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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로잔 오페라(OPERA DE LAUSANNE)의 새로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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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1,909회 작성일 14-03-01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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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피아니스트, 오케스트라 지휘자)

로잔 오페라의 2011/12년 프로그램 주제는 ‘디바’이다. 벨리니의 ‘노르마’, 비발디의 ‘파르나체’, 오펜바흐의 ‘게롤슈타인 백작부인’, 헨델의 ‘알치나’, 베르디의 ‘팔스타프’ 등을 프로그램으로 했는데, 이 오페라 작품들 속의 ‘디바’들, 그러니까 ‘노르마’의 ‘오로베소’, 헨델의 ‘알치나’, ‘팔스타프’의 ‘알리스 포드’ 등을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여성 성악가들을 통해서 재조명해보자는 취지인 셈이다.
나는 2월 26일 파리국제음악프레스협회(PMI) 회원들과 함께 로잔행 떼제베를 파리 리용역에서 탔다. 프랑스의 디종을 거쳐, 스위스 로잔까지는 대략 4시간. 떼제베 내에서 표 검사를 하는 직원들에게서 인종차별을 느끼는 것은 현재 유럽 전역에 불고 있는 중국에 대한 반감정의 표현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이들은 인사를 하며 표를 건네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파리와 로잔을 왕복하는 사이에 두 번 같은 일을 겪고 나니, 불쾌함이 상당했다.

헨델의 오페라 ‘알치나’는 바로크 오페라 작품 가운데서는 큰 각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파리 오페라를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 오페라에서 ‘알치나’가 올려지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 4번의 공연 가운데 마지막 날 공연을 보았다. 우선 알치나 역을 맡은 러시아 태생의 소프라노 올가 페레티아트코의 성악적 역량과 연기력은 ‘디바’로서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무대 연출과 안무를 맡은 마르코 산티는 무용수로서 활동을 하면서 오페라 무대 연출을 하고 있다. 그는 ‘알치나’의 마법과 사랑의 세계인 섬을 나무로 만들어진 3층의 공간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이 공간의 내부와 외부에서는 산티의 안무로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유혹과 사랑의 춤을 추었다. 두 명의 여성 무용수는 서로 진한 키스를 하면서, 서로의 가슴과 몸을 쓰다듬고, 한 여성 무용수는 두 명의 남성 무용수와 역시 사랑의 장면을 연출한다. 오늘날 유럽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과 움직임은 지속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그에 대한 단적인 예로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움직임이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생겨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좌파의 프랑수와 올랑드 역시 동성애 결혼 허용을 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물론 이는 늘어가는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들 유럽인들에게 동성애 자체가 더 이상 ‘음지의 사랑’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자신의 섬에 들어오는 남성들을 돌이나 동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사 알치나가 사랑에 빠지는 루지에로 역을 대부분의 경우에는 드라마틱한 메조 소프라노가 노래해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관객들은 이성간의 감정으로서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다. 루지에로는 남성이지만, 메조 소프라노가 루지에로 역을 노래하게 되면, 남성과 여성이 아닌 한 여성과 남성으로 가장한 여성의 사랑과 증오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 이번 로잔 오페라에서는 루마니아 태생의 카운터 테너인 플로랭 세자르 와투가 노래해서, 알치나와 루지에로는 여성과 남성이 되었지만, 카운트 테너의 특성상 루지에로의 역은 여성적인 성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또한 그 한계이다. 무대연출자인 산티는 이 동성애의 측면을 무대 연출과 안무를 통해서 표현했다. 그리고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한 여자와 두 남자 혹은 여러 명의 남자, 그리고 서로 짝을 교환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의 모습도 그의 안무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유럽 사회의 극단적인 성의 자유를 오페라를 통해서 반영하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방가르드적이거나, 현대적이거나, 전위적이거나 간에, 상상력이나 시심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닌 즉물적인 방식으로 전해질 때에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사회적 현실을 인식하게 하거나, 환기시키는 방식에도 최소한의 시적인, 은유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때에 오히려 더 호소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클라브생에서 바소 콩티누오를 연주하면서 지휘를 한 오타비오 단토네는 로시니 등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바로크 오페라에 관해서는 이미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다만 로잔 오페라의 상주 오케스트라이기도 한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알치나’ 연주는 수준은 매우 높지만, 극적인 표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 로잔 오페라 총감독 에릭 비지에(사진 : Marc Vanappelghem)오페라는 프로그램을 짜는 순간에서부터 무대에 올리기까지 그 에너지와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을 많이 필요로 하는 예술장르이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와 같은 수도를 제외한 프랑스나 유럽의 다른 도시들의 오페라에 대한 지역 재정에 대해서는 항상 찬반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리용 오페라는 매우 예외적인 발표를 한 바 있다. 초기에는 오페라 제작과 상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리용 오페라에 대한 애호가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페라 운영을 통한 흑자는 물론이고, 리용 오페라가 지역 경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기여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연구 발표를 해서, 유럽의 도시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바 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한 도시의 정체성은 문화적인 정체성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로잔 오페라의 공연 극장인 살메트로폴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문을 닫는다. 2005년부터 로잔 오페라의 극장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릭 비지에(Eric Vigié)의 오페라와 성악가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니스 오페라에서 40여 편의 오페라의 무대연출을 한 현장파이며, 파리 오페라 코미크의 ‘바로크의 봄’ 페스티벌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어느 곳이든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나 문화경영의 최고 위치에 예술가보다는 행정가나 경영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상황에서 그의 경험과 열정은 빛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곧 새롭게 탄생할 로잔 오페라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기에 무용가이자 천재적인 안무가인 모리스 베자르가 정착한 로잔의 문화적인 정체성은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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