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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비결


 

뇌졸중이 나도 죽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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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2,510회 작성일 11-05-1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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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검 기록을 읽으면서 기이하게도 위안이 되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피부 상태는 정상이다. 식도에도 손상된 흔적은 없다. 위에도 두드러진 증상이 없다. 소장에는 거의 소화가 되지 않은 음식 조각들이 남아 있다. 미약한 폐기종 증세만 있을 뿐이다.” 아버지가 17년 전에 담배를 끊은 것도 한몫한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다음과 같은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환자는 신장과 심장 판막, 간, 눈, 비장과 임파 조직의 일부, 방광, 전립선, 췌장 등을 포함하여 장기의 대부분을 기증했다.” 우리는 장기 기증 센터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이 남녀 여섯 명의 생명을 극적으로 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의 인생은 일순간 멈춰버렸다. 나는 어쩌면 달라졌을 수도 있는 어떤 상황들을 되짚어 보았다. 어머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버지가 끝까지 난간을 잡고 버텼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니면 5년만 더 일찍 그런 징후를 알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변해 있을지 하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보았다. 아니면, 솔직하게 우리 가족 중 어느 한 명이라도 아버지의 이모와 삼촌 두 명이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는지를 자세히 알아봤다거나, 증조할머니가 왜 의식 없는 치매 상태가 되었는지 궁금해했다든지, 할머니가 6년 전에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요양원에 들어갔던 원인을 좀 더 확실하게 캐물어봤더라면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59년 동안 살다간 한 사람의 인생을 고작 다섯 페이지에 불충분하게 요약해놓은 그 문서를 골똘히 읽고 또 읽었다. 왜냐하면‘대뇌 내부의 대량 출혈’이라는 의학적인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8계단을 뒤로 굴러 떨어지셨고, 단단한 슬레이트 바닥에 심하게 머리를 부딪쳤다. 이로 인해서 아버지의 뇌에는 36개쯤 되는 내출혈 상처가 생겼다. 즉 출혈성 뇌졸중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부검 기록 끝부분에 덧붙여진 부록의 내용 중,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검으로 밝혀진 증상들은 카다실Cadasil과 일치한다. 그러나 각각의 증상들을 따로 진단하기는 어렵다.”대체 카다실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 환자는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도와달라는 소리를 외치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간호사가 1984년 9월에 나의 종조부인 조지를 집으로 방문한 뒤 남긴 메모의 한 글귀이다. 조지는 1991년 1월 세상을 뜰 때까지 줄곧 그런 모습으로 침대에서 지냈다.
아마도 대부분 주위에 뇌졸중을 앓은 사람 한두 명은 알고 있을 것이다. 심장병과 암의 뒤를 이어, 미국 남성들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세번째 질병이 바로 뇌졸중이다. 올해에도 70만 명의 미국인이 뇌졸중을 일으킬 것이며, 그 중 4분의 1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분의 3은 영원히 불구자의 삶을 살 것이다. 뇌졸중이 당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뇌졸중을 일으킨 환자 12명 중 1명이 50세 미만이며, 그들 중 3분의 1이 정년퇴직을 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뇌졸중에는 2가지 형태가 있다. 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 전체 뇌졸중의 80%를 차지한다. 그리고 출혈성 뇌졸중이 그 나머지 20%를 차지한다. 이것은 혈관에서 피가 새어 나와 뇌로 흘러들어가서 발생하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1997년 3월에 일과성 뇌허혈 발작 진단을 받았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57세로, 쓰러지는 사고가 나기 2년 전이었다. 아버지는 의사를 찾아가서 균형 감각이 둔해지고 몸의 오른쪽 부분이 허약해졌다고 호소했다. MRI 스캔을 실시한 결과, 조정 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인 소뇌에‘약간의 경색증’, 즉 뇌졸중이 발생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의사는 아버지의 진료 기록에‘보통 경도의 소란 반자 경색증’이라는 소견을 남겼다. 증세가 뚜렷하지 않은 뇌졸중 증세를 일컬어 의사들이 표현하는 말이다.
뇌졸중 치료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인 UCLA대학교 뇌졸중 센터의 신경과 조교수 데이비드 리베스킨드 박사는“대부분의 사람들은 뇌졸중을 대재앙으로 여기지만, 올해만 해도 1천1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증상 뇌졸중을 겪을 전망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수치는 미국 남성 약 25명 중 1명에 해당한다.“무증상 뇌졸중 한 번만으로는 아무런 의학적 조짐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나, 여러 번 반복해서 발생할 경우에는 뇌의 기능이 조금씩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하죠.”

무증상 뇌졸중은 작은 혈액 응고 덩어리가 뇌로 흘러들어가 모세 혈관을 막음으로써 산소가 풍부한 혈액이 다른 편의 뇌 조직으로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때에 발생한다. 응고된 작은 혈액 덩어리는 팔이나 다리의 혈관에서 떨어져나온 플라크 조각일 확률이 높다. 이때 뇌에서 동전 크기만한 부위가 일시적으로 죽지만 당사자는 아무런 증상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무증상 뇌졸중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다. 그러면 1~2년 후에 다시 무증상 뇌졸중이 찾아오고, 뒤이어 몇 년 후에 또 무증상 뇌졸중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균형감각도 사라질 뿐만 아니라, 어휘력도 떨어져서 단어가 제대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손자 녀석은 할아버지가 실성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리베스킨드 박사의 말에 따르면 그런 증상을 혈관성 치매라고 일컫는다.“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가장 흔한 치매의 원인입니다. 늙기 전까지는 자신의 뇌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죠. 그러나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40대 남성 1백명을 모아서 MRI 스캔을 실시해보면, 그 중 상당수가 이미 무증상 뇌졸중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 겁니다”라고 리베스킨드 박사는 경고한다.

