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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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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영세] 황 노인 이야기황 노인이 큰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이주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열기가 어느 정도 수그러져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해 볼 것이 없다는 서글픈 판단이 황 노인의 의식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하기야 황 노인으로서도 크건 작건 기대를 걸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예측을 빗나간 건 더더욱 아니었다. 말하자면 예측은 하면서도 오히려 그 예측이 빗나가길 기대했던 심정이 배반당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조금은 과장하고 싶은 억울함이 황 노인을 서글프게 만들었다.큰아들은 그 …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10-04-30 22:10 조회 6635 더보기
[미국/전지은] 누가 이 아일 모르시나요?"지금 늦잠 잘 때가 아니야. 내려와 봐. 빨리 내려와!" 그렇게 큰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은 언제였던가. 앞가슴이 반쯤 열린 파자마에 맨발로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CNN에서는 비행기에 들이 받치는 세계경제의 중심지 뉴욕의 월 스트릿 쌍둥이 빌딩이 여과 없이 보여진다. 사고네, 커다란 사고. 그러나 그것은 대형 사고가 아니라 바로 전쟁이며 대대적인 공격이었다.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미국 공격을 받다!> 라는 제목 아래 지구촌에 위상을 떨치던 그 높은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10-04-30 22:06 조회 5793 더보기
[캐나다/김희정] 도망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오직 한 가지 생각은 이 답답한 소굴에서 나 자신을 탈출시키는 일 뿐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달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준 자유였으며 스스로를 칭찬할 만한 용기였고 지극히 따분했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도망  한참을 달린 듯싶었다. 정신없이 뛰쳐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쉴새없이 도망치고 있다. 문득 나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이제껏 느껴 보지 못했던, 감히 예감할 수도 없었던 섬뜩한 공포였다…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4-30 21:59 조회 5609 더보기
어이 강형! 또 만났네! 자넨 참 부지런하군! 장사 잘 하는 비결 중 하나는 말야, 홀세일(Wholesale)에 자주 다니는 거야. 알겠어?예.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러나.영주권 장사(Immigration Merchant) 좌우지간 반갑네 그려! 토니는 이제 두 번째 만나는 강완규를 도매상에서 만나자 반가워한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 호감이 가고 있다.오늘은 토요일이라 NG 도매상은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 늦기 전에 가서 빠진 담배들을 꼭 사와야 한다는 마누라의 성화에 못 이겨 쫓기듯 도매상에 온 토니이다. 담배 15카톤 …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4-30 21:53 조회 6500 더보기
그녀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 아무런 말도 없이 줄곧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단정하게 뒤로 쓸어 묶은 머리. 검은 색 머리카락 사이로 은빛이 소복소복 빛나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흘끗 쳐다본 그녀의 얼굴은 머리카락만큼이나 단정해 보였다. 그녀는 다운타운에서 노스욕으로 올라가는 지하철 안에서 1시간 가까이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그는 곁눈질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표정에서는 삼엄함마저 감돌았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불쑥 입을 …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4-30 21:48 조회 5705 더보기
자명종이 7시를 울렸다. 커튼 사이사이로 뚫고 들어와 방안을 신비스럽게 채우는 지중해 국가의 이른 6월의 태양마저 자명종 소리를 거들자, 신기수는 무거운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깨어 일어서려던 그는 허벅지와 허리의 뻐근한 통증에 다시 눕고 말았다. 어제 하루 종일 제노바 근처에 있는 세라발레(Serravalle)의 대규모 아울렛 상가를 누비고 걸어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자책하다가, 오늘도 가이드 건이 있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이 일까지 맡은 것에 괜한 화가 치밀어 왔다. 사실, 그는 유학초기부…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4-30 21:33 조회 6341 더보기
