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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보석 까르띠에 & 티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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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3,061회 작성일 12-02-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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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jpg 공교롭게도(?) 이번 봄과 여름, 세기의 보석 브랜드에서 마련한 기념비적인 소장품 전시가 서울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린 것은 어쩌면 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평생에 한 번 몸에 걸쳐보기 힘든 수백 캐럿의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각 브랜드의 예술혼이 깃든 역사적 마스터피스만을 콕 짚어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백 년에 걸쳐 써 내려간 ‘장식 미술’의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
현대 보석 세공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간 티파니와 까르띠에, 이 두 브랜드에서 마련한 전시는 자사 브랜드의 개인적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곧 장식 미술의 역사요, 이를 감상하는 관람객 역시 단순히 금은보화를 보는 흥미를 지나 인류 장식 문화의 의미 있는 한 장을 접하는 감동의 시간을 만나게 된다.

보석, 사치를 극복한 예술의 기원

1873년 설립된 티파니와 정확하게 10년을 터울로 탄생한 까르띠에. 이 두 주얼리 브랜드가 소장품 전시를 기획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의 축적만큼이나 무궁무진한 주얼리 디자인이 있을 것이요, 그 얼마나‘자랑하고 싶은’ 진귀한 보석이 많을까.
정교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보석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그저 황홀하다는 감탄사만 자아낼 수 밖에 없고, 그것만으로도 감성이 풍부해진다. 하지만 이‘엄선된’ 주얼리를 공개함에 있어서 두 브랜드에서 앞세운 공통된 의미는 바로‘예술의 역사’라는 점이다.
당신이 넋을 놓고 감상하던 그 주얼리 속에는 당대 최고의 세공 기술이 집약되어 있으며,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른 예술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보석은 고귀한 신분, 믿음과 사랑 등을 뜻하는 징표로 인류 역사와 함께 성장해왔다. 보석을 뜻하는 영어 ‘Jewel’은 13세기 프랑스 고어(古語)인 ‘Jouel’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단어 또한 라틴어로 노리개, 즉 장신구란 뜻을 지닌 ‘Jocale’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렇듯 오래 전부터 보석의 의미가 존재한 인류 역사에서 이는 왕이나 귀족 등의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로 사용되었고 이는 점점 미적인 감각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소장가치 높은 주얼리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보석 세공사의 명성에 의존하던 주얼리 산업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계기로 부를 축적하게 된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새롭게 전개되었다. 즉, 왕과 귀족 가문에 귀속되어 있던 보석 세공자들을 부르주아 계급이 후원자로 자청하고 나서면서 보다 화려하고 정교하며 예술적 가치가 높은 보석 작품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07-05.jpg 이런 맥락에서 1837년, 미국에서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가 설립한 티파니(Tiffany&Co)는 세계 보석 산업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티파니는 지금 보석으로 유명하기 이전, 뉴욕에서 스테이셔너리 및 팬시 용품을 제작하는 상점으로 출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계 박람회에서 보석 디자인 공예품으로 금메달을 연속으로 획득하면서 주얼리 브랜드, 보석 세공 및 디자인 부분의 최고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보석의 브랜드화 및 산업 공정 시스템이 갖춰진 것도 티파니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부인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햅번을 통해 최고의 보석 브랜드로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 최고 예물 브랜드로서 더 잘 알려진 까르띠에. 까르띠에의 창립은 1847년 프랑스 전설적 보석 세공가 아돌프 피카드(Adolphe Picard)의 견습생이었던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뛬is Cartier, 1819-1904)가 몽토르겨이(Mont orgueil)가 31번지 보석 작업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최고, 최상의 품질을 지닌 보석만을 사용한 가운데 기존 왕실과 귀족의 클래식한 취향과 신흥 부르주아의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킨 화려하고 과감한 디자인의 시도 등이 절묘하게 병행된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의 주얼리는 패션을 완성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고, 유럽 최상류층 인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다. 베스트 드레서로 알려진 영국의 윈저공 부부, 프랑스 천재 영화 감독이자 시인이었던 장 콕토, 모나코의 그레이스 공주, 루마니아 마리 여왕 등이 까르띠에의 전설적인 고객으로, 왕실부터 문화계 인사 및 부르주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객 층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게 된 까르띠에. 유럽을 넘어 세기의 보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서울에서 티파니의 역사를!