아버지가 MRI 스캔을 받았을 때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건 사실상 좋은 소식이었다.
정도가 심하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잃었던 기능을 이미 회복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아버지의 뇌 중심부 깊숙한 곳의 한 부분이 MRI 스캔 사진에 아주 밝은 흰색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의사는 이제껏 이런 유사한 증상이 젊은 사람한테 나타난 경우를 본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기이한 이미지는 뇌 백질이라고 불리는 조직으로부터 나타난 것으로서, 백질은 신경 섬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의 경우, 백질의 큰 부분이 소실되어 있었다. 백질은 유아기 때에 발달하기 시작해서 늙으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늙은 나이가 아니었다. 주치의는 피츠버그 대학교 의료 센터의 신경과 의사에게 아버지의 진료를 부탁했다.

“나는 그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뇌졸중과 관련된 병원 기록을 조회해 볼 계획이다. 따라서 카다실에 대한 실험이 가능한 때가 오면, 이 조사 결과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 1997년 4월, 피츠버그 대학교의 의사가 남긴 기록 중 일부.
카다실에 대한 유전자 테스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 후인 2000년에야 가능해졌다.
“당신의 뇌를 스캔해봐야겠습니다.”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두 달 만에 내 주치의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대체 무슨 이유로요? ”“기준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현 상태를 보관해 두면, 당신이 늙은 후에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쉽게 알아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치의는 대답했다.“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그저 사고였을 뿐인걸요.”“그래도 당신 뇌를 스캔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설사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해야 합니다.”그래서 나는 새로운 의사를 찾아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29세였다. 인생의 최고 절정기에 해당했던 시기로서, 뉴욕에 근사한 아파트와 훌륭한 직장이 있었으며,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세련미 넘치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의 탄탄대로에 약간의 제동을 걸었고, 종종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균형감각의 손실 때문이 아니라 더 복잡하고 교활한 의학적인 문제 때문이었다는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아버지의 죽음을 비극적인 사고로만 대했다. 사실은, 나는 그 사고 전날 아버지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눈치 챘어야 했는데 말이다.

1999년 10월 23일, 약혼녀의 부모님들은 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밀워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나는 자동차로 그들을 여동생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자들은 부엌에 모여서 리허설 디너와 리셉션 영접 등에 대해서 의논했고, 남자들은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낚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이상한 낌새도 없었다. 이상한 조짐이 보인 건 그다음이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낚싯대를 잡아채는 시늉을 해가면서 이야기하던 중,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항상 잡는 물고기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거실로 되돌아왔지만, 이야기하다 말고는 다시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는 다시 한 번 “그 물고기 이름은 크래피잖아요”라고 일깨워 주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모두 할로윈 퍼레이드에서 보이 스카우트 단원으로 행진하는 조카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걸어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힘없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동안 아버지는 우리보다 3미터쯤 뒤로 물러서서 전신주에 기대어 서 있었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우리는 부모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부모님은 다음날 오후 여동생의 집을 떠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4시간 동안 어머니가 운전했고, 아버지는 세 마디도 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계단을 올라가던 중, 아버지는 뒤로 쓰러지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붙잡았다.“빌, 난간을 꽉 잡아요”라며 주의를 주었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일곱 발자국째 움직였을 때 아버지는 또다시 뒤로 쓰러졌다. 어머니는 다시 아버지를 붙잡으며 나무랐다.

아버지가 우편물을 확인하러 밖으로 나간 몇 분 뒤, 어머니는 쿵 하는 소리를 듣고는 급히 뛰어나갔다. 우편물은 흩어져 있었고, 아버지는 바닥에 등을 대고 쓰러져 있었다. 다리는 완전히 곧게 펴져 있고, 발끝은 위로 향해 있으며, 양팔은 옆으로 벌린 모습이었다. 이런 자세는,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신호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머리 뒤쪽에서 모세 혈관이 터졌다. 어머니는 911에 전화를 걸었다.

“조지는 2년7개월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도 없고, 이야기도 전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반응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를 쓰다듬어 주고 말을 걸어 주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이것이 나에게 희망을 준다.”

- 아버지의 외숙모인 앨리스 할머니가 1987년 3월에 쓴 편지의 일부분.

지난 5월 어느 날, 나는 클레이톤 윌리 박사를 만났다. 윌리 박사는 피츠버그 대학교 의료 센터의 병리학자로서, 아버지의 부검 결과를 기록한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당신은 신경적으로 예민한 편인가요? ”라고 질문했다. 나는“별로 그런 편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로 다가가 평면 모니터를 내가 앉은 방향으로 보여준 다음, 더블 클릭 했다. 각각의 이미지마다 핑크색 조직 덩어리와 혈액 응고 덩어리가 보였다. “이것이 당신 아버지의 뇌를 촬영한 사진들입니다.”그는 해당 이미지를 보여준 뒤 설명을 시작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뇌 조직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출혈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뇌의 중앙에 있는 혈액 응고 덩어리의 지름이 10cm가 넘습니다.”윌리 박사는 설명을 계속했다.“사람의 뇌 조직이 얼마 부드러운지 아십니까? 젤리보다도 더 부드럽습니다. 아주 부드럽기 때문에 그 형태를 계속 유지할 수가 없죠. 이런 출혈은 뇌 조직에 정상적인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신호입니다. 즉 죽었다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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