[캐나다/강기영] 넬리(NELLY)아빠, 넬리 왔어!딸아이의 전화다. 넬리가 병원에 입원 했던 날짜를 꼽아 보았다.닷새 만이다.영리한 진돗개지만 역시 짐승은 짐승인가 보다. 넬리란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의 이름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아랫도리가 만신창이의 허물어진 모습으로 실려 갔는데, 죽지 않고 닷새 만에 퇴원이라니.물론 그 동안 매일 동물병원을 다녀오는 아들과 딸아이를 통하여 넬리의 병세를 듣고는 있었지만 그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다행이 넬리가 죽지는 않을 듯하고 조금씩 호전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에도, 반쯤은 착잡하지 않을 수…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4-30 22:12 조회 6167 더보기
도넛 가게의 문이 열리며 먼저 준태형의 목발이 삐죽 나온다. 이어 성한 왼쪽 다리가 나오고 휘청하며 튕겨오르는 몸체를 따라 마비된 오른쪽 다리가 끌려나왔다. 그런 준태형의 뒤를 언제나처럼 빈 파이프를 귀입술에 문 흑인영감 죠지가 슬렁슬렁 붙어 서 있다. 인도로 내려선 준태형은 흘러내린 바지춤을 한차례 추스려올리고는 ‘헤븐스트릿’ 싸인이 걸린 신호등 기둥에 어깨를 기댄다. 주머니가 여러개 달린 야전점퍼가 어깨를 기댄쪽으로 쏠리며 축처져 내린다. 목발을 짚은 오른쪽 점퍼의 밑주머니엔 무엇이 들었는지 언제나 배가 불룩하다. 초여름의 캘리…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53 조회 3885 더보기
 내가 열 살이었을 때, 우리 집은 다섯 번째 이사를 했다. 학교는 네 번째였다. 첫 번째는 고향 정남에서 수원으로 옮겨갔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일기책의 주인공 윤복이가 전 국민을 아프게 했던 그 해 겨울에는 서울 삼청동으로 갔다. 그리고 삼청국민학교는 겨우 십오 일을 다니고 끝이 났다. 바로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방학 중에 우리는 또 포천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백마부대 용사가 되어 월남으로 떠난 막내 당숙이,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꽁까이와 찍은 사진을 보내왔던 그 여름에는 용인으로, 그리고는 일 년 만에 용인…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50 조회 4678 더보기
해피가 엄마에게 거짓말 한 것은 아닙니다. 해피와 혁이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같이 하고 늦게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해피 대리는 해피와 호프에게는 정말 잘하는데 엄마한테는 잘 안하는 것도 압니다. 할머니가 대리에게 눈을 흘기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대리는 돈을 벌어서 다 어디다 쓰는지 집세만 내어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피나 호프한테는 정말 잘합니다. 해피와 호프는 대리를 좋아 합니다. 엄마 보다 더 좋아 합니다. 엄마도 잘하지만 지금까지 공부 할 수 있는 것은 대리 덕분입니다. 대리는 언제나 해피가 공부 하는 것을 일일이 …
작성자토마토 작성일 12-03-05 23:46 조회 3433 더보기
우리교회 해피 엄마가 있습니다. 해피의 한국이름은 아무도 모릅니다. 해피 엄마라고 합니다. 해피 동생은 호프라고 합니다. 해피 엄마는 해사한 웃음을 잃지 않고 다정합니다. 누구에게나 저런 엄마가 내 엄마 이였으면 합니다. 해피 엄마는 해피가 친구 집에 가서 대접을 받고 오면, 그 친구 말고도 다른 친구를 불러다 대접을 합니다. 많은 음식은 장만 하지 안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해피 친구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해피 친구들이 해피네 집에 들어 서면, 여러분 환영해요 하고 커다란 풍성을 달아 놓았…
작성자토마토 작성일 12-03-05 23:44 조회 3272 더보기
방금 전 아이랜드 훼리가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맨하탄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떼로 몰리며 질서 정연하게 배 안으로 흡수 됐다. 따라서 할 일 없이 서성이던 비들기들도 그들을 쫒아 빠르게 날라 갔다. 이제부터 30분간 배 안에서의 무대는 펼쳐 지며 드럼과 트럼팻을 부는 악사는 연주를 시작했다. 훼리 승객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 앉자 커피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사람, 민영같이 눈을 지긋히 감고 모자른 잠을 자거나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고요히 그리고 아주 묵직하게 배는 …
작성자세이지 작성일 11-08-13 09:49 조회 3823 더보기
뉴욕 가을은 유난히 변덕스러워 여인들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매섭게 춥던 날씨가 한낮이 되면 언제 그랬었나 싶게 덥고 저녁이면 다시 추워져서 사람들은 엄살쟁이들 같이 아예 겨울코드를 입고 다녔다.   오늘 아침은 봄이 올 듯 따스한 햇살이 약국 창문으로 고즈넉히 들어오며 여인의 속살같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아주어 나도 모르게 스스르 눈을 감았다. 이런 날은 감옥 같은 약방에서 나가 거리로 활보하고싶었다. 그러나 언제나 커피 한잔 마실 틈도 없이 이그러진 두상들이 아침부터 밀려오고 있기에 그만 포…
작성자세이지 작성일 11-08-13 09:47 조회 4059 더보기
