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15 신 ) - 마음껏 울음을 터뜨릴 시간도 갖는다며 > 이강홍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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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15 신 ) - 마음껏 울음을 터뜨릴 시간도 갖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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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MART 댓글 0건 조회 1,264회 작성일 14-10-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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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요리로 유명한 고장을 거치면서 점심 겸 지친 몸도 쉬려고 식당을 골라 들어가니, 웬걸! 식당이 손님을 골라 잡을 형국이다. 이곳 저곳이 자리를 기다리는 손님으로 차있다. 나 하나뿐인 손님이 반가울리 없겠지 푸념하며 기다리려니 마침 저 구석에 순례객 차림의 몇몇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빈 자리가 보여 접근하니, 청하기도 전에 손으로 앉으라고 표시한다. 

고맙다며 짐을 내리고 동석하자 마자 음식이 나오는 데 - 물론 나는 주문 할 틈도 없었는데 - 마치 지인처럼 대하며 함께 먹자네. 쑥스럽게 참여 하는데 또 다른 음식이 나오고. 가만히 살피니 한 그룹으로 걷는 일행이 아니고  우연하게 식당에서 동석한 순례객들이라 중복되는 음식도 나오더군 . 나도 얻어먹기만 할 수 없지.. , 시간들이 괜찮은가 묻고는 가장 비싼 요리를 주문했더니 Chef가 직접 들고나와 자기작품을 자랑하는데 동석인의 통역을 듣고 난 후에야  알을 잉태한 오징어만 쓰고 그 먹물로 요리한 것이라네.  맛은 일품인데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실감 있게 느꼈지요.

드디어 '산티아고'까지 하루길을 남긴 ‘아르카 오 피노’( Arca O Pino) 에 다달아 숙소를 찾아드니 거의 축제분위기다 - 인명이나 지명 앞에 O자가 붙음은 Kelt족 일부가 여기에 잔류하고 '아일랜드'로 도하하였다는증거다 – 피곤도 할터인데 마음들이 들떠서 타운의 거리가 소란하다. 내일은 땀에 절지 않은 깨끗한 옷으로 ‘야고보님’의 대성당에 입당하여 알현 드리려고, 세탁물을 휘말아 세탁기와 탈수기가 비치된 ‘알베르게’ 뒷마당으로 들어서니 거기에 또 줄이 서 있다. 

하는 수 없이  기다리며 내일 길 안내서를 읽고 있으려니 내 뒤의 훤칠한 여성이 말을 걸어오는데 자기 것도 많지 않으니 함께 넣잔다. 세탁기와 탈수기 각  30분씩 줄일 수 있고, 돈도 각자 4유로씩  절감되니 나쁠 것 없지. 응락을 한 후 말문이 트여 서로를 소개하니 ‘덴마크’ 여성 으로 항공기 승무원이라네. 여러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어 서로의 옷을 쏟아 넣고,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여 그 여인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건너편 bar로 가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모처럼의 한가로움을 즐겼지.

끝나갈 시간에 맞춰 세탁기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이미 그녀는 안보이고 내 옷들만 탈수기위에 놓여 있더군. 수습을 하여 숙소로 돌아와 옷걸이에 걸려는데 셔츠 겨드랑이가 불룩 솟아있어 끄집어내니 색깔 있는 여인의 팬티 아닌가!  아마도 탈수기 작동 중에 내 옷 속으로 말려들었나보다. 이것을 봉지에 넣어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 사이를 누비며, 더러는 이른 잠을 자고 있거나 더러는 독서를 하거나 또 더러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여인들을 살피며 그녀를 찾아도 눈에 뜨이지 않더군.  혹시 나처럼 다른 호스텔에 머무는가 생각하고 관리실의 수녀에게 맡기려 복도로 나서니, 바로 그때 그녀가 쇼핑백을 가슴에 안고 들어오지 않는가! 말없이 모퉁이로 이끌어 봉지를 쥐어주니 열어보고는 Oh, my..! 하며 몹시 무안한 모습이다.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세탁기 안에서 엮은 데이트!

부산 하구나, 이른 아침부터 마음들이 들떠 있는것 같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보다 이르게 아침단장 끝내고 식당에 들어서니, 며칠간 함께 걷던 얼굴들이 많아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빵을 떼는데 주 화제는 오늘 입성하느냐 마냐다. 영문을 몰라서 겨우 20.1km 남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참여하니, 오후에 입성하면 대성당 앞에는 순례객의 열 배 스무 배의 관광객이 줄지어 있을것이고, 참배를 하려면 몇 시간은 긴 줄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될 것이라 겁을 주네.

생각있는 이들은 도성 못 미친 가까운 곳에서 밤을 지내고, 상쾌한 아침에 한가롭게 입장하여 여유롭게 ‘야고보님’ 을 알현하고, 마음껏 울음을 터뜨릴 시간도 갖는다며 눈물 닦을 수건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익살을 떠네. 식탁에 앉은 대부분이 수긍하는 눈치다. 어서 끝내려던 내 마음이 혼란해지네. 그렇지! 고행하며 마음들이 어질게 변하여 남들을 헤아려 주려는 저사람 이 공연하게 역설하는 것은 아니지, 나만 남을 돕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니지. 따르자!

