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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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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4,211회 작성일 10-10-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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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982년 영국 런던에서 죽은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버그만의 어린 시절은 극도로 외로웠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불씨가 숨어 있었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숙부 집에서 자라난 버그만의 타고난 끼는 그녀를 대학이 아닌 스톡홀름 왕립극장 부속 연극학교로 이끈다. 연극학교를 졸업한 그녀가 영화 촬영소에 있는 친구를 찾아간 데서 운명은 바뀐다. 173cm의 키에 그리스 조각상같이 완벽한 용모를 지닌 그녀를 보고 감독 한 사람이 말을 건넨 것이다.

“영화에 한번 출연해 볼 생각 없나?”
“출연하고 싶어요. 어떤 역이든 맡겨 주세요.”

만 스무 살을 앞둔 1934년의 영화계 데뷔. 출연작이 늘수록 그녀의 명성은 스웨덴을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간다. 타고난 용모와 폭넓은 연기력에 주목한 이는 할리우드의 명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촬영한 영화 <이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녀는 1944년,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때 나이 스물아홉, 세계를 품에 안은 스웨덴 아가씨였다. 피터 린드스트롬과의 결혼, 딸 피아의 출생. 안정기에 막 들어서려던 참에 그녀의 영혼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1945년 가을, 그녀는 뉴욕에서 영화 한 편을 본다.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제2차 대전 당시 저항운동의 선봉에 선 시민들을 그린 신사실주의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차원이 달랐고 버그만은 큰 감명을 받는다. 1948년 봄, 같은 감독의 <전화의 저쪽>을 보고 역시 감동에 휩싸인 버그만은 감독에게 편지를 띄운다.

“친애하는 로셀리니 씨, 당신의 영화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쪽>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만일 스웨덴 여배우를 필요로 하신다면 저는 서슴지 않고 달려가 선생님과 영화를 같이 만들 용의가 있습니다. 저는 영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어는 티 아모`(Ti Amo)밖에 모른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 올림.”

티 아모는 영어로 하면 'I Love You'이다. 도덕의 완고함이 갑옷의 무게로 짓누르던 그 시대에, 영화 두 편을 보고 감독에게 매료되어 사랑을 고백한 그녀의 용기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전화의 저쪽>으로 뉴욕영화비평가상을 받으러 온 로셀리니는 버그만을 찾았고, 그로부터 한 달 뒤 두 사람은 이탈리아 관광에 나서게 된다. 버그만은 원했던 사랑을 얻었으나 남편과 자식, 미국에서 쌓아 올린 명성과 재산 등 가진 것 모두를 잃게 된다. 비난 여론이 세계의 모든 언론에 빗발쳤고, 버그만은 할리우드에서 모은 모든 재산을 남편과 딸에게 넘기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아내가 있던 로셀리니도 이혼을 한다.

이탈리아 명감독과 스웨덴 출신 여배우의 동거. '불륜'이라는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두 사람은 합심하여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만드는 것마다 흥행에 참패하고 평론가들은 비난을 일삼아 두 사람의 사랑에도 금이 가게 된다. 경제적인 파산이 두 사람의 결별을 재촉하는데, 둘 사이에 난 네 아이의 양육이 문제였다.

1956년, 무일푼으로 할리우드에 되돌아온 버그만은 <아나스타샤>에서 혼신의 연기를 하여 두번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 1958년에는 법정이 두 사람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고한다. 8년 동안의 사랑이 깨어졌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는다. 연극평론가 라스 슈미트와 세번째 결혼을 하고, 영화에 불굴의 집념을 불태운다. 미모의 얼굴에 주름살이 뒤덮이면 은퇴하는 것이 상례인 할리우드에서 그녀는 이때부터 더욱 일에 매진한다.

1974년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뒤에도 <가을 소나타>, <골다라는 여인> 등에서 노익장을 과시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의 불굴의 용기에 미국 언론이 비난의 화살을 거두어들인 것은 물론이다. 남자에 대한 사랑이건 일에 대한 사랑이건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었던 당찬 여인, 그녀의 이름은 잉그리드 버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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