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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황무지에 피는 꽃 [뉴질랜드/이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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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438회 작성일 10-04-2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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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이인순] 황무지에 피는 꽃 

황무지에서 농사짓느라 보통 고생이 아니겠군요.황무지에 피는 꽃
한국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 봤다는 어느 분이 우리 농장을 둘러보러 왔다가 무심코 던지고 간 말이었다. 황무지, 황무지.
나는 부지런히 사전을 찾아보았다.
황무지:손을 대지 않고 버려져 거칠어진 땅.
그랬다. 우리가 온갖 고생을 하며 일궈 가고 있는 우리 농장은 땅을 볼 줄 아는 이의 눈에는 분명한 황무지였다. 보들보들 윤기 흐르는 기름진 땅이 아니라 거칠고 척박한 황무지. 그런 황무지에서 우리는 자연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성공의 길로 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 뉴질랜드 이 산골로 농사를 지으러 들어왔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좋은 땅에 대한 구별은커녕 농사짓는 방법조차 거의 백지에 가까운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조그만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가 쓴잔을 톡톡히 마신 뒤 이민 생활에 지쳐 있던 우리는 무작정 땅이 넓은 농장을 찾아 이 곳으로 왔다. 적어도 식물을 기르며 사는 삶이라면 오클랜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보다 훨씬 나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겨울이면 농장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았다 해도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던 우리에게는 물 속에 우리 모두가 함께 잠기는 한이 있더라도 황무지 같은 농장이라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 코쟁이 주인이 오이를 기르다 실패해서 말라비틀어진 오이 덩쿨을 비닐 하우스에 고스란히 남겨 두고 떠난 그 황량한 농장. 현지인조차 실패해서 헐값에 팔아 버리고 떠난 농장으로 영어도 서툴고 서툰 영어보다 더 서툰 농사 실력으로 뛰어들었다는 건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가진 것도 없이 뛰어든 우리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건 당연히 예고된 고난이었다.

뉴질랜드의 많은 땅이 그렇듯이 우리 농장 역시 한 삽만 밑으로 파들어가도 삽날에 떡덩어리 같은 찰흙이 턱턱 묻어 났다. 그런 땅을 갈아서 우리는 무를 심고 배추를 심었다. 하도 땅이 거칠어서 씨를 넣을 때면 과연 이런 곳에서도 싹이 틀까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도 싹은 어김없이 고개를 내밀고 나와 주었고 뿌리를 뻗어 나갔다. 농사 경험이 하도 없으니까 무씨를 넣을 때면 자로 길이를 재서 심을 정도였고 배추를 심을 때도 늘 팔려가는 당나귀 꼴이었다. 둔덕을 만들어 줘야 배추가 잘 자란다 하면 식구들이 들러붙어 삽으로 일일이 둔덕을 만들어 주었고 없어도 된다 하면 다시 허물었다. 그렇게 간신히 기른 배추를 첫해에는 달팽이가 몽땅 뜯어 먹어서 변변한 수입도 올리지 못했다. 여름배추는 뿌리병에 골탕을 먹고, 그러면서도 가을배추가 생각 밖으로 잘 되어 조금씩 농장이 자리를 잡아 갔다. 그러다 겨울배추를 들판 가득 심어 놓고 걱정반 근심반 대책 없이 겨울을 맞았다. 가슴 졸이며 맞았던 그 해 겨울. 마침 아들애가 전국 대학생 기술 경연 대회에서 북섬 대표로 뽑혀 시상식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면서 아예 양동이로 붓듯이 퍼부었다. 밤늦게 시상식을 끝내고 시골길을 달려오는 데도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시골길 여기저기 엉망으로 물이 넘쳐나더니만 우리 농장으로 가는 길은 아예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서 지나다니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저만치 집만 덩그러니 보이고 배추밭은 아예 거대한 호수로 변해 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찰흙 구덩이 같은 밭에서 비를 맞고 발이 푹푹 빠지면서 간신히 심어 놓았던 배추들이 물 속에 몽땅 잠겨 버린 것이다. 그 때의 허탈감과 실망스러움이라니. 나도 모르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시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입 없이 겨울을 날 걱정에 앞이 아득해졌다.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밭이 조금 높아 물에 잠기지 않았던 부분의 배추들은 봄기운이 돌면서 보기 좋게 꽃대를 밀고 올라왔다. 나중에는 온 배추밭이 노란 꽃밭으로 변해 제주도 유채밭을 연상시켰다. 한 마디로 절망이었다. 그 많은 배추들을 갈아 엎으면서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는지. 가슴이 터져나가도 실패가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행여나 하고 밭에 두었던 꽃대 난 배추들 속에 벌레들이 수없이 번식을 하며 겨울을 나고 있을 줄이야. 쓰린 가슴을 달래며 꽃대 난 배추들을 다 갈아 엎고 제철에 맞는 씨앗을 심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잘 자라서 한시름 놓고 2주일 정도 출하를 할 즈음 느닷없이 배추잎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배추가 왜 이럴까 하는 사이에 하루가 다르게 구멍이 많아져 갔다. 경험이 없으니 무슨 조치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쩔쩔 매는 사이에 가게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허겁지겁 가게로 달려나가는데 눈앞이 아득해 왔다. 또다시 갈아 엎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가게로 나가 배추속을 들추자 벌레들이 우글우글 떨어져 나왔다. 배추를 사러 왔던 손님들이 기겁을 해서 가 버리거나 사 간 배추도 반품되어 온단다. 불과 며칠 사이에 온 밭의 배추들이 폭탄을 맞은 듯 구멍이 뚫려 끝내는 모기망처럼 변해 갔다. 속은 멀쩡한데 겉잎 서너 장이 벌레투성이였다. 나중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안으로 무섭게 번져 나갔다. 범인은 청벌레라는 아주 작은 나방의 새끼들이었다. 꽃대 난 배추들을 들추면 뭔가 작은 것들이 많이 날아다니기에 날벌레인가 했던 것이 우리에게 치명타를 입힌 청벌레의 나방일 줄이야. 벌레 먹은 배추들은 봄비 몇 번에 기분 나쁘게 속까지 썩어들어 갔다.

