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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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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mile 댓글 0건 조회 1,530회 작성일 15-03-0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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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Mark Twain 『톰 소여의 모험』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다면
그건 최고의 행운이다.

 

교수 임용 지원양식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첨부해야만 했다. 그냥 전화로도 서무실에 부탁할 수 있었지만, 고3 담임선생님께서 계속 근무하신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 뵙고 인사도 드릴 겸 방문한 것은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젊은 패기에 넘치던 김 선생님은 지긋한 나이의 교감선생님이 되셨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선생님들 대부분은 은퇴하셨단다. 나에겐 영원한 선생님인 고3 담임선생님께서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네가 졸업한 지 벌써 이렇게 오래 되었구나” 하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교감선생님께서 손수 발급해주신 생활기록부를 보니 새삼스러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내가 받아든 생활기록부는 제일 처음 제출했던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입학해서 맨 처음 제출한 생활기록부는 내가 아버지의 글씨체를 흉내 내서 거짓으로 적어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학에 무직, 오빠 셋은 학생이 아니며 군복무중, 희망 직업은 되는 대로….’ 이렇게 말이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 모두 나를 가난해서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아무도 내게 찾아오는 이 없고, 누구도 챙겨주는 이 없는 그런 아이지만 씩씩하고 활발할 뿐 아니라 성격 괜찮은 아이로 인정해 주었다.
 

나의 거짓이 들통 난 것은 고 3때였다. 눈썹이 희한하게 굵고 짙게 위로 뻗친 나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갑자기 학교에 오신 거다. 대학입학시험을 앞 둔 몇 달 전에. 내 딸은 남녀공학 대학에는 결코 안 보내신다는 결의에 차서 말이다. 남녀공학 대학에 가봐야 남자들 뒤치다꺼리나 할 거라며, 내 딸은 여대에 가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때 선생님께 자진해서 생활기록부를 다시 써서 드렸다. 새 생활기록부에는 ‘부모 희망직업: 교수, 학생 희망직업: 교수’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다음 줄에는 ‘담임 의견: 교수가 적합하다고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다.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 입을 열어 ‘너’란 호칭은 안 되겠다고 하셨다.
“그래. 홍 교수는 고등학생일 때도 가르치는 자질이 보였거든…. 좋은 교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 나라가 어수선했던 그 당시, 여성 리더십을 말씀하신 어르신을 뵙고 대학 가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면 교수는 아니어도 꼭 성공할 줄 알았어.”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교수가 되긴 됐습니다. 그러나 ‘좋은’ 교수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시간강사로 시작해서 강단에 선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면 전율을 느낀다. 가르치는 것이 정말 좋다. 젊은 제자들과 뭔가 나눌 것이 있어서 대단히 행복하다. 그러나 …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자신이 없다.
 

마크 트웨인 하우스




『톰 소여의 모험』 소개

 

부모를 잃은 톰은 폴리 이모 댁에서 그늘 없이 자라는 개구쟁이다. 동생 시드, 친구 허클베리 핀, 조 하퍼와 함께 온갖 장난을 치는 톰은 담에 페인트칠을 하는 싫증나는 일을 재미나는 듯이 해 보여서 다른 아이의 사과를 얻어먹기도 하고, 미시시피 강과 숲을 배경으로 모험을 강행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작품이다. 학교를 빼먹는 건 아주 쉬운 일에 속하나 한편으론 전학 온 베키에게 나쁜 아이로 보일까 전전긍긍 고민하는 순진한 구석이 있는 장난꾸러기 톰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허크와 함께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다 살인 사건을 목격한 후 그 일을 해결하고 범인을 체포하기도 하고, 인디안 조의 죽음으로 남겨진 동굴 보물을 찾는 재미난 사건이 연속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함께 모험과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마력을 발휘하는 걸작이며, 어른들 사회가 가진 문명의 허식과 위선에 반발하는 심정이 잘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근대문학의 한 획을 긋는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걷기 전 읽기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어릴 때 땀에 손을 쥐며 읽었던 『왕자와 거지』도 그렇다. 한 번은 꼭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라면 마크 트웨인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이다.




걷기 전 펼쳐보기
 

“과부 아주머니는 나한테 잘해 주고 친절했어.
하지만 그런 방식을 못 견디겠어.
과부 아주머니는 나를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깨워.
그리곤 아침부터 씻기고 시종들은 나에게 온통 빗질해 대.
과부 아주머니는 장작 오두막에서 자지도 못하게 해.
게다가 숨 막히는 그놈의 망할 옷을 입어야 해, 톰.
그 옷들은 전혀 공기가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리고 옷이 다 더럽게 훌륭해서 앉거나 누울 수도 없고,
어디 아무 데서나 뒹굴 수도 없어.
창고 문으로 슬쩍 미끄럼을 타본 지가… 음,
그렇게 해본 지 몇 년은 된 것 같아.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하는데, 가서는 땀만 흘리고, 또 흘리고….
그놈의 고약한 설교가 너무 싫어!
거기서는 파리를 잡을 수도 없고, 담배를 씹을 수도 없고,
내내 구두를 신어야 해.
과부 아주머니는 벨이 울리면 음식을 먹고, 벨이 울리면 자러가고, 벨이 울리면 일어나.
모든 걸 끔찍하게 시간에 맞추는 바람에
내 몸이 견딜 수가 없다 이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 허크.”

