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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자전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어, 저 사람...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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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아풀 댓글 0건 조회 3,752회 작성일 12-05-0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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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우의 산악 자전거 이야기
 
숨이 가빠온다. 다리도 저려온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자전거를 멈췄다. 도저히 숨이 멎지가 않는다. 조금만 더 하면 힐 꼭대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심장이 따라 주지 않는다… 좀 쉬고 다시 시도. 그런데 이 힐 경사에선 자전거에 올라 탈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꼭대기까지 끌고 갈 수 밖에.
내가 삼년 반 전에 산악자전거를 시작할 때의 모습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힐을 이제는 기어도 4단으로 놓고 여유있게 올라간다. 예전엔 그 힐 정상까지 올라가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지금 그 힐은 산 능선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그저 그런 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2007년 말 참가한 50마일 라이딩에서. 산 넘고 개울 건너고 돌아오는데 7시간쯤 걸렸다. 이 대회에 참가하여 50마일을 무사히 마치면서 필자도 라이더란 자신감을 얻었다.
산악자전거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저 TV에서나 보던 스턴트 맨들이나 하느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자전거 타려면 길에서 타지 산에서 왜 스턴트맨 흉내를 내? 그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걸 즐긴다. 극지의 사나이 김용규가 내가 산악자전거 시작했다는 소릴 듣더니 한 말이 이것이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지금 네 나이가 몇인 데 산악자전거냐…” 주위 아는 사람마다,  마눌님도 똑 같은 소리를 했다. 그랬던 용규가 지금은 산악자전거 타자고 전화한다. 나를 따라 산악자전거 시작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스턴트맨만 산악자전거 하는게 아니다. 예전엔 나같은 사람도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내가 산악자전거 마니아가 된 건 한국에서 몰아 닥친 자전거 열풍의 영향이 크다. 우연히 한겨레에 연재되는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충격이 컸다. 세상에, 아메리카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다니...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리고 내가 부끄러웠다. 사실 십년 전에 미국에 발 디뎠을 때 제일 부러웠던 게 길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언젠가 해 봐야지 생각했었는 데도 그 때까지 난 집 밖 트레일 한 번 나가본 적이 없었다. 애에게 자전거 사주고, ‘차 조심하고 돌아 다녀라’ 라고 했던 것이 전부였다.
며칠 후, 하루 휴가를 내고 집에 있는 애 자전거를 끌고 집 주위에 있는 트레일 탐색에 나섰다. 한 30여분 돌아 다녔을까, 포장된 길과 나란히 나있던 트레일은 어느 조그만 계곡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집 가까이에 이런 데가 있다는 데 놀랐다. 여태까지 모르고 지내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고… 계곡을 따라 쉬엄 쉬엄 페달질하며 올라갔다. 한 20여분쯤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올라 갔을까, 갈림길이 나왔다. 한 쪽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고 있었고 다른 쪽은 급한 경사를 이루며 높은 힐로 이어지고 있는 그런 갈림길이었다. 주위에는 완만한 경사따라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마침 갈림길에 놓여 있는 벤치를 보고는 거기에 앉아 주위 사람들을 바라 보며 한참 땀을 식혔다.
그 때 좀 특이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자전거 한대가 느리게 천천히 높은 힐 쪽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생각은 그저 “힐 밑까지 갔다가 돌아 올려는 모양이구나. 좀 더 빨리 가지 뭘 저렇게 천천히 가누, 빨랑 댕겨오지”…. 그런데 잠시 한눈을 팔다 다시 쳐다봤더니, 아니 아까 그 자전거가 그 힐을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자전거 탄 사람은 자전거에서 한번 내리지도 않고 힐을 넘어 유유히 사라졌다. 내 눈을 의심했다. 뭔가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았다. 아니 아까 저기로 자전거 탄 사람이 간 게 맞어? 이런 힐이 자전거로 올라 가는 게 가능이나 하단 말이냐!... 그 길을 따라 나도 시도해 봤다. 페달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기어를 최대한 낮추고 갖은 용을 다 써 보았지만 앞바퀴가 들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잘못하다가 뒤로 넘어져 어떻게 될 것 같다.
그 힐 너머로 사라진 사람이 내가 처음 본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의 모습이다..
   
