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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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594회 작성일 10-10-08 23:58본문
이곳을 떠나 그곳에 가고 싶다
봄이 오고 꽃이 피는가 싶더니만, 어느 새 기온은 훌쩍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꿀맛(?)같은 휴가철이다. 요즘 같은 고유가에 어려운 경제상황이라면 언감생심 어디 여행을 꿈꾸기야 하겠냐만, 역설적으로 그런 상황일수록 여행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간다. 상사의 잔소리에, 얇은 월급봉투에, 도시의 소음에, 익숙한 회색 빛 콘크리트를 뒤로 한 채 훌훌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은 강해진다. 막히는 월요일 출근길에서, 붉어진 눈을 깜박거리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수요일 사무실에서, 삼겹살과 담배냄새가 묘하게 섞여 있는 금요일 지하철에서, 불쑥 불쑥 여행의 욕구는 신열(身熱)처럼 찾아온다. 그런 신열에는 여행이 진정한 처방이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법. 신열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위하여 여기 비상약을 하나 소개한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여행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것들
알렝 드 보통은 인기작가다. 그의 책들은 전 세계 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책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인간관계와 우리 주위의 사물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하는 관찰과 사유 때문인데, 이런 특징은 이 <여행의 기술> 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서나 기행문이 아니고, 여행 가이드북은 더욱 아니다. 책의 내용은 알렝 드 보통의 여행에 대한 단상 및 에세이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 글의 내용이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거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여행에 대해 숨겨져 있는 사실’ 들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 적은 것처럼 우리는 ‘고달픈’ 현실을 털고 여행지로 떠나기를 꿈꾼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우리가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여행 광고에서 밝게 빛나던 태양이나 푸른 하늘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덤덤해지고 감정은 희석되어 버린다. 이 경우 우리가 갈망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기대, 그 자체였던 것이다. 결국 보통의 말을 빌리자면 “그냥 집에 눌러않아 브리티시 항공 비행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 이 훨씬 나은 여행이 될 수 있다.
또 보통은 평생 자신이 태어난 프랑스를 혐오하며 이집트를 꿈꾼 작가 플로베르의 예를 들며 우리가 흔히 여행과 결부시켜 말하는 ‘이국적인(exotic)’ 것은 실체가 아닌 감정이며 우리의 고향(집이나 고국)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은 그러한 이국적인 것(감정)을 찾아나서는, 또는 찾아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부모와 고국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여행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영국인들이 한 때 무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가 각광받게 된 이유가 詩人 워즈워드(Wordsworth)로 상징되는 낭만주의의 유행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가 휴게소나 공항에 매료되는 이유 등 우리가 여행에 대해 모르고 있던 사실들이 책 전반에 씌어져 있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
그렇다고 해서 이 책 <여행의 기술> 이 여행에 대한 냉소적이고 현학적인 에세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이 책은 여행의 효용과 가치를 찬양하고 있다.
우선 여행이 주는 사고(思考)의 효용에 대해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일상생활 속의 우리는 (일상에 파묻혀)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 계속 존속되기 싶다. 존재가치도 모르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같은 일상이 일 단위, 주 단위로 반복된다. 여행은 이러한 일상을 떠나 좀 더 ‘본질적인 나’ 를 만나게 도와준다. 그런 깨달음은 기차를 타고 가는 창 밖을 볼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중략)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 (p.46)
비슷한 맥락에서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이나 시나이 사막과 같은 거대한 대자연을 찾는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또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불가해한 인생사에서 상처받고 분노를 느낄 때 우리를 다독여주는 힘이다. 다시 보통의 글을 보자.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 여기서 숭고한 장소란 사막이나 대협곡 같은 대자연을 가리킨다.
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1)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중략)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 (p. 216; 229)
이렇게 여행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과 도착한 장소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주며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존재를 깨닫고 인정하게 만들어준다.
여행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렇다면 우리가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뭘까? 이 책에서 알렝 드 보통은 호기심과 데생, 그리고 글쓰기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호기심은 여행지에서 여행자가 가지는 사물이나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의 근원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현대의 여행에서는 여행지에서 ‘보고 느껴야 할 것’ 들을 가이드북에서 친절하게 이미 ‘명령’을 내려버려 여행자의 자유로운 탐구를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사진기라는 현대 기술의 총아는 사물을 꼼꼼히 관찰하기 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도구로 왕왕 작용한다. (여행지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덜컥 사진을 한 장 찍어버리고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기 전까지 그것에 대한 관심을 내팽겨 쳐버리곤 한다.)
그래서 보통은 여기서 이것을 보완 해 줄 수 있는 도구를 제시하는 데 그것이 데생이다. 데생은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사진 찍기와 다르게 꼼꼼히 사물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잡아내야하기 때문에 여행자가 호기심을 개발하고 사유하는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이 책에서 ‘말그림(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의미)’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글쓰기는 데생과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의 자신의 느낌과 관찰한 것들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좀 더 여행지를 깊게 음미할 수 있게 도와준다.
꼭 세상 밖으로의 여행일 필요는 없다
<여행의 기술> 의 마지막 장은 ‘습관’ 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일상은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것’ 이라는 생각에 습관화되어 있고, 우리가 사는 ‘이곳’ 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습관의 정도가 심했던 플로베르 같은 이는 그래서 “어디로라도 ! 어디로라도 !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을 외치면서 끊임없이 타지로의 여행을 갈구했다. 그러나 알렝 드 보통은 “우주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맞추어져 있다(우주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보인다는 뜻)” 면서 주위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훑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동네 골목길의 일상이나 자신의 침실에서도 여행은 가능하다며 이 책을 마친다.
하긴 그렇다. 여행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면, 꼭 세상 밖으로의 여행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우선 이 책 <여행의 기술>을 읽으며 나에게로 가는 여행을 떠나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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