3월 28일부터 6월 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티파니 보석전 : The Jewels of TIFFANY 1837-2007’. 지난 2006년 런던 서머셋 하우스 길버트 컬렉션에서 라는 타이틀로 처음 전시를 개최한 후 2007년에는 도쿄 메트로폴리탄 테이엔 미술관에서 보다 많은 작품을 선보인 후 이번 서울에서 마련한 전시가 티파니의 세 번째 전시다. 런던 서머셋 하우스 전시는 서머셋 하우스 개관 이래 가장 많은 8만 여 관람객을 모은 전시로 기록되면서 티파니에 대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고.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티파니 보석전’ 또한 공존의 히트를 기록하며 연일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찾는 이유는 1837년 ‘Simple is the best’라는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뉴욕의 작은 상점에서 시작한 티파니의 170년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287.4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정교하게 커팅한 후, 그 위에 새 한 마리를 얹은 잔 슐럼버제의 작품 ‘Bird on a Rock’과 링컨 대통령이 부인에게 선물한 진주 목걸이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200여 점의 작품이 일반에 공개되었고, 이외에도 다양한 티파니의 작품은 근 현대 장식 미술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행여 티파니 브랜드를 생각할 때 심플한 실버웨어만 떠올랐다면, 이번 전시는 사뭇 색다른 감동을 가져다 줄 것이다. ‘과연 티파니에 저렇게 화려한 주얼리가 있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럽의 왕실 공식 주얼리 브랜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들이 눈과 마음을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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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를 통해 만나는
근대 170년 예술의 진화


‘떠오르는 티파니’‘화려한 장신구’‘아르데코’‘디자이너의 시대’ 등 시대별 10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럭셔리 하우스의 주얼리가 아닌 전통과 예술적 가치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보는 이들에게 더 없는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186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미국 디자인 회사로는 처음으로 무려 8개의 메달을 수상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끈 티파니는 은 세공품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브랜드로 명성을 떨쳤다. 1878년, 티파니는 파리 세계 박람회에 실제에 가까운 텍스쳐와 정교한 형태를 지닌 에나멜 난초 브로치를 출품해 찬사를 얻으며 명실상부한 주얼리 브랜드로 도약했다. 이후 1877년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인 287.4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채굴해 128.54캐럿으로 연마한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제작, 희귀한 원석과 주얼리를 수집한 티파니는 1887년 프랑스 왕실 보석의 상당 부분을 사들임으로써‘다이아몬드의 왕’반열에 올랐다. 확고한 주얼리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진 무엇보다 유럽 주얼리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하우스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국빈에게 선물한 실버 제품, 달러 지폐의 뒷면과 정부 공식 서류 등에 쓰이는 인장, 미국 최고의 스포츠 NFL 슈퍼볼 결승전 트로피 등 미국의 역사적 순간에는 언제나 티파니가 함께한다는 사실은 이제 미국인이라면‘당연한’ 수준이 되고 있을 정도.
티파니 전시회의 제1전시관 ‘떠오르는 티파니’와 제2전시관‘팬시의 왕국’에서는 티파니 초창기 작품과 창립자이자 뛰어난 디자이너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소장품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유제니 황후가 소장한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세팅 브로치,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 취임식을 기념해 부인 메리 토드 링컨에게 선물한 진주 목걸이와 브로치 세트는 티파니 아카이브만의 탁월한 심미안을 보여주는 작품. 루비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로 제작한 성조기 브로치는 작품은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티파니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트렌드를 앞서간 티파니 주얼리 하우스

