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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수도 없는 당신, ‘마흔’을 앓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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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mile 댓글 0건 조회 686회 작성일 14-10-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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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생. 교복자율화 세대라 교복을 입은 기억이 없다. 중·고등학생 때 아시안게임(1986년)과 서울올림픽(1988년)이 열렸다. 그 사이, 6월항쟁을 지났다. 스무 살 무렵 대학 진학률은 33.2%. 군대에서 동갑내기 탤런트 장동건과 심은하가 나오는 드라마 < 마지막 승부 > 를 봤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건 20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올해로 마흔. 이성우씨(가명)는 문득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나이 뒷자리가 9에서 0으로 바뀌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런데 마흔은 좀 달랐다. 어느 날 받아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이름이 뇌리에 박혔다. 만 40세를 대상으로 하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갑자기 인생의 전환기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마흔 살의 아픔은 고통이고 절망

서른 즈음, 마흔을 떠올릴 땐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새로 시작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었다. 있다면 아내와 아이, 그리고 퇴직한 부모였다. 직장에서는 어느새 중간 관리자가 되어 위아래 눈치 볼 일이 늘었고 업무량은 넘쳤다.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며 서른을 지날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마흔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별로 감정 기복이 없는 그는 요즘의 자신이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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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마흔앓이'는 그만의 고민이 아니다. 요즘 가장 마흔앓이가 심한 분야는 출판계다. '마흔 살'을 주제로 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 제목에 마흔이 들어간 책만 10여 권이다. 이 책을 보면 40대에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인간관계도 돌아봐야 하고,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하는 건 물론, 다시 한번 공부에 미쳐야 하고, 오륜서와 논어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바쁜 와중에 아플 수도 없다( < 마흔 살 인간관계를 돌아봐야 할 시간 > < 40대, 다시 한번 공부에 미쳐라 > < 행복한 부자 아빠 마흔 > < 나이 마흔, 오륜서에서 길을 찾다 > <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 등).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자기계발서 영역 중에는 '중년의 자기계발' 분야가 따로 있다. '마흔 살' 책은 주로 여기에 분류된다. 크게 두 가지 테마다. 위로와 마흔 이후의 삶.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두루 고단한 마흔의 삶에 주는 위로가 첫 번째이고, 마흔 이후의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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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 제목에 마흔이 들어간 책만 10여 권이 출판되었다.



40대의 삶을 위로하는 <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 는 지난 1월 출간된 이후 3만 부 이상이 팔렸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 가 20대를 위로한다면 이 책은 40대를 위로한다. 저자인 이의수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은 "20대는 오히려 아프면서 성장하는 시기다. 그 아픔은 성장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40~50대의 아픔은 고통이고 절망이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지금의 중년을 새로운 시대에 직면한 세대로 분류했다.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사회가 변해왔는데 우리의 중년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그 한복판에 섰다는 것. "요즘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첫 번째 퇴직 바람이 분다. 이후의 삶에 대해선 미처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다. 예전만큼 세상과 가족은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이해하거나 존경하지 않는다."

< 마흔 살의 심리학 > 을 쓴 이경수씨는 마흔 살에 직장을 옮긴 뒤 적응하는 과정에서 심하게 마흔앓이를 했다. 고민을 털어놓아도 주변에선 팔자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바쁘게 지내거나 몸을 움직여보라는 조언은 숱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하철을 보며 투신 유혹도 느꼈다. 청명한 하늘조차 짜증이 날 정도로 쉽게 분노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주변 사람들도 겪는 일이지만 그걸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런 이들에게 공감해주고 싶었다.

마흔을 기점으로 인생의 전환에 도전한 이들의 경험담도 '마흔 살' 책에 자주 등장한다. 대기업에서 IT 개발 업무를 하던 김영숙씨(43)가 그렇다. 그는 서른아홉 살이던 2008년 12월, 15년간의 직장 생활을 끝냈다. 마흔 살이 된 1월1일부터 새 삶이 시작됐다. 40세부터는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나쁜 건 아니지만 30대 중반을 넘어가니 어떤 걸 시도해도 똑같이 느껴졌다. 관리의 비중이 커지는 조직 생활이 힘겨웠다. 마침 인수합병한 회사가 희망퇴직 안내문을 게시했다. 그는 퇴직서를 냈다.

약사였던 정경화씨(45) 역시 마흔 살에 일을 그만두었다. 이 시기에 방향 전환을 못하면 이후 인생은 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40이라는 숫자가 마지노선 같았다. 가족에겐 미안했지만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두 사람 다 대학원을 다니며 문학과 철학을 병행한 상담 이론을 공부 중이다. 원하는 게 뭔지 찾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에 만족한다. 이들은 < 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 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마흔은 예전의 서른이다"

"마흔은 예전의 서른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평균수명이 80세로 늘었으니 사회적 나이의 감수성도 그만큼 늦춰진 것. 인생 후반기를 다루는 '실버 출판물'의 붐은 그에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영향도 있다. 그는 "우리 출판계가 3~4년 격차로 일본의 유행을 좇는데 2008년쯤 아라포 세대가 유행하면서 마흔 살 관련 책이 많이 나왔다. 그 트렌드가 이제야 반영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라포'는 어라운드포티(around forty)의 줄임말로 마흔 전후의 미혼 여성을 뜻한다. 2008년 일본 방송 TBS에서 일도 결혼도 포기하지 않는 골드미스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아라포 세대는 일본에서 '결혼과 일이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난 최초의 세대'로, 구매력이 높은 계층이다. 무언가 선택을 앞둔 전환기의 시기로 마흔을 앞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세대의 구매력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박현 한국경제신문 출판사 편집실장은 "무료 콘텐츠에 익숙한 20~30대와 달리 40대는 아직 종이에 익숙하고 책을 사보려는 세대다"라며 출판계의 마흔 살 열풍을 설명했다. <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 의 경우 여성 독자가 70%를 차지한다.

안도현 시인은 < 마흔 살 > 에서 "때때로 울컥, 가슴에 치미는 것 때문에/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던지던 시절은 갔다/ 시절은 갔다,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로 마흔 살이다"라고 썼다. 청춘의 마음이 떠난 시기로 마흔을 그린 셈. 그런가 하면 이문재 시인의 < 마흔 살 > 에는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흔 살은 살아온 날만큼 더 가야 하는 시기다. 자꾸만 올 '옛날'을 앞둔 이들의 고민이 깊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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