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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병법 "내일은 내일의 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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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606회 작성일 15-06-0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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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아서 뭐해요. 나이? 에휴~ 먹을 만큼 먹었어요. 직업은, 음~ 파출부. 아니 가사도우미. 큰 애 아홉 살 때부터 했으니 올해로 18년째에요. 베테랑이죠. 호호~.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나도 한 땐 사모님 소리 들었다오. 작지만 다이아도 껴봤고. 남편 사업 그럭저럭 굴러가 친구들한텐 ‘시집 잘 갔다’ 소리 들었고요. 
동업하던 후배한테 사기만 안 당했어도. 쫄딱 어그러진 사실을 나만 몰랐어요. 맘 고생 안 시키려고 남편이 빚을 내 생활비를 갖다 준 거죠. 살아보려고 혼자 안간힘 썼을 남편이 안쓰러워 그날 많이 울었다오.
다음날 당장 일자리를 알아봤지요. 살림하던 여자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죠. 처음 일 나간 곳이 목동 아파트인데,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못 누르고 한 30분 서 있었나 봐요. 서른여덟이었으니 젊고, 자존심도 강했고요.
이러다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았어요. 이 집을 내 집처럼 가꿔주자, 아이들을 내 아이들처럼 돌봐주자. 복장도 신경 썼죠. 음식 하러 다니면서 화장 하고 손톱 길면 누가 좋아해요? 전화는 걸지도, 받지도 않았어요. 주인집에서 밥을 먹게 되어도 고기는 손 안 댔어요. 그냥, 그게 내 자존심이었어요. 수고 했다고 가끔 택시비를 쥐어줘도 절대 안 받아요. 난 내가 일한 시간만큼, 약속한 만큼만 받는다오. 
서럽고 억울한 경우, 왜 없었겠어요. 독감으로 열 펄펄 끓는 아이를 제 누나한테 맡겨두고 나서는데 발이 안 떨어져요. 한번은 주인집 화장대에 놓아둔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없어졌다고, 미안하지만 가방을 열어 보여줄 수 없네요. 거기 없으니 이번엔 옷을 벗어달라고. 그 심정 이해할 것도 같아 브라자까지 벗었어요. 휴우~. 여간해 우는 성미가 아닌데 그 날은 버스 타고 오는 내내 울었다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난 지금 행복해요. 남편은 버스기사로, 난 파출부로 열심히 일해 딸 아들 대학 졸업시켰고, 융자를 많이 냈지만 아파트도 분양 받았고요. 요즘은 일해 번 돈으로 오로지 날 위해 쓰니 이런 호강이 없어요. 칼슘 약 꼭꼭 챙겨먹고, 하루 1시간씩 걷고, 건강검진 받고요. 
그러니까 실직한 남편 대신 일하러 나온 거지요? 장해요. 근사해요.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공부 제대로 하는 거라 생각해요. 인생대학 09학번! 떠르르한 부자들, 장안의 권세가들도 근심 한 보따리씩 끌어안고 삽디다. 쥐뿔도 없지만 그들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남편이랑 저녁밥 먹고 민화투 치기로 했는데. 나 먼저 가요. 걱정 말래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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