오늘날 티파니 주얼리는 심플하고 세련된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170년 간의 역사 속 티파니는 오히려 시대를 앞선 트렌드 리더 브랜드라는 점을 이번 전시를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아르누보, 1920년대에는 아르데코의 아름다움을 철처히 반영했는가 하면,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모더니즘을 선도하는 보석을 디자인했다.
187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이 시기의 작품을 소개하는 ‘꿈의주얼리 : 다이아몬드, 진주, 무지갯빛 보석’전시관에서는 컬러 다이아몬드와 유색 스톤을 사용한 브로치, 핑크 빛깔 콩크 조개 진주를 사용한 르네상스 양식의 펜던트 등을 볼 수 있는데, 희귀한 색상의 보석을 사용한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의 당시 주얼리 트렌드를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지팡이와 향수병, 담배 케이스 등 1900년대 패션 리더면 갖추어야 할 멋스러운 기능적 아이템을 소개하는 ‘화려한 장신구’전시관, 티파니의 천재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G. 폴딩 판햄의 퍼브릴 글라스(티파니가 특허 낸 무지갯빛 유리) 향수병이 자리한‘G. 폴딩 판햄과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전시관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작품이 흩뿌려져 있다.
07-07.jpg 그러나 이 모든 티파니의 역사 중 놓치지 말아야 포인트는 바로 제7전시관에 있다는 사실. 창립자의 아들이자 티파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인 디자이너 루이 컴포트 티파니의 초기작 ‘프린지 네크리스’를 비롯해 30여 점의 작품이 한자리에 펼쳐져 있다.
티파니의 마지막 전시관인 ‘디자이너의 시대’에서는 전후 시대 티파니의 실험적인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보석 디자이너에 국한되지 않고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에게 과감히 투자해 다채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한 것. 자연을 주요 모티프로 하고 골드와 유색 보석을 예술적으로 조화시킨 잔 슐럼버제, 용과 거북이 등을 의인화한 동화적인 작품을 제작한 도널드 클래플린, 대담한 컬러와 심플한 디자인을 선보인 팔로마 피카소, 위트 있고 모던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엘사 페레티 그리고 21세기 형이상학적 건축 디자인 장르를 개척한 프랭크 게리의 진보적 모던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이너의 작품은 현대 예술로서의 주얼리의 매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덕수궁에서 고고한 빛을 발하다, Art of Cartier

07-08.jpg “까르띠에 소장품 전시는 세계 유수의 명성 있는 박물관에서 개최한 근대 공예사의 중요한 보고입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 근대 장식 미술의 원류를 알 수 있는 기회로, 도구적 기술로서 공예의 본질, 작품과 사용자 간의 소통 그리고 사용자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산하 덕수궁 미술관 최은주 관장은 4월 22일부터 7월 13일까지 열리는 까르띠에 소장품 전시 의의에 관해 미술사적인 의미를 한층 강조한다.
1989년 파리 프티 팔레, 199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지 미술관, 1997년 런던 대영박물관 , 19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2004년 도쿄 다이고지, 상하이 박물관, 2006년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2007년 모스크바 크렘린 박물관 등에 이어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전시. 이미 선례를 통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까르띠에 소장품 전시는 한결같이 박물관 및 미술관과 함께 기획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이는 까르띠에 소장품 전시가 시사하는 바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까르띠에는 1984년 까르띠에 컬렉션을 설립한 이후 방대한 아카이브를 보존하고 있지만 이를 박물관을 세워 공개하기 보다는 세계 유명 박물관을 통해 그곳의‘해석’에 따라 다채롭게 재조명 되길 원했다. 따라서 각국의 권위 있는 박물관의 전문가를 통해 까르띠에 보석의 가치가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고, 현재 덕수궁미술관 전시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공예의 역사, 공방의 현장을 느껴라