“멋지다, 엄청 멋진데? 톰. 정말이야.”
“물론이지. 그리고 그 맹세는 전부 자정에 해야 해. 찾을 수 있는 한 제일 외지고 무시무시한 장소에서 말이야. 귀신 들린 집이 제일 좋을 텐데. 이제 모두 파헤쳐졌으니.”
“음, 어쨌든 자정에 할 수는 있잖아?”
“그래, 그렇고말고. 그리고 관 위에서 맹세하고 피로 서명해야 해.”
“그거 굉장해 보여! 이봐, 해적질보다 백만 배는 더 멋진 걸. 내가 오래돼서 썩을 때까지 과부 아주머니에게 붙어 있을게, 톰. 만약 내가 의적단의 정식 단원이 되어서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과부 아주머니는 나를 진창에서 끌어내 준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될 거야!”
 

『톰 소여의 모험』 중에서



트웨인 만나기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자신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톰과 아주 비슷한 장난꾸러기이자 익살꾼이었다. 모험을 좋아했고, 변호사 개업을 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형과 함께 돈을 벌어야 했던 소년가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힘들다고, 궁핍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보단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형을 따라 취직한 인쇄공 작업을 하면서 글이 활자화될 때의 기쁨을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다. 이 기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조금씩 글을 써보았다. 동시에 어릴 때부터 집 앞에 보이는 미시시피 강과 그 강을 오고가는 많은 선박들을 보며,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키워나갔다.
 

32살에 처음으로 『캘러베러스 마을의 명물 뛰어오르는 개구리The Celebrated Jumping Frog of Calaveras County』라는 단편으로 주의를 끌기 시작했다. 결국 좋아하는 여행과 조금씩 맛보기 시작한 글쓰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가 막힌 직업을 갖게 된 트웨인은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철부지의 해외여행기The Innocents Abroad』를 통해 좋아하는 것을 ‘잘 하는 일’로 성공시켰다. 사무엘 랭본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라는 본명 대신에 뱃사람들이 사용하는 ‘안전 수역’인 ‘두 길’이란 단어 ‘마크 트웨인’을 필명으로 삼았는데, 이것 역시 모험심에 불타던 그에게 아주 적합한 이름이 되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과 같은 소년들의 이야기에 반전, 노예해방, 반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사상을 담아냄으로써 재미와 사회 풍자를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딸 셋만 둔 트웨인은 여성 차별 반대운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 24살의 첫째 딸 수지를 잃고, 29살이 된 막내딸마저 먼저 보낸 트웨인은 점점 말이 없는 우울한 사람이 되었다.
 

제대로 학교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트웨인이 1907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의 글에서 넘쳐나는 위트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75세의 나이에 찾아온 심장마비로 마지막을 맞게 될 때까지 트웨인은 5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헤밍웨이를 비롯한 많은 문필가들이 ‘진정한 미국 문학을 알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두 길’만한 길이의 비석 옆에 잠들어 있으면서 미국문학의 ‘안전 수역’을 지키고 있는 영원한 개구쟁이 톰이다.


 

미주리 주 한니발에 있는 마크 트웨인의 소년 시절 집 앞



트웨인 따라 걷기
 

숙소를 정한 댄버스와 코네티컷의 하트포드는 약 2시간 거리다. 막히는 서울 거리에서 2시간은 괴로운 운전이지만,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2시간은 나름 콧노래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화요일이어서 마음을 놓았던 것도 실수였다. 자동차 사고가 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1시간도 채 못간 지점에서부터 차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I-84에서 나와 하트포드 시의 환영 간판이 보이는 지하도로를 지나 오른쪽 길로 빠지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 기념관에 도착한 것은 마지막 내부 관람이 시작되고도 10분이 지난 오후 4시 40분이었다. 티켓팅을 도와주는 안내원이 무선기로 연락해 보더니 아직 집 내부 투어가 시작되지는 않았으나 뛰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사력을 다해 뛰어가서 기다려주는 그룹과 만나니 나도 모르게 헉헉거리며 숨이 막힌다.
 

트웨인의 집은 붉은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인디언 문양의 뼈대가 훌륭한 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이드는 인도 문양을 좋아했던 트웨인이 특별히 부탁하여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홀이라고 설명한다. 페인트 색과 몰딩 등 모든 것이 그 당시 미국 장식 문화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1층에서는 홀과 거실만 공개해서 보여주는데, 거실에는 스코틀랜드에서부터 구입한 소파가 창을 향해 있었다. 그 위의 샹들리에가 ‘영국스럽게’ 매달려 있어서 금방 보고 온 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한 건물 안에서도 여러 문화와 양식이 섞여 있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마크 트웨인의 가족들은 다문화인multi-culturalist들이었나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마크 트웨인 부부가 주로 사용했던 침실이 나오는데, 트웨인의 세 딸 중 혼자 살아남은 클라라가 1940년에 다시 기증한 침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이 침대에서 마크 트웨인은 눈을 감았다. 복도를 건너편 방은 트웨인이 서재로 사용하려고 꾸몄으나 실제로는 세 딸 수지, 클라라, 진을 위한 홈스쿨링 공간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고 트웨인의 아내와 가정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 얘기에 귀에 번쩍 뜨인 딸이 불쑥 말을 건넨다.
 

