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에 담긴 행복 - 타냐 > 최신이민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신이민문학


 

칼럼 저녁 식탁에 담긴 행복 - 타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838회 작성일 10-09-26 20:31

본문

며칠 전 친구집에 숙제를 하러 간 아이를 데리러 그 집 앞마당에 들어서는데 쌀쌀히 불기 시작한 저녁 바람 끝에 나뭇잎 하나가 발등으로 떨어진다.

문득 나뭇잎이 떨어진 나무를 올려다 보니 어느새 익어가는 가을이 보이는 듯 하다. 아늑히 지나가는 배의 고동소리도 들리고 바다로 떨어지는 가을 노을도 보인다.

아무래도 가을 시선에 멈추었다가는 모임에 늦을 것 같아 얼른 그 집으로 들어 서는데 맛있는 로우스트 비프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갑자기 하루의 긴장이 풀리며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 집에 왔네. 편하고 따스한 음식이 있는 곳. 이래서 머리 좋은 유대인 여자들은 하루종일 샤핑을 하다가도 남편이 올 시간이 되면 재빨리 돌아와 양파와 마늘을 볶아 집안에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고 했나보다.

마침 저녁을 먹고 댄스 클래스에 가려는 그 집 고교생 두 딸들이 아주 연하고 맛있는 고기를 많이 먹었다며 엄마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문을 나선다.

또 막 오븐에서 구은 초콜릿 칩 쿠키를 조금 떼어 먹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남자 아이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한 폭의 행복한 가정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말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집.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에 서로 귀기울여 주며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마주 앉아 천천히 익힌 음식을 나누는 따뜻한 식탁이 있는 집.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다 먹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는데 요새는 뭐가 바쁜지 식탁을 차리기가 힘들어 진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밥하기 힘들다면서 자꾸 쉽고 편한 방법을 찾게 된다. 점점 음식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는데 이렇게 평일에 시간이 걸리는 홈메이드를 만들다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집 안주인인 베스는 자녀가 넷이나 된다. 새로 개척하는 교회 목사의 아내로 중학교에서 풀타임 간호사로 일도 한다. 또 건강상의 이유로 오후에 낮잠을 두 시간씩은 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홈쿠킹을 한 것이다.

그 날 모임에 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투고해 온 음식이 올려져 있는 우리집 식탁이 떠오르면서 왠지 식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나도 꼭 로우스트 비프를 요리해야 겠다"면서 "왠지 이 냄새가 나를 몹시 행복하고 편하게 한다"고 했더니 베스는 눈을 반짝이며 이 '냄새'에 무슨 전염성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자기도 어제 성경공부를 갔는데 어떤 분이 홈메이드 쿠키를 잔뜩 구어 오셨다는 것이다.

그 분은 옛날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던 할머니집이 무척 그리워져서 하루종일 쿠키를 만들면서 그 냄새를 즐겼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도 과거 엄마의 로우스트 비프 냄새가 너무 생각나 오랫동안 안쓰던 크랙 팟을 꺼내 요리를 했다는 것이다.

모임에 늦을까봐 발을 동동거렸던 나는 크랙 팟과 레시피를 빌려 느긋하게 그 집을 나왔다.

그 다음날 우리 집에선 하루종일 야들 야들 익어가는 고기와 야채 냄새가 진동했고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들은 이 무슨 좋은 냄새냐면서 시키지도 않은 테이블 세팅을 하며 더 도울 일이 없냐고 물어온다.

오랫 만에 맛있는 로우스트 비프를 먹으며 해바라기처럼 환희 웃는 식구들의 미소에서 소박한 가을 행복을 느끼며 왠지 이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 더 풍성하고 정겨운 가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