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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박사 김박사, 실은 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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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아풀 댓글 0건 조회 1,877회 작성일 12-05-0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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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의 Shall We Dance?
 
안 쪽에서 악센트를 주고 있었는데 그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새빨간 칼라의 긴 머플러를 검정 코트에 받쳐 입고 기름 바른 올백의 머리를 보았으니 십중팔구 혹 제비 냄새가 난다고 보았을 터, 그 이상 무엇을 생각했을까 말이다.
“내가 직업춤꾼인 줄 알았군요. 나는 제비가 아니라 펭귄이에요. 은퇴한 황제제비 펭귄! 농담이고. 실은 Dentist입니다. 그리고 이제 배운지 얼마 안 돼요. 제 포즈 때문에 남보다 조금 더 근사해 보이는 것뿐인 것을 조 선생 정도 수준이면 알았을 텐데요.”
“그렇습니까? 아이고, 세상에. 헌데 어떻게... 너무 야하고 튀셔서...”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어 했다. 그는 볼룸댄스를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알지도 못했다. 다만 그냥 타고난 속칭 사교 춤꾼이었는데 볼룸을 배워보려고 왔다가 초보자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도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사교춤을 가르친 지 꽤 됐다면서요? 배운지 오래됐어요?”
 “저는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그냥 한번 보면 그대로 흉내를 내요. 아무리 복잡한 스텝도 어깨너머로 한번만 익히면 바로 할 줄 압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LA 바닥의 웬만한 아가씨들은 모두 자기 손을 거쳐 나갔다고 했다.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댄스파티에 가는데 상대가 필요한 아주머니들에게는 약간의 출장비를 받고 파트너로 가준다고도 했다.
“나이트 클럽요? 제가 꽉 잡고 있어요.”
덩치는 크고 거칠어 보이는 모습에 말하는 투도 세련되진 못하지만 그런 그가 오히려 내게는 귀엽기도 하고 순진하게 보였다. 나는 그를 조제비라고 놀리며 조젭이라고 불렀다.
술이 몇 순배 더 돌았다.
“조젭, 그런데 오늘 수강생들 중에 별스런 여자가 눈에 띄던데 누군가 궁금해요. 그 왜, 근사한 검정 타이스복을 입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다가가 파트너 해주며 도와주던 사람 말이요. 포즈로 보아서는 상당히 많이 배운 티가 나던데”
“아, 네 그 여자요? 남편이 몰래 춤을 배웠데요. 한 4년 정도 배웠다나봐요.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결국 들켰는데 대판 싸우고는 헤어지면서 3년 후에 춤추는 무대에서 만나자고 했대요. 그래서 독이 오를 대로 올라서 지독하게 배우는거래요. 헌데 저하고는 안 하려고 해요. 사교춤쟁이하고 하면 습관을 버린대나 뭐래나. 하여튼 혼자 고고한 척해요. 인물값을 하는 건지”
“그랬구나. 허긴 좀 까다로워 보이긴 하더구먼요. 조금은 공주병이 있는 것도 같이 행동하고. 그렇다 해도 이왕 도와주려면 골고루 해 주면 좋을 것을, 자기 맘에 드는 남자한테만 가서 도와주는 것 같던데.”
교습소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모임에 나가면 남들 앞에 나가 춤을 추지 못하고 멀건이 자리에만 앉아있는 게 싫어서거나 아니면 나이 들어 부부가 같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 춤을 배우려고 스튜디오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나름대로 각기 별의 별 사연을 갖고 오는 이들도 많다. 개중에는 애들이 다 크고 나서 중년의 위기감에서 혹은 무력감에서 무언가 찾다가 오는 남자들도 꽤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95년에 개봉된 일본판 영화“Shall we dance"의 예다. 스기야마는 40대 중년 샐러리맨이다. 그에게 불만이란 없다. 회사에도 가정에도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귀가 중에 전철차창에서 보이는 댄스학원창문에 비치는 젊은 여성의 춤추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찾아가 등록을 한다. 젊은 여자선생 마이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고 생각을 하고 냉정하게 대한다. 그녀는 대회 출전 중에 일어난 사고에서 남자가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유증으로 춤의 의미를 잃고는 춤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직업적일 뿐 남자의 접근에 신경이 과민하고 방어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차가운 대접으로 상심하던 스기야마는 그곳에서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화려한 의상으로 춤에 열중하는 아저씨와 아줌마들, 그런가하면 의사의 치료처방으로 온 뚱뚱보 다나까, 세기적 스타와 겨루어보겠다는 꿈도 야무져 가발로 변장하고 나오는 대머리 청년 등과 함께 춤의 매력에 빠져든다.
동료들의 권유로 댄스홀과 댄스파티에 참여하면서 점점 삶의 활력을 찾고 자신감도 얻는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매몰차게 대하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게 된 마이는 그를 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춤을 가르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춤이 자신의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한편 귀가시간이 늦어지고 일정한 날만 남편의 옷에서 못 맡던 다른 향수 냄새에 그의 아내는 사립탐정을 고용한다. 드디어 대회에 출전하는 날 선수 대기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해 지난날 자신의 젊은 자신을 보게 되고 플로어에 입장을 하는데... 객석에 있던 아내와 딸아이의 ‘아빠, 힘내요’란 외침에 그동안 감춰져 왔던 압박감에서 벗어남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혼자만의 가지고 싶었던 즐거움을 잃는 아쉬움이 교차한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와 딸의 이해를 받고 딸이 끌어주는 아내의 손을 잡고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춤을 가르치며 눈물의 스텝을 밟는다.
