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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더니즘 루트(Ruta del Moderni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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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2,819회 작성일 14-03-0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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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수현(포르투 대학 건축학 석사 과정)

종종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박물관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도시라고 해도 박물관으로 상상해보자면 그 소장품 목록조차도 가늠하기 쉽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물리적 크기에서만이 아니라 도시에 중첩되어 있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 보면 도시의 한 장소를 경험했어도 같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시를 읽고 그리는 지도는 제각각으로 다르기 마련이다.
도시를 박물관으로 비유한 김에, 파리의 루브르(Louvre)와 같은 미술관에서도 관람객의 성향과 일정을 고려하여 작품을 안배한 관람 루트를 마련해 놓고 있는 걸 보면, 도시에서는 어떤 안내 루트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많은 도시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 예술, 건축에 대한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중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 루트(Ruta del Modernisme)를 살펴보기로 하자.

모더니즘 루트는 ‘바르셀로나 도시조경과 삶의 질에 대한 시립학회(Institut Municipal del Paisatge Urbà i la Qualitat de Vida)’에서 주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Barcelona, posa’t guapa(Barcelona, Make Yourself Pretty)”라는 타이틀로 도시조경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루트 명예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를 통해 모더니즘 루트를 지원하고 있다.
이 루트는 바르셀로나 내 120여 곳의 근대문화 사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 지어진 박물관, 온실, 공장과 발전소를 비롯한 산업기반 시설부터 호텔, 식당, 시장, 약국, 주거까지 포괄하여 근대기의 바르셀로나를 보여줄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한 것이다. 도시 몇 곳에 마련된 모더니즘 센터에서 제반 서비스를 안내하며 지도, 가이드북, 할인권 등이 포함된 킷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때 발생하는 수익은 근대문화유산의 유지관리와 보호기금으로 쓰이고 있다. 지도에 더해 길에서는 모더니즘 루트 표식이 있는 붉은 색 바닥돌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방인들도 어렵지 않게 가우디(Antoni Gaudí i Cornet)의 바르셀로나는 물론이고, 도메네크 이 몬타네(Lluís Domènech i Montaner) 혹은 푸치 이 까다팔크 (Josep Puig i Cadafalch)의 바르셀로나를 만날 수 있다.




|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Exposición Universal de Barcelona)
1888년 바르셀로나는 만국박람회(Exposición Universal de Barcelona)를 개최했다. 6개월여간 열린 이 박람회는 27개국의 참여와 함께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유치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시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하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바르셀로나는 도시 곳곳을 정비하고 재단장하는 사업을 벌였다. 개선문(Arc de Triomf, 건축가 Josep Vilaseca i Casanovas)을 세워 도시의 새로운 정문을 만들고, 도시 수방을 담당하던 요새를 정리하여 시우타델라 공원(Parc de la Ciutadella, 건축가 Josep Fontserè i Mestre)을 설계하고, 이 공원에 동물원과 자연사박물관과 같은 공공문화프로그램을 삽입했다. 박물관과 전시장, 호텔과 식당들이 여럿 지어졌고, 오늘날까지도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명소로 꼽을 수 있는 람블라 거리(La Rambla)도 이때 정비되어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렇게 만국박람회를 기점으로 정비된 장소는 115곳에 이른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L’Eixample’(까딸루냐 어로 ‘확장’을 뜻하는데, 도시설계가인 세르다(Ildefons Cerdà)의 안에 따라, 1959년부터 바르셀로나가 구도심의 성벽을 허물고, 그 외곽으로 격자 도로를 내고 모서리가 깎인 블록을 배치하여 지금과 같은 도시 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을 일컫는다.) 직후에 아직 채 정비하지 못한 도시의 빈 공간들을 다듬고 채워 바르셀로나 활성화의 기점을 마련한 것이다.


