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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책동네 만들기, 바이후 두스 리브루스(Bairro dos Liv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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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2,472회 작성일 14-03-01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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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수현(포르투대학 석사 과정)

4월 23일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다. 독서와 출판사업을 장려하고 지적소유권을 보장하고자 유네스코가 이 날을 제정한 것은 1995년의 일이지만, 4월 23일이 세계 문학사에서 갖고 있는 상징성으로 인하여 이미 오랜 시간 ‘책의 날’로 불려왔다.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스페인),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국), 잉카 가르실라소(El Inca Garcilaso de la Vega, 페루) 세 문인이 같은 해 같은 날(1616년 4월 23일) 세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그 후대에도 여러 저명한 문인들이 이 날짜에 태어나거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또한 책과 장미꽃을 선물로 주고받는 스페인 까탈루냐 지방의 성조지(Sant Jordi) 축일이기도한데, 상대적으로 가까운 문화권인 포르투갈에서도 이 날을 크게 기념하면서 4월 내내 굵직한 출판문화 관련 행사들이 이어지곤 한다. 올해도 여러 도서관과 뮤지엄에서는 다각적으로 책읽기에 접근하는 행사를 마련했고, 주말에는 시내의 광장과 공원에서 시립도서관 주관으로 책교환장터, ‘Flea da Troca’(Flea of change)가 열렸다. 본래도 주말 벼룩시장에는 헌책과 음반들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읽은 책을 가져와 바로 다른 책으로 교환할 수 있었던 이번 행사는 큰 호응을 이끌었다.

| 책동네 만들기
▲ ‘책동네’ 포스터이와는 또 다른 문화행사로 지난 14일, 포르투 구도심에서는 ‘바이후 두스 리브루스’(Bairro dos Livros)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가 열렸다. 바이후(Bairro)는 구역이라는 뜻으로 특색 있는 지역 커뮤니티 그 자체를 일컫기도 한다. ‘바이후 두스 리브루스’는 포르투 도심의 30여 서점들이 함께 모여 ‘책을 통해 연결되는 지역적이며 감성적인 동네’를 새롭게 인식해 보고자 기획한 행사이다. 기획에 맞춰 이날의 행사는 책과 도시(urban) 탐험에 대한 이야기로 개막을 알렸고, 토요일 늦은 오후까지 특별 개점을 한 서점들에는 문인들의 순방이 이어졌다. ‘책동네’ 는 매달 새로운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로 ‘읽기는 위험하다’를 4월의 모토로 내걸었다. 한때 위험하다고 여겨졌던 책들을 재조명해보는 기획이 서점마다 마련되었고 특별 할인 행사도 이어졌다.
‘책동네’ 선언에는 서점 외에도 포르투 구도심의 유서 깊은 여러 장소들이 함께 해서, 같은 ‘바이후’에 위치한 빵집 히베이라는 특별히 알파벳 모양의 과자를 내놓았고, 카페 프로그레소와 음악도서관에서는 시낭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한 서점연합, 출판유통회사와 그래픽인쇄회사뿐만 아니라 출판인쇄문화의 독특한 영역에 있는 ‘동전의 집’(Imprensa Nacional Casa da Moeda. 주화를 주조하는 곳, 즉 포르투갈 국립조폐국을 일컫는다.)과 음악도서관(Biblioteca Musical do Porto)도 참여하며 새로운 출판문화 커뮤니티를 만들고자하는 의지를 보였다.

▲ 동전의 집(국립조폐국) 서점(왼쪽) / ▲ 포르투 음악 도서관(오른쪽)

