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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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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500회 작성일 15-06-0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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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며느리들이 겪은 시간을 저 역시 지나온 것 같습니다. 서로 살아온 것, 생각하는 방식, 심지어 느끼는 방식까지 다른 사람들이 만났으니 그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직장생활 하는 저로선 시어머니가 아기 보며 집안일 하시는 것이 너무 힘드신 걸 알기에 죄송한 마음 많았고, 어느날 외출하시는 시어머니의 어깨가 너무 작고 안스럽게 보여 결심했죠. 

그래, 오늘부터 시어머니를 한번 사랑해보자, 내 남편 어머닌데 못할 것 없지 않나? 그 날짜가 바로 올해 2월 20일이었습니다(날짜까지 기억한다는 건 스스로 큰 의미를 뒀단 얘기겠죠?^^). 

그래서 진심으로 어머니를 대하려고 애써봤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하려 하고, 어머니 말씀이 재미없어도 웃으며 들어드리고 맞장구 치고...힘드시지 않은지 점심은 챙겨드시는지 신경 쓰고.. 내게 심한 말씀 하실 때도 '원래 어머니 성격이 저러신 걸 자꾸 내 맘속에 담아두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평화가 유지되었고 정말 고부간에 정이란 것이 쌓이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죠. 그럴수록 저는 노심초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어머니 맘 최대한 어루만져 드리자... 

그렇지만..그건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표면적인 평화 그 밑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불신과 몰이해와 두려움과 미움의 강물이 있었다는 걸 애써 외면해 온 거죠. 

똑같이 직장일 하고 와도 저는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밥 차리고 설겆이 하고 쌀 씻어 앉히고 과일 깎고 아기 목욕 시키고  세탁기 돌려 널고... 하지만 남편이 설겆이라도 할라 치면 어머니 신경질은 극에 달했죠. 결국 남편은 싱크대 앞에 서는 걸 포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못된 맘 생기기도 많이 했지만 남편도 틈틈이 도울 일을 찾아 했고, 전 나름대로 어머니 살아온 세월을 존중하자 라는 생각 많이 했지요. 

 밑반찬이니 집안 청소니 아기 돌보기니..어머니가 하시는 노동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구요. 

요즘 얼마간 아침 출근을 좀 늦게 해도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사건이 터졌습니다.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설겆이까지 끝내고 출근하곤 했는데.. 

그날은 남편이 술자리 끝에 새벽에 들어온 날이었지요. 저도 좀 늦게 일어나서 아기 젖병 씻고 대충 밥 챙겨먹고 출근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서 젖병을 챙겨 씻으려는 찰나.. 

갑자기 어머니 벼락같이 다가와서 소리지르더군요. 찌개감 챙겨논 거 안 보이냐고, 일 하면서 물만 부어 앉혀놓고 끓이면서 하면 되는데 그걸 안하냐고.. 

순간 저도 평정을 잃었습니다. 남편이 새벽에 들어온 것도 속상하고, 잠설치고 늦게 일어나 출근하려고 하는 며느리에게 꼭 그렇게 소리쳐야 하시는 건지, 게다가 어머닌 항상 아들 밥 먹기 직전 찌개 끓여 먹이는데(자꾸 데우면 맛없다고) 근무 없는 날이라 늦잠 잘 게 뻔한 사람이니 당연히 찌개 끓이는 게 급할 거 없다고 저 나름대로는 생각한 것이죠. 

늘 아들아들...하는 그 심정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만, 저도 친정에선 귀한 자식이란 생각 불쑥불쑥 들 때 많았구요, 그동안 말씀 한마디 한마디 사람 가슴 콕콕 찌르듯 해오신 것 눌러 참았던 것까지 그 순간 속상하더라구요. 

참지 말고 내 심정 말해야지 생각하고 어머니 쪽을 보니 벌써 방으로 휭하니 들어가 버리신 겁니다. 시간이 없어 출근했지만 그날 하루종일 제대로 일 못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서도 어머니 쪽 보기도 싫더군요. 그런데 또 무슨 오해를 하시곤 제게 한 말씀 하시기에 저도 바로 말대답했습니다. '어머니, 그건 어머니가 아시는 거잖아요, 제가 그걸 모르니까 그냥 둔거잖아요!' 