| 아르누보(Art Nouveau)에서 까딸루냐 르네상스(Renaixença)까지
아르누보(Art Nouveau) 혹은 유겐트슈틸(Jugendstil)은 산업혁명 이후 기계문명과 실증주의 문화에 대한 반발로 장식 미술과 공예에 주목한 예술사조로 당대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개괄적인 비교를 해 보자면, 바르셀로나의 아르누보는 빈 분리파(Wiener Sezession)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브뤼셀(Brussel)의 아르누보 양식에서는 많은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몇몇 주거는 브뤼셀에서 바르셀로나로 바로 가져온 것으로 보일만큼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반(反)아카데미예술의 조류 속에서 아르누보의 자연주의적 특성과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은 까딸루냐 지역문화에 대한 주목으로 연결되었고, 이렇게 아르누보로 시작된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은 까딸루냐 민속음악, 전통공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만나 까딸루냐 르네상스(Renaixença)를 본격적으로 확대시킨다.
모더니즘 루트에서 추천하고 있는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돌과 벽돌, 철제가 만들어 내는 지극히 명쾌한 구조는 근대의 건축적 이성주의(rationalism)를 따르고 있으며 유기적인 선을 만들어 내는 건축 장식(ornament)과 조각들에는 스페인의 역사 속에서 보이는 아랍문화의 영향부터 까탈루냐 민중의 공예적 미감까지 담겨져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까딸루냐 음악궁전(PALAU DE LA MÚSICA CATALANA)


모더니즘 루트에서 정수만 추려내더라도 30여 곳에 이르지만 그 중에도 까딸루냐 음악궁전은 바르셀로나 아르누보의 백미로 꼽힌다. 유럽음악당협회(ECHO, the European Concert Hall Organization)의 멤버로, 지난 백년 간 까딸루냐 출신의 첼리스트 파우 까잘스(Pau Casals)부터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과 같은 세계 유수의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쳐 온 음악당이다.
1908년 초연이 열린 이 음악궁전 이야기도 역시 1888년 만국박람회에서 시작할 수 있다. 만국박람회 기간 동안 바르셀로나에서는 전세계 음악가들이 함께하는 음악공연이 연이어 열렸다. 이러한 일련의 공연들은 까탈루냐 음악가들의 활동에 큰 활기를 불어넣었고 그 3년 뒤 루이스 밀레(Lluís Millet)와 아마데우 비베스(Amadeu Vives)는 까딸루냐 합창음악협회(L’Orfeó Català)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고전음악과 까딸루냐 민속음악을 함께 노래하는 합창단 활동은 또한 까딸루냐 르네상스를 주도한 핵심적인 문화운동 중 하나였다.
1904년 까딸루냐 합창음악협회는 시민기금을 통해 전용 음악당 건립을 추진하면서 부지로 성프란시스코수도원(l’antic convent de Sant Francesc)을 매입하고,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Lluís Domènech i Montaner)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도메네크 이 몬타네는 고딕 성당의 빛을 재현하고 싶어 했는데, 자연 채광으로 빛을 끌어들여 스테인드 글라스의 천창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주 공연장을 설계한다. 건축가의 의지대로 아름다운 빛은 2200석 규모의 커다란 공연장을 가득 채움으로써, 연극무대가 있는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음악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1982년부터 1989년 사이에 음악궁전은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이른바 ‘21세기를 위한 음악궁전’을 위한 재건축 프로젝트로, 이 시기에 들어 기존 수도원 옆에 붙어있던 작은 교회가 헐리면서 음악궁전이 그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덕이다. 재건축을 담당한 건축가 오스카 투스케츠(Oscar Tusquets)는 도메네크 이 몬타네의 원안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면서 입지 조건상 숨어있었던 음악궁전을 대중들에게 좀더 노출시켜 도시적 접근성이 커지도록 만들었다. 이 재건축을 통해 ‘작은 궁전’이라 이름 붙여진 600석의 부공연장과 그밖에 기능적으로 필요한 몇몇 공간들이 더해졌고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음악궁전은 이 때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까딸루냐 음악궁전은1997년에 들어서 도메네크 이 몬타네의 다른 작업인 성바울병원(Hospital Sant Pau, 이 병원 또한 바르셀로나 모더니즘 루트에 들어 있다.)과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920년대 철거 대상에 오르기까지 한 건축적 논쟁을 무사히 넘기고, 오늘날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으로서만이 아니라 음악전문도서관과 합창음악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모더니즘 루트 센터는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을 통해서 이 루트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역사로 모더니즘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서는 1920년대부터 50년대 사이에 근대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반근대주의가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근대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에는 여전히 너무 가깝고, 100년 이상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 판단은 다음 세대에게 넘겨야 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모더니즘이나 전통문화의 정치성 등의 문제들도 바르셀로나라는 이 거대한 텍스트의 한 부분으로 함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더니즘 루트의 역할 중에 하나는 그때까지 이 모습을 가능한 그대로 지속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 바르셀로나 모더니즘 루트 : http://www.rutadelmodernisme.com
※ 까딸루냐 음악궁전 : http://www.palaumusic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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