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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베이비시터 - 뉴욕중앙일보: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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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30회 작성일 21-05-30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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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작은 애를 병원에 데려간다고 한다. 눈을 자꾸 꿈쩍거리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시력이 나쁜지, 알레르기가 있는지, 온종일 눈을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한 두 번 보기는 봤다. 밥 먹기 싫을 때 와 냉장고 문 열지 말라고 했을 때, 아이는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나는 그냥 넘겼는데, 자기 집에서는 정도가 심한가 보다.

 

남편이 공룡 책을 한권 사왔다. 말이 느린 작은 아이가 유독 공룡은 '다이쉬~~' 하면서 관심을 드러낸다. 나는 한 권만 사 오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큰아이는 그 책을 기어이 뺏었다. 힘도 말도 딸리는 작은 애의 머릿속 탱크가 가열된 듯 시뻘건 얼굴이 폭발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뚝 그쳐' 하고 야단쳤다. 아이 속에 저런 분노가 있는지 조금 놀랐다. 큰아이는 동생을 야단치지 말라고 한 수 더 뜬다.

다음날 큰아이와 함께 책방에 갔다. 어린이 코너로 가던 중에 큰 애는 제 눈 높이에 있는 유혹물에 걸려든다. 나지막한 선반에 있는 장난감을 사 달라고 한다. 사람 몸이 그려져 있는데 어떻게 노는지 잘 모르겠다.
"
이거 할 줄 알아?"
"
응 나 알아, 유튜브에서 봤어."
책 판매대로 갔지만, 책에 대한 관심은 날아갔다. 손에는 장난감 박스가 있으니까

장난감은 일회용인 듯 산처럼 쌓여간다. 산더미는 다섯 살짜리의 호기심을 이틀 이상 잡아두지 못한다. 큰아이는 장난감을 만지다가 나의 눈치를 본다. 아이패드에서 유튜브를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두어 시간 끄덕없는 공짜 베이비시터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슬쩍 생긴다. 한번은 아이가 보는 유튜브를 같이 보았다. 생일 파티 장면이다. 주인공의 부모가 친구들이 가지고 온 선물을 클로즈업 해서 똑바로 보여준다. 큰 애는 새 장난감에 환호하는 아이들이 부러운 나머지 화면 속으로 뛰어들기 일보 직전이다. 신제품 선전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며칠 후, 작은 애가 병원에 다녀온 결과가 궁금했다. 아들의 대답이 약속을 취소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유튜브를 주지 않고 며칠을 지냈는데, 작은 애의 눈 깜빡임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작은 애는 아이패드를 앞에 놓고 밥을 먹인다는 말을 듣긴 했다. 눈이 화면에 고정되어 있으면, 밥을 자동으로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또래보다 작은 둘째가 안쓰러운 모정은 유튜부라도 틀어 놓고 음식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공짜 베이비 시터인 줄 알았던 유튜브가 작은 애에게 그런 해악을 끼쳤다니유튜브와 장난감 말고 뭐가 없을까? 큰 애가 파는 플라스틱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 나도 진력이 난다

"아리야, 마룻바닥에 먼지 보이지? 너무 더러워서 청소해야 해."
나는 먼지를 끌어당기는 종이가 부착된 가벼운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훝기 시작했다.
"
내가 할게, 내가 할래."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큰 애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다. 미색 드레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도 반으로 묶고 나타났다. 새엄마에게 구박받으며 걸레질하는 신데렐라 놀이 중인가?
"
와아, 할머니, 이거 봐! 너무 더러워!!"
걸레 밑바닥을 공중으로 쳐든 아이는 자신의 성취에 스스로 취한 듯 하다.

진짜 세상에서 먼지 덩이를 닦아 냈다는 자부심이 그득한 소리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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