 며느리가 식탁에 앉아서, 들고 들어 온 종이봉투를 부욱 찢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순임 씨가 앉아있는 거실까지 퍼져 나왔다.“엄니, 햄버거 드실래요?”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며느리가 잽싸게 끼어들었다.“아이구, 이 밤에 노인네, 햄버거 드시구 탈나시면 어쩔려구 당신, 그래요?”순임 씨는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면서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식탁으로 다가서면서 오른 팔을 홰홰 저었다.“내 나이 여든이여, 탈이 나면 죽기밖에 더 허겄냐? 괜찮다”며느리가 입을 꾸욱 다물고 일어났다. “아녀, 이거 당신 먹어, 난 밥…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49 조회 5314 더보기
 눈을 떴을 때,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오랫동안 잠을 잔 탓인지 팔 다리가 마치 거미줄에 걸려든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늘, 남편의 전화를 받았던가....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느낌이 의식의 깊은 바닥을 휘저어 댔다. 그 느낌 속에서 뭉얼뭉얼 피어오르는 그리움은 어쩜 막 깨어난 꿈의 연장선에 있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종종 그랬듯이 잠들어 있는 동안 집안의 전화벨이 한참 울렸든가, 그래서 벨소리를 소재로 아마 꿈을 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다. 적어도 하루에 세 번씩…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47 조회 4342 더보기
나는 사막 한가운데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운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숨죽였고 움직이지 않았다. 허름한 커피숍 화장실 벽에 붙어있던 이름 모를 사막의 낡은 사진처럼 그렇게 고정되어 있었다.         피닉스 256마일.         가끔씩 지나는 표지판이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니, 그들이 나를 스쳐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여섯 시간을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45 조회 4559 더보기
누나를 만났다. 30여년 만에. 그 낭떠러지에서.옛 모습 그대로였다. 작은 키, 귀밑으로 짧게 자른 단발머리, 콧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실룩거리는 뭉툭한 코, 남루한 티셔츠.......아이들과 정신없이 노느라 저녁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아 나선 사람처럼 누나는 물었다.너, 그동안 어디 있었니? 1  -야아아아아.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함성은 신작로에 부옇게 일어나는 먼지처럼 잘게 부서져서 끝없이 펼쳐진 벼이삭의 고요하고도 장엄한 파도에 이내 묻혀…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43 조회 4160 더보기
“언니 혼자 오는 거야? 형부는?”  “물론 나 혼자 가는 거지.”  “언니, 그동안 힘들게 지냈잖아. 이제는 훌훌 털어버려, 세상 살면 얼마나 산다고 지지고 볶고 살아, 제발 앞으로는 언니도 나처럼 심풀하게 살라고, 알았지!”  나보다 열 살이 아래인 여동생 영주는 톡톡 튀는 소리로 거침없이 자기 얘기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삼 년 만에 나는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간다.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 집 안에 들어 앉으신 지 일 년이 넘었다. 할 수만 있다…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41 조회 4553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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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40 조회 4658 더보기
하얗고 목이 높은 잔에 담긴 커피는 조금 진하다. 크림을 듬뿍 넣어 뜨거움이 적당히 가신 커피는 혀 깊숙이에 쌉쌀한 쾌감을 남기며 내 목구멍을 통과한다. 느슨하게 온몸으로 번지는 따뜻함과 슬며시 신경을 당겨오는 카페인의 팽팽함 사이엔 늘 절묘한 쾌락이 있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 4차원의 경계선을 넘은 듯 혼곤한 평온에 젖어든다. “이거 너무 비싸! 커피 한 잔에 만원이라니? 너희 젊은 것들은 돈 아까운 줄도 모른단 말이니?”  순간 내 폭신한 명상을 뚫고 들어오는 이모의 바늘 끝 같은 목소리·······. 나는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39 조회 4710 더보기
                  1친구가 떠났다. 먼 곳으로·······.하얗게 내리 꽂히는 햇살들 사이로 소슬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온다. 햇빛바람······· 그 투명한 빛의 바람 속엔 이 세상 어떤 숨은 것이라도 선명히 드러날 것만 같다. 데니어 길든은 땡볕아래 살며시 불고 있는 바람에 백발의 짧은 머리카락을 푸스스 일으켜 세운 채 흑흑 흐느낀다. 한쪽으로 중심이 쏠린 그의 둥근…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37 조회 4625 더보기
아버지의 불평불만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어느 날, 언니가 미국엘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첫 방문이니 거의 삼 년만이다. 여느 때는 공적인 일이라는 명목 아래 일 년에 한번 정도는 어김없이 미국 방문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웬 일인지 두 해를 건너뛰었다.   영자는 하나도 반갑지가 않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걱정부터 앞섰다. 딸이랑 같이 온다고 했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언니로부터 무시당하는 사실은 그렇게 큰 상처 없이 넘어가곤 하지만, 조카인 청미가 자신에게 멸시의 눈길을 던질 때는 정말 견디기 어…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36 조회 4121 더보기
