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치울음소리 (이성수) > 이민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민문학


 

수필 [수필] 여치울음소리 (이성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051회 작성일 10-06-06 14:49

본문

삼베에 대한 글을 쓰던 중 50여 년 전의 농촌 풍경 가운데 여치 우는소리가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여치울음소리를 녹음으로 듣게되었다. 그 소리가 너무도 반가워 소년시절로 돌아가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봄에 심은 삼이 여름 삼복 때가 되면 키가 2m 가 넘고 어른 새끼손가락 만한 굵기로 쭉쭉 잘 자라 제일 더운 때 땀을 흘리며 삼을 베어 지름 25~30cm의 단(다발)으로 머리와 꼬리 그리고 중간의 세 부분으로 묶는다. 이것이 삼단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누나나 어머니의 치렁치렁한 머리 채를 삼단 같은 머리라고 비유했다. 예를 들어 ‘시집살이’의 한 대목을 보면 “말못해서 3년이오/ 귀먹어서 3년이오/  눈이 어두워 3년이오/ 석3년을  살고 나니/ 백옥 같은 요 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고/ 삼단 같은 요 내 머리 비사리  춤이 다 되었네.....,”로 삼단 같은 머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삼을 베는 것은 어른들의 일이고 아이 들은 일손을 돕는 것보다는 여치를 잡느라 정신이 없다. 삼밭 속에서 멋지게 우는 여치소리에 반한 아이들은 삼나무 키가 워낙 커서 잡지 못하다가 삼을 베는 날 여치의 아지트가 점점 좁아지면 삼밭 속에 숨어 있는 여치에게 살금살금 다가가서 잡는다. 땅개비, 사마귀(버마재비), 기름챙이와 같은 곤충과 함께 여치는 제일 나중까지 삼나무 밭에 남아 있다가 최후의 삼나무 마저 베어지면 모두 후닥닥 날아가는데 그 전에 여치 잡기를 나서는 아이들은 일하는데 거추장스럽다는 어른들의 핀잔도 아랑곳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여치를 쫓는다. 여치는 새처럼 높이 그리고 멀리 나르지 못하고 한 4~5m쯤 날라 가다가 땅 바닥에 쉬기 때문에 곧 아이들에게 붙잡히곤 했다.

  연두색의 예쁜 여치는  길이가 약 33mm쯤 되는 작은 곤충이지만  귀뚜라미나 매미보다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아이들에게는 대 인기이다.  사실 아이들은 ‘파브르’처럼 여치를 자세히 관찰해 보려고 잡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새집에서 새를 기르듯 여치도 밀집으로 만든 집에 잡아넣고 마루 위에 매달아 놓으면 한 여름밤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여치를 좋아한다.

  여치는 아침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울지만 더운 낮에  듣는 것 보다 더위가 물러간 초저녁에 듣는 게 한결 더  운치가 있어 좋다. 여치는 우는소리도 특이하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단조롭게 반복해서 짧게 우는 귀뚜라미소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여치 특유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는 마치 음악가의 연주처럼 들리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법 오랫동안 운다. 언젠가 울음소리를 재보니 16초 동안이나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

  여치를 베짱이라고도 부르는데 노래를 다 듣고 나면 노래가운데 벼 짜는 소리가 짤각 짤각하고 들리는 것 같은  여운(餘韻)을 남긴다. 그리고 여치가 울 때 주의해서 들어보면 그 소리는 등 면(面)의 날개가 겹치는 곳에 있는 발음기(發音器)를 두 날개로 마치 바이올린처럼 비벼서 내는 마찰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매미나 여치나 귀뚜라미는 다  수놈이 울고 암놈은 모두 벙어리이다. 그것은 수놈이 짝짓기 하려고 암놈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렁차고 요란한 매미가 남성적이라면 여치 우는소리는 가냘프고 조용하며 잔잔해서 여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동네 처녀들이 저녁을 먹고 동구밖에  나왔다가 베짱이를 잡아 산채로 먹으면 베를 잘 짠다는 속설(俗說)을 믿고 여치 우는 풀밭에서 베짱이를 잡아 다리와  날개를 자르고 산채로 열무김치에 쌓아서 꿀꺽하고 단번에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처녀가 숨을 발딱발딱 쉬며 꼬물꼬물 움직이는 산 베짱이를 눈 딱 감고 꿀꺽 삼키는 모습은 무엇보다도 베를 잘 짜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겠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는 충격적이었다. 선녀처럼 보였던 누나들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당시 처녀들은 시집가서 베를  잘 짜는 게 큰 소원이었다. 그들에게는 갓 시집온 새색시가 능수 능란하게 베를 잘 짜는 것을 볼 때 가장 부러워했으니 말이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 가고 황혼이 곱게 서쪽 하늘을 물들었는가 하면 금방 어둠이 평화스러운 농촌 마을을 소리 없이 삼켜 버린다. 낮의 불볕 더위에 흘린 땀을 등목으로 식혀내고 식구들과 밀대 방석에 앉으면 갈아입은 베 적삼과  잠방이 속으로 시원한 산들바람이 스며들고 사방에서 이름 모를 풀벌레를 비롯하여 여치 귀뚜라미 개구리 맹꽁이 구렁이 부엉이 소쩍새 우는소리가  한데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옛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신없고 쫓기듯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세븐(Seven)이나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의 노래 소리가 익숙할 뿐 시골 대청 마루에 매달아 놓은 여치 집에서 누가 듣거나 말거나 밤새 우는 여치의 울음소리는 아무런 흥미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70 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삼밭에서 같이 살던 암놈을 그리워하며 애처롭게 우는 여치의 울음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낼 수가 없다.

  오늘은 모처럼 인터넷을 통해 듣게된 여치의 울음소리가 빛 바랜 고향처럼 정겹고 한 곡의 세레나데를 듣는 때와 같이 가슴속에 긴 여운(餘韻)을 남긴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