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7 신 ) - 내 인생길에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 가장 긴 여로였다 > 순레자이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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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7 신 ) - 내 인생길에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 가장 긴 여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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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MART 댓글 0건 조회 932회 작성일 14-10-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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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청량한 하늘 밑을 걷고 있다. 10월 중순인데 귀와 코, 손가락이 시리다. 지난밤을 보낸 ‘로스 아르코스’를 나서서 교외로 빠지니 오르막 땅 좌우가 온통 비석과 십자가로 뒤덮인 오래된 묘지다. 저 앞서 걷던 순례객 몇몇이 미동도 않고 한 무덤의 비석을 보고 있다. 

나도 다가가 비문을 보니, “당신은 나의 옛 모습이고 또 나의 모습이 되리라” 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더군. 말없이 서로들 묵시적 동감을 눈으로 교감하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이상하게도 몸 움직임이 무겁다. 저 고혼, 가엽게도 이 길을 끝내 지도 못하고…48세로 생을 마감했구나. 그에게도, 돌아올 그를 기다리는 정든 가족도 있었을 탠데.. . 

                   언뜻 황지우 시인의「두고 온 것들」 의 몇 구절이 떠오르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어느 날 내가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도 모를 삶이여
                    좀 더 곁에 있어줬어야 할 사람, 이별을 깨끗하게 못해준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두고 온
                    거기, 부고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가만히 생각하니, 걸어온 이 길 주변에 온통 죽음이 산재해 있던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걸어왔네.  프랑스길 주변에만 무덤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수가 7천여기가 넘는다니!

사인도 갖가지로 추락사에, 병마에, 한파로, 몸이 쇠진하여, 심지어 좋아 보이는 가죽 샌달을 빼앗으려는 강도한테 변을 당하기도 하였다니.. . 싸늘한 천기에 마음도 서늘해져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나갔지. 사방은 온통 주황색과 흑회색이 뒤섞인 구릉지로 추수 끝난 밭 뿐이고, 나락을 줍는 새때가 군무를 이루며 오르내린다. 고개를 돌려 떠나온 쪽을 바라보니, 먼 동쪽  지평선의 낮은 구름이 마악 떠오르는 해로 영롱한 빛을 띄고 있네.

빛의 고장인 남불과 산맥으로 갈렸어도 역시 빛의 고장이구나 싶도록 아름다워 아침에 무덤에서 느꼈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시더군. 내가 걸어가는 길은 서쪽으로 아득히 먼 곳, 긴 그림자가 발걸음을 선도하며 재촉하는구나. 아득한 지평선 네 다섯은 넘어야 피로한 몸이 쉴  숙소가 있겠지. 저 멀리 성당의 쌍 종탑이 지평선을 깨뜨리며 흐릿한 실루엣으로 보인다. 미약한 희망이 솟는구나.
구릉 하나를 넘어서니, 저 아래 들판을 가로지르는 폭이 넓지않은 강물이 언저리의 숲에 가려 보였다 말았다한다. 그곳에 다다르면 쉼터가 있겠지. 출발한지 두 시간, 알맞은 시간에 쉴 수 있겠네. 언덕을 내려가 숲속길로 들어서니 젊은이들의 쾌활한 말소리가 사기를 돋구어주네.

넓은 공지에 중세부터 내려오는 순례자의 쉼터다. 돌을 깎아 만든 우물과 동물의 여물통, 식탁과 의자 여섯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들을 만들어 준 석공과 군주의 선한 마음이 느껴지네..
 
오늘은 다행스레 한 테이블 다섯이 모두 영어가 통해 쉽게 친근감을 나눈다. 특히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온 40대 교사 부부가 뉴욕에서 홀로 온 이 노인을 감격스레 바라보며 존경심을 표한다,  그것도 50대 후반으로 여기면서.. .  사과를  뱅뱅 돌리며 껍질을 깎는데 일순 침묵이 이상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내 솜씨에 감탄하는 눈치로 박수를 친다, 별것도 아닌데. 

한 벨지움 여성은 깍은 껍질을 들어 길이데로 팔을 벌리고 다른 일행은 사진을 찍는다. 나를 일식당 chef 로 보는 눈치다. 그 때 우리가 걸어 갈 방향에서 우리 쪽으로 힘겹게 다가오는 사 오십대 동양 남성! 

한국인요? 이를 하얗게 들어낸채 침묵.. .  Korean?  그제야 자기 가슴을 가르키며 Japan! 한다.  우선 하얗게 깍은 사과를 반 잘라 권하고, 어떻게 반대로..?  6개월 장기휴가를 얻어 일본에서 로마로 날아가 이태리에서 오는 순례길을 끝내고 프랑스길을 역으로 가, 프랑스 관광 후에는 로마로 간다네.  그 의지가 대단하다.  다부진 체격에 구리빛 얼굴과  목덜미를 살피다 배낭끈 밑의 사파리셔츠와 흰 내복이 헤어져 살이 들어나 보인다.

비록 헌 옷이지만 셔츠 한 벌을 주고 싶어 말없이 배낭을 당기는데, 왜 하필 그때 ‘독도’가 떠오르던지.. .  슬며시 없던 일로 제스처를 부리며 “BUEN CAMINO !” 라 호기있게 외쳤지.

하!  그 일이 이 길 끝날 때까지 어찌나 후회 되던지.. .

문득 김수환 추기경님의 “내 인생길에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 가장 긴 여로였다” 는 말씀이 떠오르더군. 그래 다음 여행의 코스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마음 먹었지.

오늘은 내내 그 미네소타부부와 함께 걸으며 서로의 속내를 털어 놓았다오. 그들은 5년전에 이혼을 하고( 그동안 후회와 반성을 반복했겠지... ) 이번에 재결합을 하여, 재혼여행을 이 길로 택했단다. 신선한 충격이란 이런 것 아니겠나. 더욱 놀래킨 것은 저 뒤에 16살 먹은 아들이 따라오고 있단다. 기타를 등에 멘 남자애가 보이면 자기 아들이라고. 아침 잠이 많아 늦게 출발하지만 발이 재서 저녁 숙소는 그 애가 먼저 정해 놓는다고. 

우리의 속담을 얘기해 주었지. ‘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하루를 살아도 움직임이 많으면 생각의 폭과 마음의 깊이가 더욱 크고 깊어진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재 확신할 수 있었지.  그리고… 저들 아름답고 멋진 풍광의 선물은 말 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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