그냥 냉장고 열고 알아서 드시고 싶은 거 찾아서 드시고 하세요, 삼촌. 우리 집 대접은 늘 이렇수.형수가 출근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알고 왔어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이따가 저녁은 초대가 있으니 그리 아세요. 있잖아요, 근처에 사는 제니퍼 네-. 그 집에서 저녁을 낸다고 하니까요.아침이면 형님네 식구들은 각자 일어나서 눈 비비고 직장, 학교 나가기에도 바쁘다. 이곳 주립대학의 공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형님은 군소리 없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세수하고 식탁에 나와서는 사기대접에 설탕 성분 없는 시리얼 한 그릇 담고 거기에 탈지우유를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34 조회 4642 더보기
수희는 벌써부터 취해 있었다. 넓은 거실을 아스름히 비추고 있는 수직형 램프 밑의 긴 소파에 무너질 듯한 자세로 앉아 키득거리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말해봐! 네가 사랑에 빠졌단 말이지?”흐느적대는 수희의 태도에 이미 속을 털어놓을 맘이 가셔버린 나는 크리스탈 잔에 절반쯤 남은 붉은 와인을 덜썩 입에 털어 넣었다. “얘! 너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말 안 할거야? 그게 누구냐니까?”“그만둬. 내가 괜한 소리 했나봐. 그리고 너 좀 취한 것 같아. 그만 들어가 자라.”갑자기 쌀쌀해진 내 목소리에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32 조회 4312 더보기
"당신더러 누가 영어 배워 오래? 집에서 살림이나 잘 하면 되지!"장기선 씨는 학원에 갔던 아내 영순을 차로 데려다 놓으면서 이렇게 한 마디 씹어 뱉었다. "말 좀 할 줄 안다구 하두 무시하니까 나도 좀 배워야겠네요."그녀는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한 마디 더 하면 이젠 아예 자동차를 한 대 사놓으라고 버티고 나올 판이었다. 그러니 정말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하긴 그도 아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밖으로 나다니는 것도 아니니 한사코 나무랄 수만은 없다. 단지 자신을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영어공부 아냐 더 한…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30 조회 4544 더보기
저만치서 그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명자는 재빨리 등을 돌려 교회 옆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이구 형님, 이게 얼마만이야.’ 하고는 콧소리까지 섞어가며 감겨들 것이 뻔해 피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어느새 ‘형님, 형님’ 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일요일마다 예배에는 안 빠지는 편이나 명자는 교회에 별로 친한 사람이 없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예배 끝나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법도 없이 곧장 집으로 직행하는 그녀다. 다른 사람들도 명자의 존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그녀는 오히려 마음 편하다. 그런데 그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29 조회 4077 더보기
케빈은 오늘도 집 앞을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테일러를 안고 있었다. 테일러는 그의 왼쪽 팔에 상반신을 걸치고 혀를 빼문 채 방심한 얼굴로 이곳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삼십 파운드는 족히 나갈 것 같은 그 독일산 셰퍼드는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사실 너무 컸다. 턱이 짧게 흘러내린 탓에 머리통의 윗부분이 넓어 보이는 강아지는 뒷발을 움직여 남자의 불쑥 나온 배위에 엉덩이를 붙이려고 애를 썼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강아지는 차를 향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여차하면 뛰어 내리기라도 할 자세였다. 그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27 조회 4117 더보기
노란 꽃잎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있는 나비를 향해 막 손을 뻗으려는 순간, 누군가 난데없이 내 팔을 거칠게 잡아끌며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이봐요, 제발 좀 정신을 차려요!” 외치는 소리에 놀란 나비는 여린 황금빛 날개를 팔랑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세찬 파장을 일으켰다. 난파선이 파곡으로 잠기듯 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한순간 끊기면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어붙은 강을 뚫고 흐르는 세찬 소리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여자의 모습이 점차 또렷한 형상으로 떠오르고 …
작성자yale 작성일 10-09-24 09:26 조회 4203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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