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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팁 문화와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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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1,325회 작성일 15-06-06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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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에서 상당한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는 팁(tip)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계산서를 받아들 때면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에게 얼마나 팁을 줘야 할지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흡족한 서비스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한 돈을 떼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아예 주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식당 뿐만이 아니다. 택시를 타거나 발레파킹을 할 때도 팁은 순간순간 나를 고민하게 한다.


처음엔 팁 없는 문화 속에 살다 온 외국인이 느끼는 혼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인들도 팁에 대한 부담감은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는 계산서 금액 대로만 지불하면 된다는 말에 미국인 지인들은 "정말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친구는 미국에서는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15%만 더 주면 된다고 했다. 팁이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일단 15%를 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15%가 어디 적은 돈인가? 아무리 노동력이 비싼 미국이라지만 임금에 팁까지 가져 간다면 서비스 업종 노동자의 수입은 상당할 것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최저 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올리려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꼭 그들에게 팁까지 줘야 하는 것일까? 정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을 때만 주면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됐다. 식당에서 일하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는 보통 노동자들과는 다른 이른바 '팁 노동자(Tipped Workers)'이다. 이들의 최저임금은 지난 1991년 이후 줄곧 시간당 2.13달러에 머물고 있다. '팁 노동자'들은 지금 한창 진행중인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서도 제외돼 있다.

물론 연방 법 상으로는 팁 노동자들이 팁으로 최저 임금 수준을 벌지 못하면 고용주가 그 차액을 보전해주도록 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법일 뿐, 현실은 냉혹하다. 팁 노동자들이 최저 임금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팁으로도 부족한 부분을 고용주가 메워주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팁 노동자의 일자리는 가장 문턱이 낮은 분야여서 고용주는 언제나 '싫으면 나가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미국인들은 팁을 그냥 '의무'로 받아들이며 낸다고 했다. 자신이 팁을 주지 않을 경우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삶이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임금은 고용주가 줘야 하는 것. 결국 고용주가 줘야 하는 임금을 소비자가 떠안는 불합리한 구조 아니냐는 질문에 미국인들도 '그렇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장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들이다. 팁 문화 자체가 고용주의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도입됐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불편한 상황을 깨뜨리는 시도가 미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글린데일에 있는 '브랜드 158'이라는 레스토랑은 아예 팁을 받지 않는 'no tips' 정책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은 고객들에게서 팁을 아예 받지 않는다. 대신 고용주가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성과 생산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으로 시간당 15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이 레스토랑의 소유주는 "팁은 결국 직업의 안정성을 망가뜨린다"면서 "고용주가 노동자의 안정성을 임금으로 보장하면 노동자들은 고객들에게 집중하게 돼 고객 만족도와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곳의 경우 음식값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고객들은 식사 후 '도대체 팁을 얼마를 줘야 할지'를 놓고 불필요한 계산과 갈등을 할 필요 없다는 점에 대만족이라는 반응들이다.

언론들도 팁 없는 식당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봉사 정도에 따라 팁을 계산하는데 미국인들이 피곤해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 한 소비자단체의 조사 결과 미국인들이 5년전에 비해 팁을 주는 액수가 줄어드는 등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야 구태여 팁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고용주가 부담해야 할 임금을 소비자가 대신 짊어져야 하는 불편한 상황은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제 막 시작된 일부 업소의 'no tips' 정책이 미국 서비스 산업 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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