어디 그뿐이랴. 뒤늦게 봄배추라고 심어 놓은 다른 배추밭의 배추들이 잘 자라는가 싶더니 이번엔 속이 다 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리도 무성하게 자라던 배추들이 하나같이 우리들 속처럼 누렇게 타면서 썩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배추농사가 제일 어렵다더니 정말 배추는 어려운 작물인 모양이었다. 때마침 봄가뭄이 심해 물이 부족해 그런가 보다 하고 밤을 새우면서 배추밭에 물을 댔지만 허사였다. 물 주는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호수에 파이프를 달아 한 포기 한 포기 허리가 휘게 물을 주었건만 아무런 소용도 없이 배추는 끝내 다 썩어 버렸다.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원인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곳에서 밝혀졌다. 봄인데 멋모르고 가을씨를 심었던 탓이었다. 전 해에 심었던 가을배추가 하도 실하게 잘 자라기에 봄에도 그걸 심으면 되려나 하고 덜커덕 심었더니만 점점 뜨거워지는 기온을 못이겨 결국은 속이 다 타 버리고 만 것이었다. 경험이 얼마나 무서운 선생님인지 농사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 사이에 청구서가 쌓이고 빚이 늘어 갔다. 나중에는 웬만한 곳에서는 물건을 대주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펌프 가게에다 집에 물대는 펌프가 멈춰 고쳐 달랬더니 외상이 밀렸다고 갚아야만 고치러 온단다. 키위(뉴질랜드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우리 같으면 안면 봐서 조금 참아 줄 일도 칼로 무 자르듯 알잘없이 거절하는 것이다. 기름 대주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년간 농자재를 대주던 회사조차도 조금 돈이 밀렸다 싶으니까 물건을 싣고 왔다가 도로 싣고 가 버렸다. 이들은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원하는 대로 수표를 써 주지 않는 한 거름흙 한 자루도 내려 놓지 않고 가 버린다. 깨끗한 사회인 것은 좋지만 참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이 나라 이 사회. 내 돈 없으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이민 생활인가 보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농사. 한국에서라면 모든 게 수월하겠지만 외국에서 한국 야채 기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허겁지겁 한국에 씨앗을 주문해서 오는데 한참, 싹을 틔우고 싹이 자라 밭에 내는데 또 얼마. 그 뒤로도 실패없이 두 달을 꼬박 기다려야 하는 배추농사. 배추가 되어 나올 때까지 어려운 생활을 견뎌내며 기다리는 초조함이라니. 그 사이 시름을 달래가며 참외도 심고 고추도 심고 농장을 바쁘게 움직였다. 이렇게 몇 번씩 실패를 거듭해 가며 우리는 성장해 갔고 이제는 제법 농사에 이력이 붙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다행히도 여름부터는 배추가 잘 나와서 아주 맛좋은 배추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사이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행여 물난리를 또 겪을까 마음 졸이며 겨울을 나고 있다.