필자를 산악자전거로 이끌었던 Peter’s Canyon힐. 이 힐을 올라가는 라이더를 보고 받았던 산악자전거에 대한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필자는 이 힐을 올라 가는 데 6개월이 걸렸는데 필자가 산악자전거로 이끌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올라가는 걸 보고 다시 충격를 받았다.
그 후, 지도를 뒤져 가며 근처 흥미 있어 보이는 트레일로 애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높은 능선을 따라 경치를 감상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올라 가는 것만 힘들었지 막상 올라가니 능선에서는 별 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능선에서 자전거 타는 것은 밑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것 같지도 않고… 또 능선에서 자전거가 미끄러져 갈 때의 이 맛, 이거야 말로 내가 찾던 바로 그 것 아닌가…
생각 끝에 본격적으로 산악자전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내 자전거가 있어야 겠기에 가게로 가서500불 주고 바로 구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까운 산 능선에 올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능선 따라 요모 조모로 달리며 터프가이 흉내를 내 본다. 어느 순간 속도가 너무 빨리 붙는 것같아 갑자기 두려워 졌다. 속도를 줄이려고 하는 어느 쪽이 뒷브레이크인지 헷갈리는 게 아닌가? 아! 왼쪽이었지! 왼쪽 브레이크를 잡았다. 바로 땅에 꼴아 박았다. 아뿔사 그게 뒷 브레이크가 아니라 앞 브레이크였구나… 앞 뒤 브레이크가 한국하고 반대인 걸 헷갈려 한국에서 하던 본능으로 왼쪽 브레이크를 잡았던 것이다. 땅에 꼴아 박은 내 꼴도 말이 아니지만 오늘 산 내 새 자전거 꼴도 말이 아니다. 체인 벗겨진 걸 다시 끼오고 보니 기어 쉬프트에 흙이 잔뜩 끼어 기어가 말을 안 듣는다. 겨우 집으로 와서 몸를 씻고 자전거 고치러 샀던 가게로 가니 내게 자전거 팔았던 점원이 그 자전거 보고 놀라며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이렇게 나의 산악자전거는 꼴아 박으면서 시작되었다. 맨 땅에 헤딩이란 말이 딱 어울리게 꼴아 박았다, 그것도 자전거 산 첫날에. 그때 그 자전거는 그후 1년 반 동안 1000마일이나 나와 같이 하다가 지금은 거라지에서 휴식 중이다. 내가 신참자를 산악자전거로 인도할 때마다 출동한다.
나는 내가 오렌지 카운티에 산다는 걸 대단한 행운으로 여긴다. 오렌지 카운티는 그야 말로 산악자전거의 천국이다. 좋은 산악자전거 트레일이 지천에 깔려 있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초보면 초보, 중급이면 중급, 상급이면 상급 수준에서 즐길 수 있는 코스가 이 곳 어바인에서는 10여분 거리에 널려 있다. 집 근처에서 즐기려면 근처 Regional Park이나 State Park으로, 산을 즐기고 싶으면 Santa Ana Mountain으로 가면 된다.
산악자전거 테크닉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데도 있다. 기초 기술을 익히고 싶으면 Irvine Nature Conservancy에서 하는 트레이닝에 참가하면 된다. 초보자 코스는 물론 중급자 코스까지 있다. 나는 초급자 코스 서너번, 중급자 코스 서너번 참가하였고, 또 그 후 알게 된 근처 유료 고급 트레이닝에도 참가했었다. 기초 기술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 다닐 때마다 숱하게 꼴아 박던 내가 이런 트레이닝를 거치면서 좀 더 산악자전거를 알고 안전하게 타게 되었슴은 물론이다.
   
지난 겨울에는 몇몇과 같이 San Jacinto Mountain의 종단 코스를 다녀왔다. 집 근처 힐에서 타다 보면 이런 코스를 탈 수 있는 체력이 생겨난다. 자전거가 없으면 하루에 횡단하기 힘든 코스다. 총길이는 30마일 정도.
몸이 놀랄 만큼 튼튼해지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다. 이것 때문에 나는 지인들에게 산악자전거를 권한다.난 본래 무지무지한 약골이다. 그런 내가 요새처럼 내 몸이 건강하다는 걸 느낀 적이 없다. 무릎에도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운동을 좀 해야 하겠기에 10여년 전에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무릎이 점점 안 좋아 져 그만 둬야 했다. 그런데  산악자전거 시작하고 나서 다시 테니스를 치고 있다. 산악자전거가 내 무릎을 고쳐줬다.
삼 년 반 전 그 때 그 힐을 올라가던 그 사람 같지 않던 사람을 지금 내가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힐에서 시작된 나의  산악자전거 열병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니 앞으로 영영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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