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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메이드 인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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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947회 작성일 15-07-2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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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메이드 인 재팬' 상표를 붙인 일본 제품이 세계 각지에서 외면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방사능 누출에 따른 우려로 그간의 '고품질 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 최근 일본의 마케팅연구소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미국·영국·중국 소비자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 '지진 및 원전 사고가 일본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메이드 인 재팬'의 호감도는 지진 전에 50%에 달했지만 지진 후 38%로 전체 평균 12%p나 하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식품 부문은 지진 전 47%에서 무려 27%p나 떨어진 단 20%로 나타났다. 즉 이제 열에 여덟이 일본 식품을 기피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대지진이나 원전 리스크를 피해 일본 남서부나 한국, 중국 등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거나 핵심자산을 이전하려는 기업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자력발전을 재고해 장기적으로 폐쇄하자는 '탈원전 선언'을 하는 기업과 지자체도 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일간지 < 마이니치신문 > 은 "심지어 보수파조차 시민운동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반원전·탈원전 구호를 외치는 시대가 됐다"며 "원자력 르네상스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원전사태 후 일본 상품을 꺼리는 일이 잦아졌다. 뉴욕의 맛집으로 알려진 한 회전초밥집. 도쿄의 대표적 어시장 쓰키지에서 직접 신선한 생선을 공급받아 초밥을 만들어 유명해졌는데, 원전 사태 후 원산지를 확인하며 "일본에서 온 건 안 먹는다"고 주문해 놓고도 그냥 나가버리는 손님이 속출하고 있다.

3월 후쿠시마 원전의 수소폭발 직후부터 '제2의 체르노빌'이라 줄곧 보도한 유럽에서는 방사선 검사 등 검역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세관이 일본에서 온 컨테이너에서 "기준치의 8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측정됐다"며 일시적으로 하역을 보류했다. 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비행일정 차 머무른 일본의 한 항공사 스튜어디스는 숙박 호텔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난생 처음으로 굴욕을 당했다고 한다. 승강기에 함께 탄 독일인이 그녀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눈치채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구석으로 갔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본 제품은 물론 일본인에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마케팅 업체 인터브랜드의 조사에서 '일본 제품이 안전하고 신뢰할 만하며 고품질'이란 응답은 기존 52%에서 15%p나 떨어진 37%에 그쳤다. 개중에는 핀란드의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처럼 회사명이 일본어 같아서 일본 브랜드로 오해해 싫다고 답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일본제품이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인식이 워낙 강해 전자제품 이미지도 크게 하락했다. 지진 전 75%에 이른 일본산 전자제품 호감도는 현재 19%p가 떨어진 56%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시장에 대한 판매 비중이 큰 만큼 일본 전자제품 업체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보고서는 "원전 사고가 메이드 인 재팬에 대한 그간의 긍정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만큼 심대한 영향을 줬다"고 결론짓고 있다. 일본의 대중지 < 주간문춘 > 도 "전 세계가 이제 메이드 인 재팬을 싫어하게 됐다"며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스탠더스앤드푸어스(S & P) 등도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평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연말까지 실업자 수가 무려 62만 명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까지 일본정부에서 공식 집계한 292만 명을 더하면 사상 최악인 354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이런 전망을 내놓은 일본종합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한 인프라 파괴에 더해 중국·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에서 왔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전 사태 후 대거 귀국한 뒤 고용시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이 노동력이 대량으로 투입되는 제조업과 농업·외식·서비스업 등에서 타격을 입었다. 물건을 제때 만들지 못하거나 농산물을 수확하지 못하고, 음식점이 문을 일찍 닫는 일이 빈번해졌다. 기업이익은 줄고 이는 결국 전체 고용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경제지 < 다이아몬드 > 는 "악순환이 막 시작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각 기업의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종이박스·타일·반도체·수산물가공품 등 제조업체들은 별다른 지진 피해를 입지 않았어도 너나 할 것 없이 이미 생산거점이나 본사를 도쿄 등 수도권이나 남서부로 이전했다. 또 전력 부족이나 여진을 예상해 위험을 분산시키고자 인프라 일부나 전체를 한국과 대만, 방글라데시 등으로 옮기려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IT업체 소프트뱅크는 데이터센터를 통째로 한국에 이전하겠다고 지난 5월 말 발표한 바 있다.

일본 기업과 경제 전문가들은 '메이드 인 재팬' 가치를 복권시키려면 무엇이 최상의 카드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특히 '탈원전을 지지한다'고 표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트위터 팔로어가 무려 100만 명으로 늘어난 재일교포 손정의 사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이미 지난 4월 '탈원전'을 주장한 바 있다. 5월 말에는 일본의 최대 인터넷쇼핑몰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사장이 "일본 재계단체 게이단렌을 탈퇴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탈원전'을 선언했다. 게이단렌 측이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전력 사업 참여 배제와 원전 14기 증설 백지화를 골자로 한 일본정부의 '전력사업 개혁안'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에 본사를 둔 저축은행 조난신용금고도 자사 홈페이지에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는 안심 사회를 만들자"는 공고를 내보냈다. 신용금고 측에 따르면 반원전 메시지를 내놓은 이후 도쿄에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후쿠시마 출신 경영자들이 공감하며 재해의연금을 기탁했다고 한다.

퇴임 이후 강연회 등을 꾸준히 열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최근 한 대학 세미나에서 '탈원전'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탈원전 사업'에 참여하려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손정의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메가 솔라(대규모 태양광발전) 계획'에는 오사카부, 사가현, 시즈오카현, 사이타마현 등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5월 중순경에는 일본 전국 21개 현지사가 공동으로 자연 에너지 개발 추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 '반원전'을 내세우며 도쿄의 전통적 중산층 밀집지역인 세타가야구에서 당선된 호사카 노부토 구청장도 최근 전기를 축적하는 축전기술을 기술자와 기업이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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