담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 방에 들어가 그간 섭섭했던 것 다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한 말씀 하실 때마다 내가 잘못한 것 지적하시는 거지만 너무 맘에 상처주는 그 말씀이 정말 속상하다고, 항상 화내시고 무섭게 말씀하셔서 어머니 모습 보는 게 무섭다고... 

어머닌 따지는 거냐고 화를 내며 소리지르시다가, 내가 대화를 해야 한다고, 계속 오해만 쌓이지 않냐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공부좀 했다고 잘난척 하냐, 집안 살림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있냐, 툭하면 친정이나 가려 하고 냉장고 청소 하나 제대로 했냐..일요일에도 이것저것 밀린 일 찾아 한 담에 쉴 생각 안하고 남의 살림 보듯 하냐..등등.. 

휴일엔 아이와 놀아주고 출근 준비하고..겨우겨우 내 앞가림 하는 것에 급급했던 제가 무척 미웠던 거죠. 게다가 어머니한테 살림 다 미뤄버릴까 두려우셨던 것이구요..그간 파출부 아주머니 들이면 온갖 핑계로 내보내시고 며늘한테 맡기고 싶어 하셨지요. 

어머니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순간, 전 생각했죠. 
아, 어머니와 나의 거리는 이 정도구나, 어머니 입장에선 여자가 직장일 하는 건 부수적인 것이고 온통 살림, 살림..이것만이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하는구나.. 

그 와중에 어머니 한마디...'난 니가 더 무섭다. 화나면 눈 내리깔고 얼굴 노래져 갖고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니 뒷모습만 봐도 성난 거 다 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참다참다 내가 침묵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어머니껜 저렇게 비쳐졌나 봅니다. 제 화난 모습이 남보기에 무섭단 소리 들은 적 있는데, 지렁이가 너무 심하게 꿈틀한 건가?^^ 

어쨌든 그럭저럭 마무리 짓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무리 말 안 통하는 어머니라도 한번씩 예의를 갖추어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단 것입니다. 내가 속상한 것 다 말하고 어머니 입장도 한번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 속에 '여자의 도리'라는 것으로 굳어진 고정된 상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 갖혀 고집스레 분노하고 힘들어 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이는 거죠. 

애들 키우며 힘들게 다 살아냈다, 너희들은 편한거다! 이 말씀 속엔 같은 여자로서 편해보이는 며느리에 대한 질투심도 담겨 있는 것이구요. 

노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일까요.. 자신이 살아온 세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갖힌 상태? 제 노후에 대해 갑자기 두려워지는 건, 바로 제 미래의 모습이 그럼 어쩌나 싶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려는 노력을 접었습니다. 이젠 비위 맞추려 억지 웃음 웃고, 평화가 깨질까 노심초사 하지 않기로 했죠. 어머니의 저에 대한 미움, 오해, 불신 이런 모든 것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어머니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이 짊어지고 온 세월과 고집, 어쩌면 노화되어 굳어지는 뇌의 구조..이런 것들 때문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내가 살아갈 세월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굳이 그 간격을 좁히려 노력할 것도 없고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란 걸 알았죠. 

대신 이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를 갖추고 기본 도리는 열심히 하되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안 할랍니다. 그 노력이 너무 큰 상처와 기대를 가져오니까 말입니다. 
말씀하시는 것 많이 들어드리되 내 쪽에서 이런 저런 말씀 드리거나 맘에 없는 말 하려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이구요. 

내가 속상하면 무언이든 아님 말로든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하자는 생각입니다. 내가 어머니 무섭게 여기듯 어머니도 날 무섭게 여긴다는 것 알게 되었으니 서로 조심할 부분 알아가는 것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며늘에 대한 고정관념, 기대, 대접받으려는 심리..이런 것들이 노인들 삶속에 뼛속깊이 젖어 있고 그래서 늘 화가 나고 괘씸하고 그런 것일진대, 이런 상황을 탈피해서 인간대 인간으로 며늘을 대하는 시부모님은.....그래서 진정! 이 시대의 진화된 인류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가 노인세대가 됐을 때 잊지 맙시다. 자식들 삶에 거리 유지하는 것,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만 관심가져 주는 것, 절대절대 개입하지 않는 것...이런 것들을 뼛속까지 새겨두었음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자신의 삶을 소모하지 않게, 밝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행복한 노인이 되길 정말 맘속깊이 새겼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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