목적지를 10.2km 남긴 ‘라바코야’(Lavacolla) 에서 오늘 밤을 유숙하기로 마음먹고 호텔업자 오스트리아인과 함께 출발하니, 참으로 오랫만에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새 봄의 신선함을 그득하게 맛보며 걸어갔죠. 짧은 구간이라 쉽게 여겼는데, 왠걸 기대와 달리 꾸준한 오르막에 많은 빗물로 골이 패인 산길이라 지면을 골라가며 오르려니 숨이 차고 땀이 계속 흐른다. 주변은 온통 잡목의 회색 숲이다. 왼쪽은 튼실한 철조망이 높이가 실히 3미터는 되겠는데, 거기에는 수천 수만개의 조그만 나무 십자가가 꿰어 있네!  어느 순례자가 처음 시작한 후, 뒤 따른 사람들이  거듭 끼워놓아 무수한 십자가가 꽂혀 있더라.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지. 길에 떨어진 잡목가지를 철조망에 가로 세로로 끼우니 훌륭히 십자가모습이 되더군. 앞으로 십수년은 지나치는 순례객에게 경건함을 주리라.. .
 
조금 후 햇살이 나온 시각, 고막이 찢길 굉음으로 몸까지 떨리는 수분간 정신이 없는데 두대 씩, 두대 씩 하늘로 치솟는 제트기들.. !  전혀 의외의, 순례길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이 여기 있었구나. 전쟁세대인 나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이토록 지근거리에서 일어나니 놀랜가슴을 가라앉히는데 또 수분이 걸렸네.  이후 수 킬로는 소음으로 대화를 이을 수 없었구만. 평지로 내려오니 철조망안쪽에 활주로가 보이며,  철조망에는 EU국기와 Spain국기가 나란히 붙어있어 순례행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종교가 인문영역의 일부분 이라고 깨우쳐 주는 것 같네.

그렇게 요란할 필요까지.. , 가만히 생각하니 그 수많은 십자가들이 저들 살육의 병기에 사랑과 자비를 잊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며 또한 저 무기들에 의해 생명을 빼앗긴 원혼들을 진혼시키는 십자가라는 생각으로 바뀌더군.

숙박지에 이른 오후 도착하여 땀에 절은 옷가지를 세탁하고 몸도 씻으니 마음도 덩달아 정결해 짐을 느끼누나. 길에 나 앉은 테라스에 맥주고장 오스트리아에서 온 ‘쟈크’가 추천한 맥주를 큰 잔으로 들이키니 세상사 이렇게 행복한 순간도 있을까? 순례길을 통털어 가장 평화롭고 상쾌한 해방감을 느끼는 시간이었지.. .

연달아 힘겹게 지나치는 순례객들과 눈인사를 나누는데, 한무리의 한인들 남녀가 “아휴!” 하며 이웃 테이블에 배낭을 내리면서 나를, 아니 내 맥주잔에 시선을 쏟네. 그중 남자에게 “생각있소?” 하니, 웃음띤 모습으로 “못 참겠는데요”, “이리와요” 하니 다섯명이 의자를 끌어 우리 테이블을 둘러친다. 크게 건배를 하며 마시는데 그들의 들이키는 목덜미에서 생동하는 젊음을 느끼겠더.

이를 바라보다 문득, 순례길 첫 날 괴롭게 목타던 언덕길에서 오렌지쥬스를 내밀던 대만여인이 떠올라 가슴이 아립디다.  내가 모든 이들의 셈을 치루자, 진지한 감사의 표정과 음성이 내 마음 속에 뿌듯한 보람으로 변하더군. 우리 둘이 마신 맥주 값도 나누어 낼 생각을 갖고 있던 ‘쟈크’는 내 선심에 감동을 느꼈다하면서도 뭔가 납득이 안되는 눈치다. 두어라, 무엇으로 설명한들 ‘동포’에게 쏠리는 가슴의 행동을 이해할까. 한인 여성 셋, 남성 둘 두 그룹이 우연히 만나서 함께 걸어왔다하네. 늦기전에 어서 도착하라고 격려하며 떠나보냈지.

길고 힘들던 고행이 내일로 끝난다는 흥분 탓이겠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옷을 되입고 밖으로 나서니, 흑칠한 밤의 적막속에서 포옹을 하고 있던 남녀가 몹시 놀라면서 떨어진다. 나 또한 놀랬는데, 나를 원망 하겠지?  낮에는 그토록 귀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밤에는 왜 놀래키는 존재가 될까? 내 맘의 이중성 인가?

선은 빛의 세상에서만 존재하고 암흑세상에서는 배타와 공포의 악령에게 자리를 내어 주나? 

밤에는 사람과의 조우가 없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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