여전히 겨울밭은 질어서 툭하면 트럭이 밭에 빠지고 때로는 트랙터마저 밭에 빠져 헤어나올 길이 없지만 우리는 씩씩하게 헤쳐 나가고 있다. 때로는 질척이는 땅에 우리들 발마저 빠져 장화는 진흙 속에 들어 있고 발만 겨우 빼내곤 한다. 몇 번 뻘 같은 밭에 빠지다 보면 나중에는 장화 무게가 한짐이라 발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겨울이라 해도 얼음이 얼지 않는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곳이라 사시사철 풀들은 또 얼마나 거칠게 자라서 밭을 덮어 가는지. 그래도 나는 제초제를 치지 않고 열심히 풀을 뽑고 거름을 낸다. 하도 억센 풀을 많이 뽑아 내서 밤에는 팔이 저리고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질 않는다. 그런데도 일은 즐겁고 남편과 내가 이렇게나마 건강한 먹거리를 가꿔 낸다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 싱싱하고 건강한 야채를 길러 내기 위해 부지런히 황무지를 개간해 가는 우리. 제 아무리 거친 찰흙 땅 황무지라도 이렇게 가꾸노라면 언젠가는 아가의 엉덩이처럼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흙이 되지 않을까.

지금도 비만 오면 남편과 나는 땅을 못 갈게 될까 봐 가슴이 철렁한다. 그래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도전하는 한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우리는 몇 년간의 농사를 통해 단단히 깨달았다. 비록 남들처럼 좋은 땅 좋은 조건은 아니라 해도 우리는 낯선 나라 황무지에 인간 의지의 꽃을 피워 냈다. 이 세상에는 한 팔로도 못하는 일 없이 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보다 더한 장애를 안고서도 남보다 더 뛰어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게 빗대면 물이 조금 잠기는 땅이라고 농사 못 지을 것 없을 테고 찰흙 땅이라고 농사 못 지으란 법 없을 것이다. 하면 된다. 부지런히 퇴비를 만들어 붓고 제초제 대신 풀을 뽑아 주고 영치기영차 밭을 가꾸고 있다. 식물이나 동물들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데 내 어찌 고놈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하지 않으랴. 주인이 아끼고 돌보지 않으면 나그네들도 내 밭의 식물들을 소홀히 다룰 것이기에 하루 온종일 억세풀도 뽑고 엉겅퀴도 뽑는다. 때로는 뽑아 내다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공중으로 날 때도 있으나 이 세상 그 어떤 스포츠가 날 이토록 행복하게 해 주랴 싶어 해가 뜨기 무섭게 들판으로 나간다. 첫새벽에 들판에 서면 나는 늘 감사 기도를 드린다. 나에게 비도 주시고 거센 바람도 주시고 그 뒤에 아름다운 무지개도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정말로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또한 겸손한 농부가 되게 해 주신 것도..
웰링턴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애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모녀는 오랜만에, 정말 아주 오랜만에 오클랜드로 나가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딸애가 필요한 화장품도 몇 개 사 주고 추위를 막아 줄 코트도 보러 다녔다. 아마도 이민 온 뒤 처음 가져보는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뒤늦게 건축공학을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딸애와 나는 팔짱을 끼고 함께 걸으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어느 땅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인간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다고. 자신이 의지를 버리고 스스로 무릎을 꿇지 않는한 성공의 길은 늘 열려 있는 거라고. 하겠다는 인간의 의지는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거라고. 심지어는 자연조차도. 딸애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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