(이는 감독 자신이 실제로 6개월 정도 신입회원으로 등록을 하고 배우면서 경험하고 알게 된 에피소드들을 모아 만든 코미디영화인데 정말 초보들의 어려움과 실수들 그리고 재미들을 잘 그려냈다. 후에 독신주의였던 이 감독은 마이로 나왔던 여성과 결혼을 했다. 교본까지는 안 되더라도 왕초보자들의 어려움의 많은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
   
마이선생이 스기야마에게 대회를 위해 코치하고 있는 모습
“조젭, 그건 그렇고 말이야. 나중에 온 그 키 작은 노인네는 뭐예요? 화가 잔뜩 나서 돌아가던데”
“그분은요. 오래전에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알게 되었는데 춤추는 것을 좋아하지만 배워 본적도 없고 해서 제가 가르쳤는데 그저 나만 잡고 돌아요. 헌데 되게 돈에 짜서 시간당 조금 밖에 안주고 막 깎아요. 그것뿐인가요. 춤을 못 추니 아주 무거워요. 힘만 들고. 해서 싫은 소리를 좀 했더니 ‘다신 너 안 불러’ 하고 간 거예요. 얼마 있으면 또 연락와요”
“그래도 멋은 무척 냈던데? 희한한 모자에 비싼 핸드백에. 근데, 이런 소리 하긴 뭐하지만 좀 짧지 않나.”
“돈이 많은 과부인데 남자들이 다 자기 돈 보고 접근할까봐서 무서워 아무도 안 사귄다는데 내가 보기엔 워낙 외모가 받쳐주지 못하다보니 남자가 없는 거죠, 뭐. 게다가 퉁명스럽기까지 하고 심술이 보리자루 하나 가득이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헌데 아까는 왜 화가난건데?”
“아주 무거워요. 그 양반하고 춤을 추면 다른 사람 몇 명하고 추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돈 더 받아야 해요.”
상대의 춤 솜씨가 어느 정도인가는 한 바퀴 돌려보면 안다. 회전이 큰 사람은 아직 초보이고 서툴다. 키와 체중에 관계없이 잘 추는 상대를 만나면 가볍고 힘도 안 들어서 마치 상대가 없이 혼자서 추듯이 가뿐하고 흥도 나지만, 못 추는 상대와는 무거운 큰 나무기둥을 안고 나르는 것과 같아서 움직이기도 어렵고 힘도 배로 들어서 도망가고 싶다. 그리고 손을 잡아보면 손의 온도와 떨림으로도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긴장한 여성의 손은 차갑고 파르르 떤다. 차갑지만 가녀린 여인의 고운 손을 척척 휘감기는 듯 한 비트의 음악에 젖어 살며시 잡아본다고 상상해 보라. 심장이 멋을 것 같지 않겠는가.
조젭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춤꾼이긴 해도 막 배운 사교춤 때문에 자세가 바르질 못했다. 꾸부정한 어깨로 볼룸의 힘차고 당당한 자세가 없다. 그리고 남녀의 포즈 또한 잘못된 습관이 배어있었다. 그저 여자를 위해 돌려주고 잡아주고 하는 봉사하는 종의 역할만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움직임은 몹시 날래고 잽싸다.
볼룸과 사교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볼룸은 남녀의 몸이 절대로 전체 다 닿질 않는다. 오로지 오른 쪽 반쪽만이 서로 닿는다. 해서 소위 말하는 배꼽 중앙선이 맞닿을 수는 없다. 배꼽이 닿게 자세를 잡고 추면 속말로 카바레 춤이다. 오래전 코미디언 허장강의 유명한 대사를 기억하시는지. 상체는 붙였는데 궁둥이는 뒤로 쭉 빼고서는 어정쩡한 자세로 여자의 뒤를 두 손으로 더듬듯이 하면서‘어(오)마담, 우리 춤 한번...’하면서 슬로우 슬로우 빙글빙글 돌아가던 그 모습을. 그래도 맵시 있는 제비 오빠들이 지저귀는‘싸모님, 제 손 한번...’보다는 허장강의 겸연쩍어 하던 그‘어 마담’이 내겐 더 낭만적이고 순수해 보인다.
어느덧 시간은 깊어가고 술도 거나해 가는데 손님들의 자리가 하나 둘 비어가니 우리도 이만 자리를 떠야할 참이었다.
“조젭,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에 또 한 잔 기울이며 얘기 합시다.”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가락이 비에 속옷젖듯 술 취한 마음에 흥건히 스며드니 머릿 속으로 스텝을 밟고 마음으로는 사연에 빠져 주인공이 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음악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리요. 그보다 춤이 없다면 얼마나 멋적으리요.
밝은 춤을 추는 사람들, 음악만큼 아름다워라.
춤은 인생을 노래하는 행위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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