰어난 무용수들은 러시아로 건너와 활동한다. 러시아의 관객들은 이때 까지 볼 수 없었던 무용수들의 테크닉에 감탄한다. 그러자 당시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는 아예 유럽의 유명한 안무자들을 초청해 본격적인 무대 예술로 발전시키기로 한다. 이 때 초청된 안무자가 <지젤>로 유명한 쥘 페로(Jules Perrot), <코펠리아>로 유명한 셍-레옹(Saint-Leon), <백조의호수>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유명한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이다.

이들 재능있는 안무자들은 체자레 푸니(Cesare Pugni), 표트르 차이코프스키(Pyotr Tchaikovsy) 같은 뛰어난 작곡가들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발레를 만든다. '낭만발레'가 탄생된 곳은 프랑스였으나 그 형식이 확립된 것은 러시아였다. 특히 페로 - 레옹 - 프티파, 이바노프로 이어지면서 '고전발레'의 형식이 확립되어 이들이 활동하던 상트 피체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은 세계 발레의 중심지로 우뚝 자리잡게 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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