“엄마, 엄마도 옛날에 홈스쿨링 하자고 했잖아요?”
“그랬었지….”
“트웨인의 딸들은 세 명이어서 전혀 힘들지 않았겠어요.”
“만약 나 혼자 집에서 엄마 아빠가 가르쳐주는 홈스쿨링을 했다면 많이 싸웠을 텐데, 그치?”
“하하. 그러게. 홈스쿨링 안 하길 잘했지?”
“그건 모르죠. 진짜 해보진 않았으니까….”
 

홈스쿨링 방에서는 트웨인의 세 딸들이 좋아한 「삶과 죽음」이란 그림이 제일 내 맘에 다가왔다. 가이드는 세 딸을 너무나 사랑한 트웨인은 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사주려 노력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1층에서 2층으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매 순간마다 인원을 확인하던 가이드는 마지막 관람 그룹이어서 혹시 집안에 홀로 남겨질까 걱정된다고 설명한다.


3층에는 트웨인이 가장 사랑했고 자주 머물렀던 당구대와 오락실 겸 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당구를 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글을 쓰면서 넓은 당구대 위에 여러 책과 종이들을 늘어놓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글 쓰는 사람마다 글을 쓰는 장소나 버릇이 다 다르구나.
지난 번 워튼이란 아줌마는 서재를 놔두고 침대에서 썼다고 하더니, 이 아저씨는 당구대에서 글을 쓰다니….
그러니까 엄마. 나 보고 제발 책상에서만 공부하라고 그러지 마세요. 나도 내 스타일대로 공부하고 싶다고요.”
‘네. 니 맘대로 하세요.’ 속으로 대꾸해 준다.
 

생각보다 짧았던 내부 관람이 끝나자 한 명도 집 안에 남지 않았는지 몇 번을 확인한 가이드는 관람객들을 집 밖 정원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우리는 늦게 도착해서 마크 트웨인의 일생을 소개하는 「난 이 삶을 맛보았다I have sample this life」라는 영상물도 놓쳤고, 2003년도 새로 단장한 전시관도 못 보게 되었다. 아예 개관하지 않아서 못 본 경우는 있었지만, 늦어서 못 보게 되니 내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책만 늘어간다. 게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치 스토 센터마저 볼 수 없게 되자 화가 나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분노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헤리엇 비쳐 스토 센터의 표지판,



“엄마, 트웨인의 딸 중에 이름이 수지인 아이가 있었죠? 내 이름이랑 똑같아요! 신기해요, 정말!”
“정말 그렇네….”

아직도 밝은 대낮인데 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잔디밭에 앉았다. 집 외형을 쳐다보면서 정말 특이한 색과 문양의 건축물이라고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딸이 이렇게 말한다.
“트웨인은 정말 부자였나 봐요.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 살고. 글만 써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니,
그건 정말 몰랐었는데….”
“수지야, 글만 써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단다. 트웨인은 학교도 땡땡이치고, 엄마 몰래 가출도 했었어. 어릴 때부터 톰 소여처럼 모험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몰라.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 전까지는 그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몰랐대.”
“그럼, 난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엄마도 아직은 잘 모르겠고, 또 벌써부터 뭘 하겠다고 결정하는 게 장땡은 아니거든. 그래서 이렇게 책을 쓴 작가들의 집도 다녀보고 하면서 과연 수지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어떤 일에 흥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경험해 보는 거지.”
“언제까지 그걸 정해야 돼요?”
“정해진 기간은 없어. 그러니 서두를 필요도 또 너무 느긋할 이유도 없지.”
 

오랜만에 잔디밭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념품 가게도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제는 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 뭘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에 빠져 있던 딸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며 결론을 짓는다.
“엄마, 그때까지 날 믿고 기다려줘야 해요.”
이것만으로도 오늘 트웨인은 우리 모녀에게 많은 걸 선사한 고마운 은인이다!
 


해리엇 비처 스토 센터



걷기 후 쓰기
 

당구대 서재에서 트웨인 특유의 익살스런 재치와 유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가 평소 생각했던 반전, 노예해방, 여성운동에 대한 발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도 있었다. 톰의 이미지를 트웨인의 집에서 찾으려던 내 기대가 아마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 좋아하던 일을 끝까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쉽지 않은가 보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서 좋아할지, 혹은 끝까지 잘할 수 있는지 보장 못 하듯이.

 

수지의 글
 


 

‘나는 언제 어떻게 내 재능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곤 한다. 그럴 때면 그냥 내 생각에는 뭐든지 해 봐야 할 것 같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다가는 죽기 전에는커녕 죽고 나서도 재능을 못 발견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든 내가 재미있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를 도전해 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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