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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슬럼독 밀리어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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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1,318회 작성일 09-08-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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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시작하자마자 자말이 성공한 이유를 물은 영화는 끝에 그 정답을 'D(운명)'라고 답한다. 그러나 실제 정답은 'C(원래 천재다)'에 가까워 보인다. 자말은 비상한 기억력과 어릴 때 헤어진 라띠까를 끝까지 찾아갈 정도로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자말의 평범하지 않음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회사의 간부는 자말에게 최근의 연예정보를 브리핑하게 하고는 왜 '차심부름꾼' 청년도 아는 걸 모르냐고 직원들에게 핀잔을 준다.
사실 굴곡많은 삶에서 퀴즈의 답을 떠올려 정답을 맞힌다는 건 빈민가에 살아남은 한 청년의 삶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영화의 장치이다. 그런 설정 덕분에 자말의 빈민가 삶이 더 효과적으로 드러났을 뿐, 그 설정이 영화 내용이나 전개 상에 어떤 포인트로 작용한 건 없다. 오히려 자말이 퀴즈의 정답과 자신의 인생을 대응하는 장면은 자말의 비상한 기억력과 집중력을 부각시켜 자말의 정답이 우연한 행운만은 아니라 천재라는 개연성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천재라고 퀴즈쇼의 승자가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천재도 모르는 문제가 분명 있다. 자말은 천만루피 단계에서 처음으로 답을 모르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제 퀴즈의 정답을 두고 게임이 벌어진다. 퀴즈쇼의 사회자인 프렘은 화장실에서 자말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며 세면대 거울 위에 정답을 써두고 간다. 프렘이 써놓은 답은 'B'였다. 그러나 자말은 남은 선택지 B와 D 둘 중에 프렘이 써준 B가 아닌 D를 답으로 선택한다. 정답은 D였다. 자말이 프렘과의 게임에서 이긴 것이다. 자말은 천재이면서 능숙하 게이머였다.

사회자인 프렘은 왜 자말에게 오답을 알려준 걸까? 자말의 성공은 그의 쇼의 성공이었다. 차심부름꾼이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 퀴즈쇼의 제왕이 되는 것만큼 극적인 드라마도 없다. 다시 없는 이 극적인 드라마를 프렘은 왜 무산시키려했을까? 오답을 알려준 것만 아니다. 프렘은 화가 잔뜩 난 채 자말을 사기죄로 경찰에 고발까지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여기가 인도라는 것이다. 인도는 계급제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이다. 법적으로는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카스트제도가 인도인들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인이 출신학교로 상대의 지위와 능력을 가늠하는 것처럼 계급제도가 여전한 인도는 계급이 지위와 능력의 이유가 된다. 프렘은 자말에게서 이 계급을 찾지 못했다. 다른 이유도 찾지 못했다. 자말의 성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프렘은 화가 난 것이다. 프렘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성공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학벌도 변변하지 않고도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을 떠올리면 프렘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말은 왜 프렘이 알려준 답을 받지 않았을까? 퀴즈쇼의 사회자가 프렘의 성공을 바라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어떻게 하게 된 걸까? 자말은 빈민가 출신이다. 그리고 회교도다. 자말의 어머니는 힌두교도의 폭행으로 살해당했다. 그날 자말은 어머니가 맞아 죽는 걸 봤고 힌두교도들이 자신의 또래 아이를 불태워 죽이는 것도 봤다. 자말은 그 폭력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 경찰에게로 갔다. 그러나 경찰은 폭력을 막는 게 아니라 힌두교에 쫒겨온 회교도들을 내쫓았다.
그들은 빈민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더구나 회교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죽어도 속임을 당해도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당해도 싸기 때문이다.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귀족의 딸이 상민으로 전락하면 동정의 대상이지만 빈민의 죽음은 당연하게 보여진다. 신뢰와 이성은 상위 계급 사이에서만 있을 뿐이다. 사무실에서 차를 나르는 아이는 빈민가의 아이처럼 관계의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자말은 사회자인 프렘 앞에 선 자신이 경찰 앞에서 불타죽는 아이와 같은 신세라는 걸 알았다. 그들이 자신을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자말은 알았던 것이다. 프렘 같은 종자의 인간들은 절대 자말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따라서 정답은 'B'가 아닌 'D'인 것이다.

좀 더 어린 시절 자말은 자신이 가이드하던 미국인 부부가 차를 완전히 분해 도난 당하는 바람에 같이 동행한 인도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그때 자말은 맞으면서 미국인 부부에게 이렇게 외친다. "이게 바로 진짜 인도다." 서구관광객들은 인도의 역사와 전통에 찬사를 보내지만 그건 현실을 살아가는 자말같은 인도인에겐 모두 허구다. 인도의 현실은 바로 자말이다. 서구인들이 찬사를 보내는 그 역사와 전통의 결과는 바로 그들 앞에서 매맞는 자말인 것이다. 이 추악한 현실 앞에서 성자의 나라, 종교의 나라, 간디의 나라 라는 칭송은 모두 위선이다. 어쩌면 간디의 종교성이 담긴 비폭력이라는 위선이 자말이 두들겨 맞는 장면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꼬깃한 지폐위에 그려진 간디의 모습도 위선적인 느낌이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빈민가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영화는 빈민가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들을 통해 인도빈민들의 처참한 삶을 보여준다. 오염된 물과 쓰레기rk 나뒹굴고 사람들이 사는 공간 한 가운데로 거대한 송유관이 지나간다.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에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길 뛰는 아이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장면의 마지막에 공중에서 단계적으로 멀어져 가며 찍은 빈민가의 수만개의 지붕들은 하일라이트다.

영화 슬럼독 밀리오네어에는 인도에 대한 고발이 있다. 퀴즈의 정답에 대응하여 보여지는 빈민가 출신 회교도 자말의 18년 인생은 계급국가 인도에 대한 보고서다. 자말은 인도의 빈민가 회교도로서 고발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영화를 보고나면 자말의 독특한 얘기에대한 감동과 함께 인도의 추악한 현실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이 영화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고 무게를 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뻔한 얘기의 감동에 인도에 대한 우리안에 있는 위선을 까발려 영화에 무게감을 더 한 것이 슬럼독 밀리오네어의 성공 이유다.

영화가 자말의 성공을 운명이라 한 것은 마지막 문제 때문일 것이다. 천만루피 단계의 문제에서 프렘과의 게임에서 이긴 자말은 이제 마지막 이천만루피가 걸린 문제에 도전한다. 자말은 마지막 문제의 답을 알지 못한다. 이 문제는 자말의 천재성이나 게임의 기술로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영화가 자말의 성공을 운명이라고 답한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 운명의 문제에서 자말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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