까르띠에와 티파니 전시가 같은 시기에 열린다는 이유로 이 두 전시를 비교한다는 것은 좀 어패가 있을 수 있으나, 다른 점은 제외하고라도 이 두 전시의 관전 포인트는 짚어줄 필요가 있겠다. 티파니는 티파니 주얼리 디자인의 다채로움과 그 진화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서사시라면, 까르띠에는 보석 탄생의 현장, 즉 공방과 공예가의 손길과 치열한 연구의 자취를 따라 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생생한 예술의 역사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07-09.jpg 4개의 주제로 구성된 까르띠에 전시는 각 주제에 맞는 스토리 구성과 그에 맞는 80여 점의 드로잉과 아이디어 스케치북, 그리고 제작 및 주문 기록 등의 문서를 함께 전시하고 공방 발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사진 자료 등을 함께 선보이며 ‘위대한 유산’ 탄생의 과정을 읊고 있다.
제1전시장 ‘스타일의 탄생’에서는 까르띠에의 히스토리를 예술사적 입장에서 기술, 보석의 세공 기법과 소재 등의 변화를 고찰하면서 까르띠에 스타일의 성립을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부르주아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세속적 화려함과 왕실의 고결함을 동시에 충족시킨 클래식 공방 시대의 작품에서부터 벨 에포크 시기에 최초로 시도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작품과 현대적 디자인의 손목 시계 ‘산토스’ 등 아르데코 시기가 오기 전 비롯된 모던 디자인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다.
제2전시실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까르띠에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주제로 연출되어 있다. 그도그럴 것이 1920년대 이미 유럽 상류층의 주얼리 트렌드를 선도한 까르띠에의 모험가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 동방 문화로 심미안을 넓혀 디자인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것이다. 상아, 자개, 비취 등 이국적 재료를 사용하고, 1922년 투탕카멘 왕 무덤 발굴로 시작된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이집트풍 자명종 시계’를 탄생시켰으며, 인도 여행에서 얻은 영감과 인도 마라라자들과의 인연은 ‘인도풍 의식용 목걸이’디자인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의 아시아 문화와 아르데코 시기의 기하학적 문양의 만남은 까르띠에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제3전시실의 테마 ‘현대 여성의 스타일링’은 누구나 궁금해 하고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로, 여성의 사회 참여 활동 역사와 그에 따른 주얼리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대전 이후 독립적, 사회적 여성이 등장했고 까르띠에 역시 고급 주얼리 디자이너인 잔 투생을 통해 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속속 선보였다. 잔 투생 또한 여성으로서 새로운 취향의 과감한 주얼리 디자인을 시도했는데, 이는 윈저 공작부인, 데이지 펠로스, 니나 다이어, 슬로리아 스완슨 등 당시 여성 패션 아이콘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대 성공을 거뒀다. 이후 스페셜 오더 시스템을 갖추며 1955년 장 콕토가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기념으로 디자인한 ‘장 콕토의 집’, 1969년 『르 피가로』가 주문한 달 착륙기념 ‘달 착륙선 모형’, 1997년 제50회 칸느 영화제를 위한 ‘황금가지’ 작품 등이 선보였는데, 이 작품들도 전시를 통해 직접 만날 수 있다.
제4전시실 ‘공방’은 까르띠에 전시의 하일라이트이자 독보적 코너라 할 수 있다. 까르띠에의 명성의 산실인 공방의 모습과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 주문 및 제작 장부와 드로잉, 스케치북, 유리 원관 사진, 모형 등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까르띠에 아카이브의 중요한 요소이자 공예사에 있어서 실제 작품 못지않게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이외에 실물 그대로 옮겨놓은 보석 세공 장인의 작업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서 비로소 까르띠에 보석의 유구한 역사와 명성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주얼리에서 진정한 럭셔리를 느끼다

까르띠에의 전시를 돌아보고 나면 다양한 여운이 감돈다. 전형적인 유러피언 혹은 프랑스다운 화려하고 섬세한 예술 세계, 인도의 이국적인 왕궁의 성대한 분위기, 세기의 패셔니스타 윈저공 부부의 도도한 사교계의 문화… 시공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감흥이랄까. “까르띠에 소장품은 보석의 역사와 끊임 없이 발전하는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억이자 생생한 재현입니다.” 까르띠에 문화재 관리 총괄이사 피에르 레페로는 까르띠에 주얼리의 의미를 이렇게 살아 있는 역사로 강조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열되는 한 부분이 아닌, 과거에도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사회, 문화, 예술에 자극이 되고 진화해가는 생명체로서의 주얼리. 행여 보석과 나의 삶이 더더욱 최고의 주얼리와 개인의 역사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아직 남아 있는 전시 기간에 까르띠에와 티파니, 세계적 보석의 양대 산맥에서 한 부분으로 반짝이는 자신의 한 부분을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수 만개의 분자가 모여 영롱하게 빛나는 그 보석 속에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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