| ‘렐루와 그 형제’ 서점(Livraria Lello & Irmão)
이 ‘책동네’ 선언에는 ‘렐루와 그 형제’ 서점(Livraria Lello & Irmão)도 함께 하고 있다. 포르투 도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클레리고 탑(Torre dos Clérigos)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렐루서점은 1869년에 문을 연 ‘에르네스토 샤르드롱의 국제서점’(Livraria Internacional de Ernesto Chardron)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렐루서점과 샤르드롱서점이라는 이름이 함께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당시에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카밀루(Camilo Castelo Branco, 소설/희곡 작가)를 비롯한 포르투갈 현대문학을 주도한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으로 출판하여 대중에게 선보이면서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을 넘어서 문학계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단기간에 부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샤르드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서 서점도 매각되는데 다른 출판사를 잠시 거쳐서 1894년에 주제 핀토 소우자 렐루(José Pinto de Sousa Lello)의 소유가 된다. 도서 수입과 유통사업을 하며 다른 서점 운영에 참여하고 있던 주제 렐루는 샤르드롱서점을 사들이면서 형제인 안토니오 렐루와 함께 출판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 ‘렐루와 그 형제’ 서점소유주가 바뀌면서도 샤르드롱서점이라는 이름을 한동안 유지하고 있다가 1906년에 이르러 사비에르 에스테베스(Francisco Xavier Esteves)가 설계한 신고딕 절충 양식의 건물로 옮기면서 렐루서점으로 새롭게 개점을 한다. 지금의 모습은 1995년 건축가 바스코 소아레스(Vasco Morais Soares)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완성되었다. 벽에는 북부 출신 소설가인 에사 드 케이로스(Eça de Queirós)를 비롯한 포르투갈 작가들의 얼굴이 새겨진 기둥들이 있고 그 사이로 목재 책장이 세심하게 짜여 있다. 서점의 모토인 ‘Decus in Lahore’(Beauty in the labor)가 그려진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실내에 다양한 톤의 빛을 더하는데, 이 빛으로 인해1층과 2층은 열려 있는데도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서점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규모 상 크다고 보기 어려운 공간임에도 이 아르누보 곡선의 계단이 만들어 내는 공간감은 매우 드라마틱해서 방문객들이 절로 감탄하게끔 만든다.
렐루서점은 라이너 모리츠(Rainer Moritz)의 <유럽의 명문서점>(한국어판 박병화 역)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고, 유수의 여행안내 책자는 물론이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등을 통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서점으로 소개되어 왔다. 근 몇 년 사이에는 처음으로 실내 사진촬영을 금지할 만큼 방문객이 늘어났는데 여기에는 해리포터(Harry Potter)의 작가인 조안 롤링(Joanne Rowling)이 영어교사로 포르투에서 머물면서 해리포터를 구상하는 데 영감을 주었던 서점으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이 크게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을 거둔 작가이니만큼 렐루서점과 함께 언급할만도 한데, 포르투갈쪽의 기사나 소개글에서는 좀처럼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렐루서점과 인연을 맺었던 많은 문인 중의 하나일 뿐 새롭게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렐루서점의 입장에서는 ‘해리포터’를 속닥거리는 관광객들에 밀려 오래된 단골들을 포함하여 실질적인 서점 고객이 머물 수 없게 된 것을 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도 이번 ‘책동네’ 참여는, 도시에서 서점은 때때로 관광객을 위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지역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이곳 서점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특색 중 하나는 어떤 책은 어떤 서점에서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단과대학 근방의 전공도서 서점이라든가 어린이 그림책이나 종교서적, 간행물(잡지)처럼 한 분야로 특성화된 서점들의 경우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갖추어 놓는 일반 책방도 그렇다. 어떤 주제의 책을 찾으면 자신들의 서점에 있는 책을 보여주면서 다른 책이 더 있을만한 책방을 알려주기도 한다. 전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배타적 유통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근거리에 위치한 여러 서점이 오랜 시간 공존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렇게 상권의 충돌이 작았던 이유가 크다. 여느 도시에서나 헌책방들은 같은 구역에 모여 있는 걸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헌책은 개별적인 수집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다보니 훨씬 덜 균질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각각의 서점이 구비하고 있는 책들이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이다 보니 서점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어서 한꺼번에 여러 곳을 돌아 볼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기존 시장과의 관계가 조금 더 복잡한 면은 있으나, 최근 셀프 퍼블리싱(self-publishing) 혹은 독립 출판과 같은 화두가 부상하면서 한국에도 아예 독립 출판물을 다루는 (오프라인) 서점이 생기고 있는데, 이 역시 배타적 유통의 또 다른 모습인 셈이다.
포르투의 작은 서점들이 이러한 특성 속에서 비교적 오래 유지되어 왔지만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도시적 역사와 전통 속에서 문화 커뮤니티를 무형의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는 인식이 아무리 확산되더라도 여전히 할인 혜택이라든가 신간 소식과 같은 정보의 접근성, 편이성과 같은 실리적인 요소가 국제적인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과 인터넷 서점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동네’ 선언의 배경에는 이런 문제의식들이 깔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책동네 가는 날’을 통해 여러 기획과 할인 행사들을 약속하고 있으니 이 새로운 문화 커뮤니티가 앞으로 어떻게 자리 잡을지 조심스럽게 그 행보를 주시해볼 수 있겠다.


책동네(Bairro dos Livros) http://bairrodoslivros.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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