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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쇼 - 문학시대: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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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28회 작성일 21-05-3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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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노동절(Labor Day)이 되면 긴장한다. 다음날 어김없이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소집된 회의에 선생들은 아직도 방학 중임을 시위하듯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났다. 카페테리아에 베이글, 소시지, 에그, 커피가 차려져 있다. 소위 말하는 브런치 미팅이다. 칭찬과 웃음에 후한 미국 선생들, 썸머 쟙을 뛰었고 어디를 다녀왔고 학생들만큼 시끄럽다. 교장이 앞에 나간다. 새 학년의 아젠다가 시작된다.

 

이 고등학교는 블루리본 스쿨이다. 우수학군에 자부심을 얹어놓은 교장은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들고나온다. 이번 해는 학생들이 위주가 되는 수업을 하라고 한다. 교사는 최소한 말을 줄이고, 학생들이 말을 많이 하게 하란다. 헤드폰을 끼고 건들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것을 해야 한다.

 

나의 학생들은 주로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출신이다. 부모들은 학군이 좋다는 이 타운에 무작정 들어온다. 싼 아파트에 살거나, 친척 집에 열댓 명이 북적거리기도 하고, 혼자 온 경우는 하숙을 한다. 학생들은 학기 첫날에 영어 능력을 평가받으려고 나를 기다린다. 미국 아이들이 선택하는 정규 영어(English)를 할지, 외국 학생들이 듣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을 할지가 결정된다. 아이들을 일단 학교에 밀어 넣은 부모들은 이제 먹고살 걱정을 한다. 그들은 밤늦도록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주말을 지내고 온 아이들은 브로드웨이 쇼를 봤다고 했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올랐다. 뮤지컬 캣츠를 보러 갔었다. 미국에 오면 누구나 본다고 해서, 나도 보면 될 줄 알았다. 비참했다. 노래는 물론, 대사, 춤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에 본 레미제라블,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래, 뮤지컬을 한번 공부해 보자. 그리고 학생들을 데리고 브로드웨이 쇼에 가는 거다. 커리큘럼이 정한, 일 년에 한 번 가야 하는 현장학습까지 해결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한자락 깔고 있는 라이언 킹을 보기로 했다. 신나는 노래를 교실에서 트니 학생들은 좋아했다. 사운드트랙 CD를 나누어 주고, 노래 5개 정도를 소그룹에 정해 주었다. 아이들은 사전을 뒤지고, 의견을 나눈다. 선생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들이 직접 하니까 집중을 더욱 잘한다. 나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질문에 답만 해주면 된다. 학생들은 노래와 춤과 분장을 곁들여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는 점수를 매긴다. 교장이 제시한 프로젝트, 학생 위주의 수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라이언 킹을 보러 가는 날. 나는 30명이 넘는 틴에이저의 샤프롱이 되어, 스쿨버스를 타고 밤에 맨해튼으로 갔다. 티켓 잃어버리지 말고, 그룹과 함께 움직이고, 버스 기다리는 장소 기억하고......주의 사항을 반복했다. 캣츠를 보며 머릿속이 하얘졌던 때를 생각하니 감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라이언 킹이 한참 진행 중이다. 메타포가 많은 어려운 노래 가사가 훤히 들린다. 쇼에 푹 빠져 온데간데없는 나. 갑자기 관객들이 나를 돌아보고 뭐라고 한다. 왜 그러지? 근데 이게 무슨 소리?  노래가 내 뒤에서도 들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오 마이 갓. 우리 애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아는 노래가 나오니까 신이 난 그들. 여기가 무슨 팝 콘서트장인 줄 아나보다. 안내원 들이 쫓아오고, 나는 황급히 노래를 중단시켰다. 아이들은 다시 빠져들었지만, 나는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그때 그 아이들. 지금은 어른이 되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라이언킹을 보러 갈지도 모른다. 고교 시절 메모리 한 조각이 클릭 되어, 그때 따라 부른 노래를 속으로 따라 할지도 모른다. 공부를 지독히 시켰던 그 옛날 미세스 김이란 선생도 살짝 떠오를까. A에 연연해하던 그들인데, A를 후하게 줄 것을, 끌어내린 B 학점이 내 점수인 듯 뒤가 당긴다.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브로드웨이 쇼는 노래를 먼저 듣고 가야 한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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